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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ghtly Mar 03. 2022

믿는 사람들의 삶에 찾아오는 고난(환난)의 의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고난


* 이 글은 신앙적인 경험과 고백과 간증을 담은, 매우 주관적인 글입니다.






'고난(환난)'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삶에 '고난'이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난'이란 '인생행로에서 만나는 온갖 수고와 고통과 어려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즉,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궁핍한 것, (육체적으로) 피로와 질병으로 인해 고통스럽고 곤고한 것, (사회적으로) 온갖 역경과 시련을 당하고 있는 것, (인격적으로) 비천한 상태에 빠지는 것 등을 가리킨다.

'환난'이란, 근심과 재난, 고난. 고통을 의미한다.

 - 출처 : 라이프 성경사전



성경에서 보면 '고난'이 찾아오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 첫 번째 형태의 고난은 인간의 잘못된 행실로 인한 것.

(자신의 잘못 뿐만이 아니라 윗 세대나 공동체의 잘못으로 인한 것도 포함된다. 윗 세대의 잘못으로 인한 것을 통상 '세대 간의 저주'라고 하는데, 이를 끊어내는 것은 기도가 필요하고, 민족과 나라와 같은 공동체로 인한 것은 회개가 필요하다.)

- 두 번째 형태의 고난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성도로 하여금 인내와 연단을 이루어 성숙하게 하도록 하기 위한 것.

- 세 번째 형태의 고난은 (어쩌면 가장 숭고한 형태이 고난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잔에 동참함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 (이것은 정말로 하나님께서 신뢰하는 자들에게 허락하실 수 있는 고난인 것 같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오늘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은 두 번째 형태의 고난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다가오는 고난.

내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고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가 쉽게 불안하고 두려워지며, 나아가 고난을 헤쳐나갈 길과 방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크리스천들에게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다. 갑작스럽거나 끈질기게 유지되는 가난, 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진로 문제, 시험의 낙방, 건강상의 어려움, 인간관계로 인한 어려움 등... 아무리 이유를 찾아보려고 해도, 딱히 무언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일들이 다가오고는 한다. 단순히 우연이라고 치부하자니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그렇다고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니 도통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고난을 겪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 인생의 가장 어두운 순간들에 이러한 고난의 상황들을 맞이하며, 나름대로 이유를 찾아보고 설명하고자 노력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때로는 스스로의 부족함과 잘못을 자책하며 회개를 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상황을 극복하고자 노력을 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저 그 상황의 무게에 짓눌려서 신음하며 무너져 있기도 하고... 그리고 수년에 걸친 그 과정 가운데에서 나는 결국 성경말씀과 기도응답 속에서 나름의 답을 찾아냈고, 아무도 가르쳐주거나 독려하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찾은 그것이 정말로 맞는지를 몸소 확인하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고 나서, 나는 (감사하게도) 내게 다가왔던 고난들의 상당 부분이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성취하면서 떠나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터널의 단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경험은 정말로 감사하고 놀라운 것이었다.


그 결과, 개인적으로 확신하게 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확신의 바탕에 하나님께서 한 치의 틈도 없이 완전하게 선하신 분이시고, 그분께서 전능하시며, 그런 하나님께서 나를 완전하게 사랑하신다는 성경적 진리를 믿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면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활용하셔서 그분의 가장 선하신 목적을 이루신다. (로마서 8:28)

2. 하나님께서 환난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시는 가장 선하신 목적은 우리가 인내와 연단을 통해 성장하고 (로마서 5:3-4)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하여 우리 영혼을 안전하게 하시는 것이다.

3. 그런데 하나님께는 우선순위가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그렇기에 때로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른 목적들이 후순위가 될 수 있다.

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가장 높으신 뜻과 목적을 꺾지 않으신다. 즉, 우리가 이 고난과 환난을 통과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굴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확신들이 내 삶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간단히 얘기해볼까 한다.




때는 바야흐로 고시생 때였다. 당시 나는 다양한 형태의 어려움들을 종합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우울증 불면증 등 많은 형태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계속되는 시험의 낙방이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시험은 번번이 떨어지고, 나이는 들어가고, 내 앞날을 향한 두려움과 불안함은 계속 커져만 가고... 머릿속에서는 온갖 의문과 불신이 휘몰아쳤다. 분명 기도하면서 인도하심을 받아서 들어선 길인데,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내가 무언가 착각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내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이 과연 나아지기는 할까? 나는 이렇게 폐인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내 삶은 망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은 수시로 나를 힘들게 했다. 극도의 불안함 속에서 잠을 자지 못하던 날이 부지기수였고, 나는 부끄럽게도 잠시간 고통을 잊고 잠에 들고자 술에 의존하기도 했다. 기도는 점점 신음과 울음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이 오지 않아 성경말씀을 읽어주는 오디오를 듣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나를 향한 사랑에 대해서 믿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몰라.


