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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신 Dec 25. 2023

「빙하–파도–강물–안개-구름」

기민정 작가의 작업에 대한 리뷰, 소설, 그리고 작가의 초상

  전시장은 기차를 타고 도착한 소도시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외딴곳에 있다. 이곳의 태양은 작열한다. 신던 샌들이 벗겨져 땅에 발을 데인다. 지면의 온도로부터 직감한다. 이곳이라고. 

   건물은 연분홍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졌다. 절반은 지하에, 나머지 절반은 지상에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리셉션의 여자에게 말과 장군이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서류에 파묻힌 여자는 말이 없다. 여기를 보지 않는다. 지하를. 지상을. 어디를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망설임 끝에 말을 먼저 찾기로 한다.

   천장이 멀다. 지하에서부터 가늠하면 11층, 아니 12층 높이는 될 것이다. 계단이 많다. 수없이 많다. 그림이 있는 곳에 물이 차 있을 리 없지만. 습기가 가득할 리도 없지만. 내려서기도 전에 깊은 물에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여기는 이상하다. 이상한 곳에 왔기에 느껴지는 습기일 것이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음습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제는 전시장 가장 밑바닥에 도달했다. 발끝으로 걸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왼편에 〈물이 물속으로〉라는 그림이 걸렸다. 그림 제목으로부터 뱃사람은 한류와 난류로 길을 찾는다는 말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림 속 물은 뱃전에 몸을 내밀고, 바다에 손을 넣어 느끼는 물이 아니다. 그림에서 파도는 직설적이다. 검은 피처럼 참지 못하고 뿜어져 나온다. 수직으로 잘린 검은 배경은 가로막혔음에도 어딘가를 향해 열린 심리적 공간. 검은 물은 바위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파도. 혹은 반발심.

   그 위에 〈안 마리 스트레테르는 잔다〉라는 제목의 그림이 걸려있다. 〈안 마리 스트레테르는 잔다〉의 공간에도 물이 들어찼다. 이전 그림보다는 정적이지만 역시나 불안감을 자아낸다. 실내에는 빈 의자뿐 아무도 없고, 연분홍 복도를 넘어 지나치게 많은 문틀 너머의 물. 물은 발목 혹은 종아리 높이다. 그림 속을 걸어야만 하는 사람들은 물이 든 신발을 끌고 다닐 것이다. 누군가에게 발목이 붙잡힌 듯이. 그림이 위에 걸려 있는 터라 물이 목까지 차오른 것 같다. 어딘가에 안 마리가 자고 있을 것임에도. 안 마리는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부영사』에 나오는 부유한 여성으로, 어느 때고 남성들과 어울려 다닌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 없는 결혼이라는 철장에, 호화롭고 안전한 호텔을 둘러싼 철창에 갇혔다. 흙바닥에 엎드려 누운 그녀가 얼은 숨을 내뱉을 때 그것을 파도가 조금씩 가져간다. 집비둘기는 날고 싶다. 그러나 날게 되면 되돌아올지도 모른다.

   맞은편에는 〈잠이 오지 않는 밤〉. 〈달밤의 춤〉. 〈사랑의 정치〉_지난한 이야기 연작이 늘어섰다. 그녀에게 사랑이란 사회상에 따라 변주된 지난한 엇갈림. 그림들은 흑과 백, 실루엣과 여백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실루엣 너머엔 그 무엇도 없을까. 실루엣은 외곽선으로 특징을 잡아낸다는 생각으로부터 비롯되었으나 인간은 실상 겹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닌가. 그림에서 끈적한 액체가 누액인 듯 혈액인 듯 타액인 듯 정액인 듯 자체의 욕망으로 움직이고, 해와 달처럼 공존하기 불가한 것들을 여백이 받아들인다. 여백은 급격히 녹아 떠내려가는 빙하처럼 깨지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정교하게 짜인 그림의 공간과 같이 이곳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차갑고 습한 지하. 탈출구처럼 반대편에 나타난 또 다른 계단. 대답 없는 리셉션의 그녀를 다시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니. 말을 걸지 않아도 된다니.

