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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May 03. 2021

인습과 명예에 도전하다

─ 영화 《하라키리(할복)》




* 제 포스팅에는 항상 스포일이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바랍니다.








                           

 할복(切腹, Harakiri, 1962)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 다소 부담스러운 포스터와 연식. 누군가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쉽게 손이 가지 않았을 영화임에 틀림없다. ─ 그리고 지금은, 이 영화를 추천해준 그 분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자칫 지나칠 법한 영화에서 숨겨진 빛을 찾아낼 때의 짜릿함이란!








 


 사무라이들이 환영을 받던 전쟁의 시대는 가고 ─ 지금은 평화의 시대. 영주를 잃은 사무라이들이 하루 먹을 것을 찾아 헤매이던 시절. 에도의 다이묘, 이와이 가문의 마당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는 과거에 후쿠시마에서 유명한 사무라이 가문에 속해있던 자로서, 지금은 영주을 잃고 가난한 낭인이 되어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삶이 비참하고 부끄러워, 이렇게 굶어 죽느니 사무라이의 고결함을 지키며 할복을 하고 싶다고 이와이 가문의 마당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의 이름은 츠구모 한시로. 하지만 이를 들은 이와이 가문의 사무라이들은 수군거리며 그를 불러들인다. 




 ─ 혹시 모토메 치지와란 자를 아는가. 

 ─ 모른다.




 그를 불러들인 고문관이 던진 첫 질문에 그는 답한다. 자네와 같은 가문에 속했던 사무라이라고 하는데 모르는가 하는 질문에, 여전히 모른다고 답한다. 한때 12000여명이었던 가신들을 다 알수 없지 않은가. 그러자 고문관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할복에 대한 생각이 바뀔수도 있다고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츠구모 한시로가 방문하기 몇 개월 전, 모토메 치지와라는 낭인 사무라이도 같은 요구를 하며 방문했다고 했다. 이 때도 이와이 가문 사람들은 술렁댔다. 이유인즉슨, 과거에 센코쿠 앞마당에 그렇게 명예롭게 할복하여 죽고자하는 사무라이가 왔었고, 그의 기개를 높이 산 영주가 그를 가신으로 받아들었다는 소문이 돌자, 곳곳의 낭인 무사들이 너도나도 다이묘 가 앞마당을 찾아서 같은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가문들이 곤혹을 치르고 있었고, 어쩔수 없이 돈 몇 푼을 쥐어주며 낭인들을 돌려보내기 십상이었고, 이러한 이야기는 또다시 소문이 돌아 할복할 의지가 없은 낭인들이 돈 몇 푼을 받고자 여러 다이묘 가를 방문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와이 가문사람들은 모토메 역시 그런 낭인들 중 한 사람일거라 생각하고, 그를 본보기로 삼기로 했다. 바로 그의 요구를 받아들여 할복을 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토메는 진정으로 할복한 의지가 없었던 것인지, 할복의 명을 받자 마자, 이삼일의 말미를 주면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이와이 가문 사람들은 그를 속으로 비웃으며 그에게 할복을 재차 명한다. 그리고 더욱더 끔찍한 것은, 그가 가져온 칼이 진검이 아닌 대나무 칼임을 알고, 그 칼로 할복 할 것을 명했다. ─ 그렇게 모토메는 끔찍한 고통속에서 자결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다 듣고도 자네 생각은 변함없는가? ─ 고문관이 재차 확인한다. 츠구모 한시로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대답한다. 오히려 자신이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이 가문에서 모시는 붉은 갑옷에 대한 이야기라는 엉뚱한 답변까지도 슬그머니 내어 놓는다. (─ 그리고 이 답변 속에 담긴 심중은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모토메 때와 똑같이, 이와이 가문의 마당에는 이와이 가 무사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츠구모 한시로의 할복 예식이 준비된다. 막 할복예식을 시작하려는 때에, 한시로가 한가지 요구를 한다. 자신의 할복을 완성시켜 줄 무사를 자기가 직접 지명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총 세 명의 무사를 지명했는데 공교롭게도 세 명 다 갑작스런 병환으로 부재한 상황이었다. 고문관은 한시로의 뜻을 충분히 헤아려, 세 무사 중 한 무사의 집으로는 전령을 보내어 불러들이고자 하였다. 









