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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신 May 17. 2023

작가와의 문답

작  가: 진  강 / 기 획: 윤형신

Q1. 윤형신: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예술가가 되기로 한 계기가 무엇인가?

A1. 진  강: 기억이 있었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당시에 그림을 배우는 건 사치였지만, 유도 코치였던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나와 쌍둥이 형의 예체능 활동에 신경을 썼다. 어머니는 체육과 음악, 미술 모두를 배우도록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의 관심사는 달라졌다. 형은 운동에 빠졌고 나는 예술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 중학교 때는 미술특기생으로 예고에 진학했고, 학부와 석사, 박사까지 미술을 전공하면서 삶에 예술을 접목하는 습관이 생겼다.


Q2. 윤형신: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무엇에 초점을 맞추었는가?

A2. 진  강: 동시대 예술에서의 현대 수묵의 새로운 창작 방식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Q3. 윤형신: 그림을 구성하는 본인만의 방식이 있는가? 

A3. 진  강: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예술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좋은 구성은 감정과 정서로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지 특정한 이론이 없다는 한 작가의 말이 기억난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화면 구성상의 필요에 따른 것이며, 우연과 무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Q4. 윤형신: 그림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어디서 왔는가?

A4. 진  강: 이미지는 삶의 기억 한편에서 온다. 추억 속 장면, 생경한 장면, 타인이 공감할 법한 장면, 존재하는 사물의 흔적 등 수집하는 이미지에 제한은 없다. 모두 표현을 위한 것이다.


Q5. 윤형신: 지금까지 종이, 비단, 나무 그리고 먹과 분채, 옻칠 등 여러 재료를 사용했고, 때로는 조각과 설치도 시도했다. 다양한 작업을 한 계기를 설명해 달라.

A5. 진  강: 다양한 작업은 내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것에 관심이 많고, 예술의 가능성을 늘 생각한다. 재료, 주제, 형식은 모두 작품이 지닌 가능성이기에 다양한 시도를 할수록 의욕이 생긴다. 


Q6. 윤형신: 특히 최근 활동과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자세히 말하면 먹그림에 집중하고 있다. 본인에게 먹그림은 어떤 의미인가?

A6. 진  강: 수묵은 동양의 가장 대표적인 재료일 것이다. 수많은 재료 중에서도 중국인(동양인)으로서 수묵에 대한 애정이 있다. 나는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먹색오채, 우연성 등의 무한한 가능성이 수묵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다. 하지만 나는 당대의 방식을 찾아 수묵화를 그리려고 한다.


Q7. 윤형신: 그림에서 먹을 매우 다양하게 사용했다. 무슨 기법으로 먹그림을 그리나?

A7. 진  강 : 최근 사용하는 기법은 분무(喷雾, spray), 마블링(浮水染色技法, marbling), 콜라주(拼贴, collage), 표구(装裱, mount), 전사(转印, transfer printing), 탁본(拓片, rubbing) 등이다. 하지만 고정된 작업 방식은 없다.


Q8. 윤형신: 바탕재로 광목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광목을 고르는 특별한 기준이 있는가? 광목의 바탕 처리를 어떻게 하는가? 광목에 그린 그림의 설치 방식은 어떻게 결정하는가?

A8. 진  강: 화선지, 한지 등을 사용했었지만 종이의 물성이 원하는 것보다 취약하고, 먹을 여러 번 겹쳐 그리기가 불편했다. 게다가 보존 또한 쉽지 않았다. 이에 거친 천, 캔버스, 수채화지, 옻칠용 나무판, 도자기와 같은 새로운 소재를 찾아 그렸다. 그러나 내게는 수묵으로 광목에 그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광목을 고를 때는 먹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표현되는가를 따진다. 그리고 하려는 작품의 느낌에 따라 거칠기와 색감을 택한다. 이번 전시에는 질감이 부드럽고 미색인 광목을 썼다.

먹의 번짐을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 아교 반수(방수 처리)는 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기 전과 후 구김을 펴기 위해 다림질을 할 뿐이다.

광목은 다양한 방식으로 설치가 가능하다. 과거 전시 때는 평면적으로 벽에 거는 대신 모양을 잡아 입체적인 설치 방식을 시도했었다. 이번 전시는 두루마리와 족자의 전통적인 표구 방식을 참조했다. 또한 관객이 이미지에 몰입할 수 있도록 넓은 화면을 선호하는 편이다.  


Q9. 윤형신: 작업 노트에서 의경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당신에게 의경이란 무엇인가?

A9. 진  강: 전통적인 의미를 설명하자면, 작가의 주관적인 사상과 감정이 객관적인 사물이나 대상을 만나 융합하면서 생성되는 의미 또는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목적은 의미를 풍부하게 만들어 관객이 구체적 형상을 넘어 연상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하여 관객을 관대한 예술 공간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자연 물상을 묘사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생각, 그리고 내면과 의지를 표현한다. 현대 수묵 또한 전통 수묵화와 마찬가지로 여백을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며, 인간과 작품의 합일을 추구하고, 현실을 넘어 예술적 경지를 추구한다. 그러나 현대 수묵에서는 공감이 중요하다. 현대 수묵에서 관객은 상상과 더불어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창작의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작가가 표현하는 감정을 느낀다. 이에 관객은 수묵의 감성과 창작자의 의경 표현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Q10. 윤형신: 작가 활동의 출발점이 된 중국에서는 어떤 작업을 했는가?