   계단을 두른 벽을 돌아서니 천정에서부터 바닥으로 20여 미터에 달하는 화선지가 드리워져 있음을, 지하와 지상의 공간이 이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길게 드리워진 화선지에는 검은 선이 그려졌고, 검은 선 주위로 흰 부분을 남긴 채 오려졌다. 시선을 위로 올릴수록 화선지의 맨 모습에 가까워진다. 습한 빛 속에 움직이는 화선지는 건물 바닥에서 올라온 습기가 뜨거울수록 가벼워져 이룬 구름. 아니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포. 구름이 억지로 삼킨 물과 폭포가 울컥 내뱉는 물의 양은 같을까. 구름과 폭포 모두 어느 사이에 흐르는 것. 사라졌다 이어지는 것. 그러나 둘은 성격이 달라 결국 서로를 막아서게 되는 걸까. 구름은 길이가 수 킬로미터나 되고 몇 톤이 넘는 무게로 인해 끊임없이 내려앉는다. 구름은 산에 닿으면 안개가 된다. 안개가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바람이 불어야 한다. 구름을 들어올리기 위해 바람들은 달려간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화선지를 오리는 동안 침착하게 화나 있었을까. 작업이란 울면서 추는 춤일까. 그녀는 백야에 커튼을 닫고 새벽에 어울리는 단정한 말들을 준비한다. 그것이 다 사그라질 때까지. 그녀는 전시장에 작품이 걸려 있는 오늘도 그물 같은 하루를 빠져나가려 분투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녀를 알지만, 얼마나 아는지는 모른다. 

   종이의 무게를 뒤로 하고 계단을 오르자, 공간이 점차 밝아진다. 그리고 마지막 계단. 마지막 층. 원통형 홀 안에 햇빛이 들어온다. 공중 그 어딘가에서 무드가 바뀐다. 지하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사한 색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리라. 벽에는 〈모노로지아의 여름〉이 걸려 있고, 그 주위로 그림을 그리고 남은 자국과 벽에서 떨어져 쌓인 그림이 있다. 그녀의 글에 따르면, 고대 모노로지아에서는 100일 동안 지속된 거대한 무지개가 큰비가 온 후 하늘에서 흘러내려 땅에 모두 스며들었다고 한다. 공간은 모노로지아의 풍광을 암시하듯 물들었다. 난간에는 물이 든 천이 감겼다. 천 앞에는 돌이 쌓였다. 젖은 모래 속에서 밤마다 굳어지는 돌. 그 돌에 스며든 무지개. 색색의 무지개는 실상 투명한 물방울이다.

   뒤이어 〈혼자는 헤쳐서 사라지고〉. 〈그린한 숲속〉. 〈개운한 숲을 휘저을 거니〉. 〈보라와 백군의 놀이〉가 이어진다. 〈아름답게 캄캄해진 밤 속에서〉 그녀는 색과 함께 있다. 남근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은 색면과도 같은 종이의 삼각산으로 바뀌어 푸른색의 바다가 단정히 눌렀고, 선묘로 피어오르던 구름은 먹이 띄워 올린 조각구름이 되었다. 이제 그녀는 한 시절을 지났다. 

   그림으로 이루어진 조각창은 건물과 하늘의 일부다. 닫힌 창으로 보이는 하늘이 맑고 무겁다. 빛이 건물의 색유리를 통과한다. 그림을 그리고 배접을 하며 습기를 머금었던 종이의 시간이 유리를 통해 되살아난다. 작업 과정에서 우연히 투명한 기포가 들어서기도 한다. 빙열처럼 금이 간 〈불과 바람〉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아슬하게 섰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불과 바람〉이라는 제목으로부터 뜨거운 액체가 얼음처럼 투명해졌다는 점을 깨닫는다. 갇혀있음에도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먹선. 비백처럼 숨구멍이 남은 종이. 유리에 갇힌, 얼은 숨 속의 움직임이 보인다. 

   실상 그림은 유리의 한 면에 붙여졌음에도, 그녀는 종이를 사각의 유리 안에 넣었다고 한다. 그녀는 종이를 구겨서 넣는 대신 조용히 접어 넣었다. 유리 밖으로 접히지 않은 그림이 빠져나왔다. 미처 담기지 못한 것들이 운다. 아니 웃는다. 그녀는 틀과 틀이 아닌 것 사이의 유희를 즐긴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가 오려진 종이 조각과 흩어졌다. 그녀에게 그림이란 차가운 친구의 손을 잡고서 나란히 행진하는 것. 

   가장 밝은 곳. 또 다른 작은 종이 구름. 얇은 종이 커튼을 헤치고 나아가니 창가에 검은 실루엣이 보인다. 가까이 갈수록 실루엣은 그림자나 어딘가에서 도려낸 것이 아닌, 많은 것을 속에 담은 숯처럼 보인다. 숯은 홀로 뜨거워져서 타 버린 걸까. 햇빛 가득한 창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무심의 빛을 뒤로 한 채 나를 돌아본다.



  

* 이 글은 기민정 작가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상상한 가상의 전시에 대한 리뷰입니다. 작가의 기존 전시 제목, 기존 작품과 가상의 작품 제목을 이어 붙인 소설이자, 기민정 작가를 그린 초상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작가가 쓴 제목을 작업의 맥락대로 쓰기도, 작업의 감성을 묘사하는 문장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빙하-파도-강물-안개-구름」은 작가의 작업에 등장해 온 소재이자 물성을 은유합니다. 이 글은 수원 푸른지대창작샘터 레지던시를 통해 쓴 것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으며, 인용 시에는 출처 표기 부탁드립니다.


