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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돌봄, 노동의 중첩된 닦기와 쓸기

지켜본 이의 시선에서

by 형신

《이사전》

2025.07.28 ~ 2025.07.31

레드판다하우스 지하 102호 (서울 마포구 서강로 9길 44)

참여작가_권동기 김다슬 김서연 김서현우 박지영 박효범 소쇄 윤선우 이십칠 이유경 임종연 임태엽 조홍신 진강 최현희 STEAK FILM

기획: 김망고

협력: 윤형신

사진: 최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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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돌봄, 노동의 중첩된 닦기와 쓸기 : 지켜본 이의 시선에서.

(박지영)


《이사전》은 주최자 A와 B가 이사를 하며 생긴 집의 빈 4일 동안 열린 게릴라 전시다. 짐과 가구는 이미 떠났지만, A와 B는 전시라는 형태로 집에 더 머물렀다. 그러니 이사 이전이고, 이사 전시가 가능했다.


집 안에서 무언가를 닦고, 쓸고, 정리하는 행위는 금전적 보상이 없는 가사노동의 영역에 속한다. 반면 전시 공간에서 같은 행위는 ‘업무’로 인식되지만, 운영 과정에서 별도의 전담 업무로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전시 기간 동안 A와 B가 장판을 닦고, 창틀을 청소하고, 전선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았다. 진갈색 문틀 곁에서 연갈색 장판을 닦는 모습은 영락없이 가사노동 같았지만, 그 행위의 목적은 전시 준비였다. 가사노동이 일상의 지속을 위한 돌봄이라면, 전시 노동은 관객과 작품 (+@)을 위한 특정적 돌봄이다. 내가 본 A와 B의 여러 모습들은 가사노동과 전시 노동이 오버랩된 순간이었다. 또한, 전시가 진행된 4일 동안 쓸고 닦기를 포함해 전시를 열고 유지하는 다수의 업무가 포개져 있었다. 그 겹침은 전시가 끝나면 지워지는 기반이자, 기록되지 않는 손길이었다. 이 글은 그 보이지 않는 기반을 남기기 위한 기록이며, 하나의 전시 후기로 작성되었다.


7월 28일, 첫째 날

대부분의 참여 작가들이 각자 설치를 진행했고, 15명이 한 번에 모인 적은 없었다. 한 명씩 집에 들어서면 A가 작가를 맞이했고, 간단한 인사가 오갔다. 작품은 현장에서 즉석 배치됐고, A는 필요한 곳에 담백하게 손을 보탰다. 발생하는 짐과 쓰레기를 가려 모아둘 곳이 필요하기에 세탁실은 창고가 되었다. 두 번째 관객이 방문했을 때, 입구에 방명록이 생겼다. 맞은편에는 리플렛이 자리 잡혔다. 저녁에 도착한 B는 현장을 둘러본 후 몇몇 작품 위치를 조정했다. 관객의 동선과 시선의 흐름이 다듬어졌다. 둘은 가정집을 전시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해 형광등 위에 종이를 덧대 빛을 은은하게 만들었다. 스탠딩 조명을 더해 공간에 새로운 빛이 생겼다. 공간 안에 작품이 들어서고 A와 B가 만나자 기획적인 성격의 업무들이 수행되기 시작했다. 오후 10시, 첫째 날이 마무리됐다.


7월 29일 둘째 날.

정오쯤. A와 B는 각종 전선들을 마스킹테이프로 정리하고 있었다. 일상의 집 안에서 전자레인지, 선풍기, 충전기 등 각종 기기 전손들은 대체로 멀티탭에 연결되며 적당히 정리된다. 전시 공간에서의 늘어뜨려진 전선은 전시 관람에 방해가 된다. 둘은 전선을 정리하고 먼지와 오염을 닦았다. A가 창틀을 닦고 B가 바닥에 무릎을 댄 채 허리를 숙여 바닥을 닦았던 것 같다. 일상의 지속을 위한 닦음과 관객을 맞이하기 위한 닦음이 맞물리고 전환되고 있던 순간이다. 오후에는 플로우맵이 추가된 리플렛을 A가 출력해왔다. 새로 온 작가의 설치를 둘이 돕고 공간 구성과 스팟을 제안하며 테크니션 역할을 했다. 집 안에 커튼을 달기 위해 애썼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7월 30일 세 번째 날.