그날 밤 나는 내가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전능하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다고 '착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빛을 비추어주셔서 알게 되었던 것 같지만) 나는 하나님이 완벽하게 선하신 분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선하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내 삶의 모든 부분을 움직이실만한 능력이 없으시거나 아니면 나에게 별 관심이 없으실 수도 있다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착각과는 달리, 나의 믿음이 실제로는 완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순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 두 가지를 믿기로 결심했다. 즉, 나는 하나님께서 정말로 완전하게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그 하나님께서 정말로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삶에 관심이 지극히 크시다는 사실을 진리로서 받아들이기로, 믿기로 결정했다.


그 후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소 느린 듯한 변화였지만 점점 나는 회복되어가기 시작했다. 잠을 푹 자기 시작했고, 다시 제대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날마다 믿음이 조금씩 뿌리내려가자, 하나님께서는 다른 것들을 알려주시기 시작하셨다.


어느 날엔가는, 기도 가운데 그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가 자주 잘못 인용하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구절에서의 '선'의 의미는
너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어떤 목표가 아니라,
나의 선한 목적이다.
나의 선한 목적은 너희의 목표와는 다르다.
그것은 시험 합격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나는 뒤통수를 크게 맞은 것 같았다. 나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로마서 구절을 들을 때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셔서 내가 잘 되도록 도와주실 거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잘 되는 것'이 합격, 건강, 부자가 되는 것 같은, 성공과 번영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면서 나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은 성경에 너무나도 명확하게 나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목적은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연단과 성령의 열매라는 것을. 고난을 통해 우리를 성숙하게 하여 예수님과 같이 온전하게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고, 그것이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시고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 방식의 사랑이라는 것을.


그 생각에 다다르고 나니, 나는 덜컥 무서워졌다.


잠깐, 생각해보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를 연단시키셔야만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내게 생명을 주시고 내 영혼을 지키시고자 하는 아주 중요한 목적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내가 정말로 원하는 시험 합격이 그 목적과 상충되는 한 (내가 아무리 떼를 쓰고 안달을 해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합격시키실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우선순위는 내가 원한다고 뒤바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는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니까.


비록 이러한 부분들을 받아들이기 힘들기는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의 우선순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보다는 순종을, 조급함보다는 인내를, 그리고 무엇보다 상황과는 관계없는 평안과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더는 스스로를 평가하며 내 노력과 시험 결과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고, 오직 하나님의 손길에 하루하루를 올려드리는 삶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떨지 않고 시험을 봤고, 지금까지 봤던 시험 점수 중 가장 낮은 점수가 나왔지만 평온했다. 오히려 남들이 불안해할 정도의 점수를 받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걷고 있다는 깊은 평온이 찾아왔다. 그렇게 커트라인으로 1차 시험에 합격을 했고, 2차 시험 역시 (준비는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담대하게 치를 수 있었다. 평생 불안과 두려움에 떨기만 하던 내게, 그러한 수준의 평안은 정말로 신기하고도 생경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클라이맥스는 2차 시험 발표 전날 새벽이었다. 나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가 결과에 대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을 선택하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고, 눈물을 흘리며 절대 쉽지 않았던 고백을 했다.


하나님, 제가 정말로 합격을 원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가 불합격을 하더라도 오직 당신께 감사하고 당신을 신뢰하겠습니다. 제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선하심을 신뢰하기에, 불합격시키셔도 괜찮습니다.


이번에는 제발 합격시켜달라고, 이 고난을 끝내 달라고 졸라도 모자랄 판에, 나는 하나님께 '다 가져가셔도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내려놓는 기도를 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기도를 드릴 때, 내 마음은 불합격에 대한 고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받으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합격이라는 것을 주시기 전에 (내 영혼을 지키시고 단단하게 하시기 위해) 내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연단하셔야 한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 후, 나는 합격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나의 노력과 능력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되었고,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 상황과 관계없는 평안,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로서의 믿음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고통과 아픔이 하나님의 사랑이자 은혜였음을 고백하게 되었다.




각 사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은 놀랄 만큼 독특하기에, 나의 경험을 누군가의 삶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경험했던, 그리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정말로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며,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께는 우리의 소명보다 우리의 생명이 우선이며, 우리의 성공보다 우리 영혼의 연단이 우선이기에,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고난이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 그 고난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아마도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이 나그네의 삶임을, 우리에게 천국에서의 진짜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이 결코 떨어지지 않으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를 모든 것들 가운데 지키고 계심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믿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늘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나를 비롯한 모든 믿는 사람들이 우리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과 믿음의 선진들을 따라서 사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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