A10. 진  강: 중국에서는 회화의 기초 연습과 사생을 많이 했다. 당시에는 소재나 주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보다 형식 실험에 초점을 두었다.


Q11. 윤형신: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소재와 형식이 많이 변화했다. 변화의 계기를 설명해 달라.

A11. 진  강: 주제를 염두에 둔 작업은 한국 석사 과정부터 시작했다. 당시에는 '쌍둥이 연작', '감정 연작' 등 본인의 시각과 관념으로 자아를 탐구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치, 사회 및 당대의 삶을 반영했다. 이후 점차 소재와 주제를 '나'에서 '새 시리즈', '중국 여자 시리즈'로 바꾸는 등 다른 이미지를 빌려 나의 생활, 사회의 모습, 감정의 상태 등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또한 추상과 구상을 섞거나 완전히 추상적인 작업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주제와 도상 간의 위계적이고 전통적인 구조보다 창작의 과정, 느낌, 재료의 표현, 화면 구성, 결과에 관심을 두고 있다. 


Q12. 윤형신: 한국에 온 지도 벌써 3년 차다. 환경의 변화는 작업에도 영향을 미칠 텐데, 한국에 온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A12. 진  강: 예술 활동이 여러 도시에서 벌어지는 중국과 달리, 한국의 서울은 예술 활동이 매우 집중된 도시다. 나는 매주 전시를 보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는데, 전시를 통해 다양한 예술가의 생각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나의 작품을 더욱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Q13. 윤형신: 지난 한국에서의 개인전 제목인 ‘독백’(2021.3), ‘진화론’(2022.3), ‘방백’(2022.5), ‘상대론’(2022.8)은 각각 어떤 의미인가? 각 전시에서 작품의 결은 어떻게 달랐는가?

A13. 진  강: 일단 표현하고자 한 내용은 제목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독백’에서는 나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고, ‘진화론’에서는 작품의 변화와 발전에 관심을 두었다. ‘방백’은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세계를 일인칭 시점이 아닌 제삼자의 눈으로 보려 한 시도였다. ‘상대론’은 사람마다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이 다르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시시각각 맺고 있는 상대적인 관계를 다루었다. 제목이 추상적, 은유적인 이유는 내가 다루는 주제가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작품은 꽃, 풍경, 정물 같은 소재나 특정 장르로 정의되지 않는다. 나는 방식, 과정, 결과 등의 개념을 선호한다.


Q14. 윤형신: 중국에서 미술학을 전공했고, 대만으로는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회화과 한국화 전공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한국으로 와서 한국화 전공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게다가 현재는 동양화과와 회화과가 공존하는 학교에서 회화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각기 다른 전공을 하면서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가에 의문이 들 것도 같다.

A14. 진  강: 먼저, 동양인으로써 수묵을 좀 더 다루고 싶었기 때문에 석사 단계에서는 한국화과를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석사과정을 거치면서 서양화, 동양화, 중국화, 한국화와 같은 단어 구분은 공부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박사 과정에서는 회화과를 선택했다. 수업 커리큘럼이 자유로워 유화와 수묵화 등은 물론 조각·판화 수업까지 들을 수 있다. 회화는 범주가 더 크기 때문에 수묵화, 유화, 판화, 수채화, 스케치 등 여러 형식을 담고 있다.


Q15. 윤형신: 작업 노트에서 자신의 작업을 ‘동양화’라고 칭하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 ‘동양화’의 의미는 일제 점령기 이후로 만들어진 동양화의 맥락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한국,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등에서 그려진 그림을 동양화로 칭한다. 그렇다면 본인의 그림을 중국화라고도 생각하는가?

A15. 진  강: 보통 중국 사람의 그림은 중국화로, 한국 사람의 그림은 한국화로 생각하기 쉽다. 중국에서 대중들은 (중)국화를 중국의 전통적인 그림으로 인식한다. 서양화라는 단어는 중국어로 쓰지 않는다. 유화라는 단어는 있다. 다시 말해 유화와 수묵화, 서양화와 (중)국화라는 개념적인 구도는 존재한다. 동양화는 중국에서 과거의 단어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나의 그림은 전통에 영향을 받았지만, 범주에 끼워 넣기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나는 나의 그림을 중국화, 한국화, 서양화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그림을 소개할 때는 과거 일본이 사용했던 동양화의 의미가 아닌, 서구에 대비되는 의미에서 동양화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회화가 우선일 뿐,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Q16. 윤형신: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가?

A16. 진  강: 언어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내국인이 쉽게 하는 일도 힘들 때가 있다. 외국인으로서 전시에 참여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창작하고, 전시를 보고, 만남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한다. 


Q17. 윤형신: 작업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인가?

A17. 진  강: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이다. 미술 이론이나 예술 철학을 열심히 공부했더라도 작품은 결국 예술가가 바라본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나의 의식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그 의미를 그리고자 한다. 


Q18. 윤형신: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가?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A18. 진  강: 시대를 반영하고 후대에 영향을 주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 내 꿈은 중국의 10대 현대 예술가 중 한 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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