B가 방 한 구석에 앉아 각 작가 작품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기반에는 대체로 각 작가와의 만남과 대화, 작품의 직접 감상이 있었다. B는 각 작가의 작품 의도를 숙지했다. 전시로 인한 텍스트들이 점차 발생했다. 반면, 본래 세탁실이었더 창고의 쓰레기는 점점 쌓여 냄새가 났다. 전시는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가사노동에서 쓰레기를 비우는 일은 반복적이다. 우리는 쓰레기를 만들 수밖에 없고 누군가는 치워야 한다.


늦은 오후, 포토그래퍼가 방문해 작품과 전경을 촬영했다. 누군가의 집이 전시장으로서 도큐 멘트화됐다. 각 참여작가는 이 사진을 무상으로 받았다. 어딘가에 사진을 쓸 때 포토그래퍼의 이름을 서술하면 된다는 단 하나의 조건뿐이었다. 기간 안에서, 기록물이 생기고 그 기록물이 공유되고 활용하는 아주 간단한 절차가 생겨났다. A와 B는 전시 운영과 집 돌봄을 동시에 이어갔고, 피로해 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즐거움과 열정을 잃지 않았다. A는 대체로 사람이 붐비지 않는 방에 앉아있고 B는 어딘가의 의자에서 계속 글을 썼다. 사람이 오면 A는 담백한 맞이를 했다. 둘은 계속 전시 공간을 운영하듯 일을 하며 그 사이 계속 집을 돌보았다.


7월 31일, 마지막 날

작품 철수를 위해 제각기 방문한 작가들과 A와 B는 짧게 전시 소회를 나눴다. 오후 6시, 전시 종료와 함께 공간은 닦고, 쓸고, 치우고, 버리며 가정집으로 돌아갔다. 리플렛과 방명록이 철거되고, 집주인이 방문해 공간을 확인했다.


B는 계속된 청소로 기침이 잦아졌고, A와 B는 빈 공간을 끝까지 치웠다. 이것이 전시의 마무리인지, 가사노동인지, 이사를 위한 준비인지 내 눈에는 경계는 흐려졌다. 마지막으로 B는 에필로그를 써서 작가들에게 공유했고, 집은 게스트하우가 들어설 거라고 한다. 아마도 다시는 전시 공간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사전은 이사 후가 되었다.


--- 정작 작품에 대한 감상은 없지만, 이 글은 전시를 가능하게 한 노동의 목격담이다. 혹여 오해 될까봐 덧붙이자면, 15인의 작가와 작품이 없었다면 당연히 전시는 성립되지 못한다. 그들의 작품은 하나하나 매력적이고 공간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짧은 만남들로 이루어진 전시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건, 그 기반이 된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 크레딧에는 기록되지 않는, A와 B의 가사노동 같은 운영이 있었다. (동시에 아이러니 하게도 함께 올린 대부분의 사진들은 결과적 사진이지만) 이사라는 임시적 기획 속에서 본 그들의 모습은 전시의 다른 일면이었다.


집의 유지에는 누군가의 가사 노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꽤 오랜 기간, 그리고 지금도 그 중요성은 가려지고 있다. 모든 것들에는 노동이 필요하다.


새로운 집에 간 그들은 다시 짐을 풀고, 집을 돌볼 것이다. 모든 공간의 지속에는 돌봄이 필요하니까.


FIN.


PS. 급하게 마무리된 글에 변명을 붙여보자면, 임시성은 대체로 급함을 요구한다. 그리고 대체로 급하게 휘발되곤 한다. 나는 글을 다소 갑작스레 완결도 없이 마무리한다. 더한 의미부여보다는 내가 본 그 순간들을 전시의 한 부분으로 작성함이 나의 가장 큰 감상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이 글은 박지영 작가가《이사전》(2025.07.28 ~ 2025.07.31 )에 참여하며 느낀 소회를 담은 글입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인용 시에는 출처 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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