 사자가 자리를 뜬 사이, 츠구모 한시로는 이와이 가 고문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사자를 기다리는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겠냐고. 자신도 한 때는 매우 번영했던 무사 가문의 가신이었고, 영주를 잃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이 가의 당신들도 내일 나처럼 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겠느냐. 한번 들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 말한다. 이와이 가의 고문관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 낭인의 가난 이야기라 하찮기 짝이 없으나
오늘은 남의 인생이라 해도 내일은 나의 인생이 되는 일도.

죽음을 바라고 죽음을 마주한 자의 이야기
단순한 한조각의 넋두리는 아닐 것
분명히 뭔가 가치 있는 것이 있을 터.





 그렇게 시작된 한시로의 첫 소절은 이러했다. 

 ─ 모토메 치지와. 그는 나의 지인이었다.





 모토메 치지와는 그의 막역한 오랜 친구의 외동아들이자, 그의 하나뿐인 딸의 사위였다. 그의 가문이 번영했던 시절 그와 그의 친구 치지와는 같은 영주를 모시는 가신이었다. 그러나 영주님이 죽고 나서, 그의 친구는 그 책임을 느끼고 할복을 하고, 그에게 하나뿐인 아들 모토메를 맡긴다. 가문이 몰락한 후, 어떤 가문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겨우겨우 먹을것을 벌어다가 살았지만 츠구모와 모토메 모두 무사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살고 있었다. 그리고 츠구모의 딸이 성숙해졌을 때, 츠구모는 어느 부잣집의 혼사를 마다하고 모토메에게 자신의 딸을 부탁한다. 귀여운 손자까지 보고 츠구모와 그의 딸, 그의 손자, 그리고 모토메까지. 네 가족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가난한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그들은 그 속에서 행복했다. 




 그러나 가난은 그들을 처절히 외면했다. 시작은 츠구모의 딸의 병세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각혈을 하며 하루하루 몸이 쇠약해졌고, 그 와중에 어느날 하나뿐인 손자까지 고열이 시달리게 된다. 츠구모는 딸과 사위에게 왜 의사에게 보이지 않냐고 묻지만, 의사에게 보일 돈이 없어서 보이지 못한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한채, 딸은 돌아 눕는다. 츠구모는 눈물을 보이며 "이 할비도 네 부모처럼 값나가는 것은 다 팔아치워서 도와줄수 없다"는 통곡을 하며 조그만 손자의 손을 잡는다.



 그러다 불현듯 무언가가 생각난 듯 돈을 구해보겠다고 떠난 모토메는, 돌아오기로 한 시간을 훌쩍 넘긴 밤,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그 때 모토메를 인도한 무사라 세 명이 있었으니, 바로 츠구모 한시로가 지목한 세 명의 무사였다. 



 

 그제서야 츠구모는 자신의 사위 모토메가 그렇게 아끼던 칼까지 팔아가면서 가정을 지키고자 하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정작 그 자신은 자신의 검을 아직 팔지 않고 갖고 있음을 인식한다. 그는 모토메의 싸늘한 주검을 뒤로 하고 자신의 칼을 붙잡고 목놓아 울음을 터트린다. 





사랑했다. 널 사랑했다.



