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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신 Sep 12. 2022

미화微花: 작은 꽃

전시를 통해 황예랑의 그림들을 보기 또는 전시와 그림들을 직조하기

엎치락뒤치락 부어터진 강아지와 기이하게 고개를 꺾은 새. 황예랑이 조약돌을 던지면 일상의 풍경이 괴기하게 뒤틀어진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 사이의 불쾌한 것들. 우글거리고 징그러운, 우스운 것들. 누군가는 그를 눈이 매콤한 화가라 말했지.  


전시의 제목 《미화微花: 작은 꽃》은 중국의 철학자 주량즈(朱良志, 1955~)의 책에서 따온 것이다. 주량즈는 ‘이소견대(以小見大)’를 작음에 깃든 오묘함으로 말하며 중국의 예술 작품들을 느슨하게 엮는다. 여기서 ‘작다’의 개념은 상대적이며,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 모두를 가리킨다. 이에 대한 표현도 단일하지 않아 많은 의미가 함축된 간결한 형상이나 좁은 공간에 많은 것들이 집약된 형태가 되기도 한다.  


전시는 불투명한 개념의 계보를 추적하거나 과거의 실천을 복원하는 대신, 지금 시점에 유효한 의미를 말하고자 했다. 작가와 기획자는 ‘미화(微花)’에서 꽃(花)을 뗀 ‘미(微)’로부터 ‘작다’와 ‘정묘하다’, ‘미약하다’ 외에 ‘상처를 입다’, ‘비천하다’라는 의미를 찾았다. 황예랑이 그린 대상은 단단하게 축조된 역사와 빠르게 흘러가는 삶으로부터 누락된 존재들이다. 화면을 자른 듯 동물을 클로즈업한 구성은 일견 인스타그램의 귀여운 이미지들을 연상하게 하지만, 그가 그린 그림은 약하지 않고 묘해 마냥 마음 편히 예뻐하기가 어렵다. 작가가 삶에서 끄집어낸 부조리한 풍경에는 모순적인 존재들과 그에 대한 연민이 담겨있다. 


그리고 전시장에는 스컬피로 만든 입체가 있다. 입체는 무게나 양감보다 모양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피규어를 닮았지만, 손의 흔적이 담긴 그림들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림을 말하는 전시에서 입체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그림의 원리는 공간 조성의 원리와 맞닿아 있었다. 명말 청초의 인물인 이어(李漁, 1611~1685)는 작은 공간에 사물들을 교묘하게 배치해 개자원(芥子園)이라는 원림을 만들었다. 이어는 그림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말들을 남겼는데, 그가 했던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는 배에 작은 부채꼴 모양의 창문을 내서 이동하면 그림들을 한정 없이 감상할 수 있으며, 가옥의 창밖에 풍경이 없을 경우 바깥에 대신 화분을 장식하면 그림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조원이론을 설명하는 개입화도(皆入畫圖)는 어떨까. ‘장면마다 한 폭의 그림과 같다’는 말은 오늘을 위한 것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다가와 지금의 현상을 설명할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과거로부터 몇 개의 문장을 떼어 오는 것은 얄팍하지만 엉뚱한 독해와 창작은 불가능할까? 이어가 반복적으로 하는 ‘그림 같다’는 말은 단지 아름다움을 이르는 수사일까? ‘장면마다 한 폭의 그림과 같다’는 문장을 참조한 전시는 모든 것이 사진의 프레임으로 포섭되는 오늘의 조건과 그에 반응하는 다른 장르의 실천에 공명할까? 아니면 어긋날까? ‘동양화’와 ‘한국화’가 다양한 실험을 활성화하는 범주로 기능하지 못하고 그림의 모호한 성격을 포괄하는 형용사가 된 오늘, ‘그림 같다’는, ‘동양화 같다’는, ‘한국화 같다’는 어떻게 재정의될까? 나아가 ‘그림 같다’는 말은 ‘동양화’와 ‘한국화’의 실천을 확장할 수 있을까?


전시장에는 작은 그림들이 있다. 그림은 보는 이에 따라 작아지고 커진다. 오래 보면 그 안에서 걸을 수도, 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림이 아닌 것들이 있다. 그림과 그림 아닌 것은 전시장을 걷는 관객에 의해 다시금 장면 혹은 그림이 된다. 어쩌면 이미지 사냥꾼이 포획한 사진이 될지도 모른다. 작은 것들은 손쉽게 귀여움으로 축약되어 SNS를 휘도는 스펙터클로 전락하게 될까? 그림을 맛보려면 잘 녹지 않는 사탕처럼 오랫동안 혀 위에서 굴려야 한다. 그러나 입 안에 넣은 사탕은 달지만은 않을 것이다.



2022년 가을




참고문헌


주량즈, 『인문정신으로 동양 예술을 탐하다』, 서진희 역, (알마출판사, 2015).

이어, 『쾌락의 정원: 동양의 에피쿠로스, 이어의 「한정우기」』, 김의정 역, (글항아리, 2018).

장림, 「명말청초 강남지역 조원가의 조원이론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20).

임근준, 「동시대미술로서의 한국화와 그 이후」,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2022.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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