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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ghtly Mar 20. 2022

울음을 터트렸다

네가 울어서, 엄마도 울었어


한 치 앞을 알 수 없던,
마치 한 달 같던 6일을 지나
2022년 3월 18일 오후 세 시경,
33주 6일 차에 1.8킬로로
나의 작고 소중한 딸이 태어났다.


응애- 응애- 하고 들려오는, 가늘고도 높은 아기의 울음소리에 나는 안도감과 기쁨과 대견함에 울어버렸다. 나는 도통 믿기지가 않아 연신 '이게 우리 아기 울음소리가 맞나요?' '지금 이게 울고 있는 소리 맞죠?'라고 물어봤고, 주수에 비해 울음소리도 크고 산소포화도도 높다는 마취과 선생님의 말씀에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며 우리 딸 고맙다고 정말 기특하다고, 아무도 듣지 못하는 혼잣말을 되뇌었다.


수술의 두려움이 한순간 사라질 만큼,
너무도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지난 6일간 조마조마하게 하루하루 버텨왔던 것이
모두 이 울음소리를 위한 것이었기에.


정말 다행이야. 네가 호흡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34주가 되지 않고 태어난 아이들은 폐 발달이 다 되지 않아서 스스로 호흡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고, 그래서 울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기에, 33주 0일 차에 양수가 터지고도 나는 하루라도 더 아이를 뱃속에 품고 버티기를 원했었다. 적어도 폐 성숙 주사를 두 번 맞기까지 버티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고, 그 폐 성숙 주사가 효과를 잘 보고 아기의 폐가 조금이라도 더 자라서 자가호흡이 가능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34주를 채우는 것이 두 번째 목표였다. 과연 목표를 어디까지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장담도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조금 더 버텨보자고 하셨다가 당장 수술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실 만큼 상황이 가변적이었다. 아기의 심박수와 태동이 정상적으로 느껴질 때는 조금 안도를 했다가, 또 그렇지 않은 것 같을 때는 불안함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그렇게 일주일 같은 하루를 지나고 또 지났다. 양수가 없는 뱃속이 혹시라도 너무 힘든 것은 아닐까. 양수가 없어서 충격이나 중력 때문에 혹시라도 어디가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과연 내가 지금 엄마로서 제대로 된 선택을 한 것일까. 폐가 자라기까지 버티기보다는 그냥 수술을 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하루하루 걱정과 고민으로 애꿎은 배만 부여잡고 토닥거리며 버티다가, 니큐(NICU: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자리가 없으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에 34주를 채우지 못한 하루 전날 수술 날짜를 잡았다. 부디 무사해주기를. 부디 아픈 곳이 없어주기를... 부디 우리 딸이 숨을 쉴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수술 날을 맞았다.


당초 나의 수술은 18일 오전 9시 첫 수술이었다. 그런데 7시쯤 응급수술이 잡혔다며 양해해달라는 말과 함께 수술이 한번 미뤄졌다. 다행히 나와 아기의 바이탈 사인이 정상이었기에, 그리고 응급하게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있다기에, 기꺼이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던 중 11시쯤 다시 어느 의사 선생님이 뛰어오셔서는 정말 미안하다고, 자기 환자가 너무 상태가 급해서 수술실을 써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생각보다 응급 상황에 처한 산모와 아기가 많다는 점에 놀라면서, (나 역시 한 순간은 그러한 응급상황이었으나 지금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점에 감사하면서) 그리고 다만 한 시간이라도 더 아기를 키워서 내보낼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면서, 알겠다고 했다. 결국 내가 수술실에 들어간 것은 오후 두 시가 되기 십 분쯤 전이었다. 전날부터 긴장하며 기다리던 것이 맥이 풀렸고, 금식한 상황에서 기약 없이 기다리는 중에 다소간 진이 빠져서, 정신없이 마취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만을 고대하고 또 고대했다.


그리고 들려온 우리 딸의 그 예쁜 울음소리.


힘들고 무서웠을 텐데 씩씩하게 버텨주어서
너무나도 고마워 내 딸.
네 울음소리를 듣고, 엄마도 많이 울었어.