 츠구모 한시로가 사랑한 것은 모토메였을까, 그의 칼이었을까.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의 하나로 이 장면을 뽑고 싶다. (─ 다만 아쉽지만, 어디서도 그 장면의 이미지를 찾을 수 없었다) 사실 그의 딸을 가난으로 몰아간 것, 자신은 능력이 없으니 당신의 딸을 거둘 수 없다고 한사코 거절하던 모토메를 끈질기게 설득한 것, 마지막까지 자신의 사무라이 칼을 팔아버리지 못한 것 ─ 그것은 바로 츠구모 한시로 본인의 사무라이에 대한 명예의식이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모토메의 주검 앞에서 자신이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대상은, 싸늘하게 식어 있는 모토메가 아니라 눈앞에 쥐고 있는 자신의 칼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했다고 눈물로 통곡하는 장면에서, 츠구모 한시로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무라이의 명예라는 그 허상을 벗어던지지 못한 그런 자신을 깨닫고 그토록 사무치게 통곡한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 포스터에서 기대할 법한, 사무라이 결투 장면은 지금껏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대의 여느 사무라이 영화가 그러하듯, 그러한 장면도 빠짐이 없었다. 츠구모 한시로가 할복예식에 앞서 지목했던 세 명의 무사가 갑작스레 병환에 든 것은, 낭인 사무라이인 츠구모 한시로에게 상투를 잘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셋과의 결투 장면, 특히 세번째 무사와의 결투 장면은, 화려하진 않지만 절제되면서도 영화 특유의 불온한 공기를 전달하는 매력을 가졌다. 그러면서도 츠구모 한시로의 결의를 느낄수 있는 묵직한 무게감도 함께 느낄수 있다. 










 ─ 이제부터가 진짜 이 영화의 묘미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과연 츠구모 한시로의 이야기를 들은 이와이 가문은 어떤 태도를 취할까. 한시로의 요구는 오로지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였다. 비록 자신의 사위 모토메가 사무라이로서는 부끄러울 법한 의도로 이와이 가문을 방문 하였을지라도, 이와이 가문 사람들의 배려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는가. 그렇게 불명예스럽게 방문할때에는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당신들은 그저 몇 푼 쥐어주고 돌려보냈어도 되었지 않은가. 당신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그 사무라이로서의 명예나 정신은 하나의 부질없는 인습에 불과하고, 한 인간이 입에 풀칠하며 살기도 힘든 현실 속에서는 무용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이와이 가문의 고문관은, 관객의 예상을 보기좋게 뒤집어 버린다. ─ 모든 것의 부정. 그리고 기존의 법도를 지킨다. 그가 택한 길은 츠구모 한시로를 죽이고, 치욕스러워진 세 명의 무사 역시 할복을 명하고, 이 모든 진실은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였다. 그렇게 그 형체도 없는 그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가문의 가신들이 다소 죽어나간다 할지라도.











 어쩌면 츠구모 한시로 그 자신도 모토메와 자신의 딸, 그리고 손자의 불행을 눈앞에서 뼈져리게 느끼기 전까지는 이와이 가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현실이라는 처절한 슬픔과 고통을 느끼고 이 모든 것을 깨부수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그 자신조차도. 



 그는 이와이 가문 무사들과 1대 다수의 상황으로 싸우다, 이와이 가문이 소중히 모시는 붉은 갑옷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는 그 붉은 갑옷을 그들의 앞에서 집어 던져 깨트린다. 그리고 ─ 할복시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기록 속에서는, 그는 그저 정신착란을 일으킨 낭인 사무라이였을 뿐이고, 그의 분노와 그의 도전은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오히려 사무라이의 법도를 충실히 지키고 타인의 본보기가 된 이와이 가문은 쇼군에 의해 칭송을 받는다. 










 츠구모 한시로가 깨트린 붉은 갑옷은 언제 그랬냐는 듯, 버젓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와 이와이 가문 무사들의 칼부림이 있었던 마당의 핏자국들도 몇번의 빗자루질에 모래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츠구모 한시로가 목숨을 걸고 결투했던 세 명의 무사에게서 잘라온 상투는 어느 하인에 의해 그저 휴지통에 쳐박히고 만다. 









 왜색이 짙다든가, 사무라이 소재라서 꺼려진다든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영화를 멀리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래도 뛰어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오래되고 지속되는 인습과 명예에 대한 도전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경우가, 이 영화가 일본영화라고 해서, 과연 일본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더 나아가, 그렇게 오래 지속되는 하나의 법도나 정신이, 비록 당장의 현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융통성이 없다 할지라도 무조건 사라져야하고 깨어트려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것이다. ─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그 무심하고 절제되게 정리되어 가는 이와이 가문의 마당─은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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