1) 제목의 ‘파도’는 작가에게 영향을 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파도』(1931)에서 가져온 것이기도 하다.

2)〈땅에 발을 데이고〉(가상의 작품)

3)〈시작은 단순했다. 말과 장군이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2018, 화선지에 채색, 280×370cm 

4)〈아주 어두운 곳까지 잠겨 볼 거니〉, 2018, 화선지에 채색, 75×142cm, 2점

5)〈물이 물속으로〉, 2016, 한지에 먹, 130×400cm. 작가는 〈물이 물속으로〉라는 제목을 2014년 발간된 김지원 소설 선집 3권 『물이 물속으로 흐르듯』의 제목에서 가져왔다.

6)〈안 마리 스트레테르는 잔다〉, 2016, 한지에 먹, 60×200cm

7)〈얼은 숨을 내뱉을 때〉(가상의 작품)

8)〈파도가 조금씩 가져가는 것〉(가상의 작품)

9)〈집 비둘기는 날고 싶고〉, 2016, 한지에 채색, 65×37cm. 작가는 〈집 비둘기는 날고 싶고〉라는 제목을 2010년 발매된 짙은의 2집 수록곡 ‘Rock Doves’의 가사에서 가져왔다.

10)〈잠이 오지 않는 밤〉, 2015, 한지에 먹, 160×59cm

11)〈달밤의 춤〉, 2015, 한지에 먹, 190×59cm

12)〈사랑의 정치〉_지난한 이야기, 2015, 한지에 먹, 36×1,380cm

13) 급격히 녹아 떠내려가는 빙하에 대한 문장은 필자가 버지니아 울프의 『올란도』(1928)에 영향을 받아 썼다. 작가는 ‘〈사랑의 정치〉_지난한 이야기’ 연작을 그릴 때 이를 참조하지 않았지만, 이후 다른 작품에 주인공 올란도의 다면성과 소설의 이야기 구조를 작업 방식과 재료의 물성을 통해 은유적으로 다룬 바 있다.

14)〈습한 빛 속의 움직임〉, 2021, 화선지에 채색, 유리, 에폭시, 스테인리스, 220×300cm

15)〈뜨거울수록 가벼워지는〉, 2019, 천에 채색, 가변크기

16)〈어느 사이에 흐르는 것〉(가상의 작품)

17)〈둘은 서로를 막아서게 되는 걸까〉, 2018, 화선지에 채색, 200×140cm

18)〈바람들은 달려간다〉, 2019, 화선지에 채색, 44×34.5cm, 2점

19)〈백야에 커튼을 닫는다〉, 2016, 한지에 채색, 49×64cm 

20)〈새벽에 어울리는 단정한 말들을 준비한다〉, 2016, 한지에 채색, 70×35cm

21)〈그것이 다 사그라질 때까지〉, 2016, 한지에 채색, 33×68cm 

22)〈그물 같은 하루를 빠져나가는 것〉(가상의 작품)

23)〈모노로지아의 여름〉, 2019, 화선지에 채색, 140×200cm

24) 2019년 전시 《종이를 세우고 돌을 감으면 가루가 흐르고 천이,》에 비치된 작가의 책 참조.

25)〈밤마다 굳어지는 돌〉, 2019, 화선지에 채색, 138×140cm

26)〈혼자는 헤쳐서 사라지고〉, 2018, 화선지에 채색, 200×140cm

27)〈그린한 숲속〉, 2018, 한지에 채색, 47×39cm, 2점

28)〈개운한 숲을 휘저을 거니〉, 2018, 화선지에 채색, 70×55cm

29)〈보라와 백군의 놀이〉, 2018, 한지에 채색, 47×39cm, 4점

30)〈아름답게 캄캄해진 밤 속에서〉, 2018, 화선지에 채색, 200×376cm. 작가는 〈아름답게 캄캄해진 밤 속에서〉라는 제목을 독일 시인 라이너 쿤체의 시 「예술의 끝」의 시어에서 가져왔다.

31)〈맑고 무거운 하늘을 보는 것〉(가상의 작품)

32)〈불과 바람〉, 2021, 화선지에 먹, 파열유리, 에폭시, 187×85cm

33)〈얼은 숨 속의 움직임〉, 2023, 화선지에 먹, 강화파열유리, 에폭시, 40×40cm

34)〈차가운 친구의 손을 잡고〉(가상의 작품)

35)〈나란히 행진하는 것〉(가상의 작품)

36)〈홀로 뜨거워져서〉(가상의 작품)

37)〈무심의 빛〉, 2019, 혼합재료,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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