그렇게 우리 아가는 엄마의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로 니큐로 보내졌다. 나중에 신랑이 가져온 사진을 보니 그 작은 손에는 링거 바늘을 꼽고 있었고, 무언가 알 수 없는 호스가 입 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아기가 건강한지 너무 궁금했다. 그러나 신랑도 제대로 답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상태는 검사를 해봐야 알지만, 아기의 발목이 각도가 이상하게 꺾여있었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단다. 나는 양수가 없는 뱃속에서 오랜 시간 있다가 발이나 허리나 목 같은 곳이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은혜의 상태가 어떤지에 대한 설명을 대체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며, 나와 신랑은 계속 기다리기 시작했다. 척수마취와 절개의 후유증과 통증은 마음 졸임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날에서야 소아과 주치의 선생님을 통해, (감사하게도) 아기가 자가호흡이 가능하며 우유도 조금이지만 먹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 모를 패혈증 상황을 대비하여 항생제를 투입하고 있지만, 검사 결과가 나오고 나면 끊을 것이라고. 나는 '선생님, 발목은 혹시 어떤가요? 뇌출혈은 없었나요? 눈은 괜찮나요?'라고 연신 질문을 해댔고, 발목도 뇌에도 눈에도 지금으로서는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지 못했다는 고마운 답변을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잠도 이루지 못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침을 맞았다. 어지럽고 식욕도 없었지만 나는 엄마이기에, 작게 태어난 내 딸에게 모유를 조금이라도 더 조금이라도 일찍 먹이고 싶은 마음에 또 꾸역꾸역 미역국을 퍼먹었다. 먹고 어지러워서 잠이 들고 또 일어나서 수술 회복을 위해 걷고. 그러다가 또 극심한 어지럼증에 기절하듯 잠이 들고... 깨어서 또 미역국을 먹다가, 나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밥숟가락을 들고 엉엉 오열을 했다. "오빠, 나 마음은 너무 기쁜데 왜 이러지? 몸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봐... 마음은 진짜 기쁜데... 왜 이러지..." 당황한 신랑은 나를 어찌 달래야 할지 몰라했고, 나는 도통 멈추지 않는 눈물 콧물을 거듭 닦아내며 괜찮다고 미역국만 먹고 또 먹었다. 제발 빨리 모유가 나와주기를 바라고 또 기다리면서, 나는 옆자리의 산모가 수유 콜을 받아서 신생아실로 향하는 모습을 부럽게 바라봤다.


그렇게 은혜 생각만 하며, 회복을 위해 먹고 자고 움직이며, 나와 신랑은 신생아 중환자실 앞을 연신 기웃거렸다. 아기가 어떻게 있는지, 잘 먹고 있는지, 잠은 자는지, 혹시 무슨 문제는 없는지 너무 궁금했다. 면회는 안되고 사진만 찍어줄 수 있다는 말에, 거동이 불편할 때는 신랑에게 사진 좀 받아오라고 재촉했다. 그렇게 전달받은 사진 속에서 은혜는 꼭 시간 단위로 자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눌렸던 코가 좀 펴지고, 빨갰던 살이 좀 희어지고, 어느 때는 잠이 들었다가, 어느 때는 목욕을 해서 머리가 꼬불꼬불하다가... 우유를 먹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입가에 우유가 잔뜩 묻어있었다. 남들 눈에는 못난이처럼 작고 못생겨 보일 텐데 내 눈에는 어찌나 귀엽고 소중한지... (내가 이런 팔불출 엄마가 될 줄은 몰랐다.) 밤에 잠이 오질 않을 때면 그 짧은 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또 보기도 했다. 찡그리는 표정은 또 왜 이리 귀엽고 애틋한지. 울음을 터트리려다가도 토닥임에 금세 잠이 드는 모습은 어찌나 짠한지... 엄마가 옆에서 토닥여줘야 하는데.


그렇게 또 혼자 찔끔찔끔 울다가, 한 번은 용기를 내서 신랑을 보내지 않고 내가 직접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러 갔는데 바쁘니까 웬만하면 하루에 한 번만 오라고 한다. 그래서 퇴원하면 하루 한 번도 못 오는데... 너무 궁금해서 그랬다고 바쁘시면 다음에 오겠다고 미안하다고 하니까 뭐가 그리 궁금하냔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냥 우리 딸이 밥은 잘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혹시 또 어디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궁금한데 너무 지나친 관심이었나... 엄마가 너무 극성인가... 내 배로 낳아놓고 아직 직접 한번 얼굴 보지도 한번 안아보지도 못했는데. 우리 딸 울 때 토닥여주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쌀쌀맞게 얘기하는 것이 너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행여 우리 딸한테 잘 안 해줄까 봐 싫은 소리 못하고 죄송하다고 하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속상해서 또 엉엉 울었더니 신랑이 무슨 그런 사람이 있냐고 다음에는 자기가 가겠다고 했다. 감사하고 기쁜데 속상하고 서럽고... 계속 이상하고 복잡한 마음이다.


우리 딸이 울어서 울고, 건강해서 울고, 걱정되어서 울고, 보고 싶어서 울고... 엄마 좀 많이 우는 것 같아 은혜야. 엄마 너무 바보 같지? 엄마가 힘내서 곧 모유 가지고 갈게. 잘 먹고 잘 커서, 엄마랑 아빠랑 같이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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