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는 창조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지긋지긋하게 훼방을 놓는 아주 고약한 적이다. 아직 완벽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시작은 영영 미뤄진다. 시작을 했어도 과정 내내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을 다그친다. 그러나 결국 완벽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서 마무리도 하지 못한다. 완벽주의에 빠진 사람에게는 0 아니면 100밖에 없다. 완벽하지 않은 것은 모두 소용없다. 완벽주의는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하는 것과 전혀 관련이 없다. 완벽주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 결국 내가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수치심에서 비롯된다.
훌륭한 결과물과 완벽한 결과물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훌륭한 결과물도 결코 완벽하지 않다. 교육학자 토드 로즈는 ‘훌륭한 소설가’에 대한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며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든다. “소설가 엘모어 레너드는 대사, 극적 장면, 등장인물을 엮어나가는 면에서는 세계 수준급이지만, 줄거리 구성은 다소 두서없고 평범한 편이다. 작가 스티븐 킹은 줄거리 구성의 대가이지만,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생기가 없고 매력이 부족하다. 톨스토이는 문학사에 길이 남을 등장인물을 탄생시켰고, 절정부 대목까지 흥미진진하게 줄거리를 전개했지만, 가끔씩 교수 같은 어투로 설명하며 이야기를 질질 끌다가 갑자기 끝맺기도 했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하는 일은 모든 것이 불완전하다. 훌륭한 작품도 불완전한 결점을 그대로 드러내며 어느 순간 마침표를 찍을 뿐이다. 자신의 결과물이 결점 없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창조과정은 진척도 결말도 없이 마비되어 버린다.
완벽주의가 도사리고 있는 한 창조 과정에서 즐거움과 만족감, 성취감 또한 누릴 수 없다. 완벽함에 집착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동안 재능은 피어나지 못하고 창조성은 질식해 버린다. 나는 종종 정말로 준비가 안된 사람들이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을 본다. 그 결과 참담하게 실패하기도 하지만, 의외로 좋은 성과를 내며 순항하기도 한다. 결과가 어떻든 그들은 그 과정에서 폭풍 성장을 이루며 정말로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다. 반면 반짝이는 재능과 열정, 당장 시도할 역량까지 차고 넘치는데도 ‘나는 아직 부족하다’며 시작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정확히는 대부분이 그러하다.)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두려움과 수치심을 넘어가는 용기다.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는 일은 간단치 않다. 부모의 양육 태도, 학교와 사회의 분위기 등이 우리를 실수하고 실패하지 말고 더 잘해야 한다며 완벽주의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오래되어 몸에 밴 생각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중 가장 근원적 원인인 자의식부터 출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빠르다.
완벽주의는 자의식 과잉, 즉 자기의식이 지나치게 많아서 남의 시선이나 평판에 집착하고 있는 상태다. 완벽주의에 빠진 사람은 ‘잘하는 나’, ‘타인의 인정’, ‘좋은 결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 괜찮게 보일지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내가 ‘중요한 사람’이고 싶은 깊은 욕망이 있다. 내가 너무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현실의 내가 그렇지 않을 때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혼자 못 견뎌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부족한 모습을 지적받으면 발작 버튼이 눌린 것처럼 과도하게 반응한다. 부족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잘하지 못할 것 같은 일은 시작도 하지 않는다. 매 순간 온 정신이 ‘나는 잘하고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에 집중되어 있다.
나는 자의식 과잉과 완벽주의에 빠져 과도하게 심각해질 때마다 종종 내 인생을 게임으로, 나를 게임판의 캐릭터로 상상하곤 한다. 게임을 시작할 때 캐릭터를 선택하듯 나라는 캐릭터를 ‘여자, 감수성 풍부, 특기는 말하기’ 등으로 선택했다. 내 인생이라는 게임에 등장하는 미션들을 나는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래봤자 게임일 뿐이다. 게임에서 매번 잘하고 이겨야 하는 건 아니다. 이기면 뿌듯하고, 지면 아쉬우니 한번 더 하면 된다.
인생을 게임으로, 나를 게임판의 캐릭터라고 상상하면 우리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마치 높은 곳에서 내 인생을 내려다보듯 ‘조망권’을 획득하게 된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어서, 멀리서 바라보면 딱히 심각할 것이 없다. 고작 게임 미션에 도전하면서 첫판부터 완벽하게 잘해야 할까? 고작 게임 미션에 실패할까 봐 게임을 시작도 안 하고 겁에 질려 머뭇거려야 할까? 고작 게임을 완벽하게 이기려고 목숨 걸고 심각해져야 할까? 고작 게임판의 캐릭터인 내가 엄청나게 잘나고 멋지고 대단해야 할까?
조망권을 획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심각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생은 진지하게 살아야 하지만 심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게임의 목적은 오로지 재미일 뿐, 잘하고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는 심각함에 빠질 때마다, 내가 시시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는 게 견딜 수가 없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말해보자.
"이건 단지 게임일 뿐이야. 이 게임을 할 거야? 말 거야?"
게임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루한 화면 속에 멈춰 있을 것이다. 게임을 한다면 미션에 도전하며 몰입하는 재미를 느낄 것이다. 미션에 성공했다면 성취감을, 실패했다면 아쉬움을 느끼며 다시 도전해보고 싶을 것이다. 뭐든 그렇게 하면 된다. 진지하되, 심각하지 않게.
창조성을 깨우는 과제 - 나를 가볍게 보기
나를 게임 캐릭터라고 상상하며 아래 항목들을 적어보자. 할 수 있다면 캐릭터를 그림으로도 그려보자.
- 캐릭터 이름 :
- 외모 특징 :
- 주요 스킬 :
- 취약점 :
- 현재 도전중인 미션 :
- 미션 완수를 위해 새롭게 개발해야 하는 능력 :
인용 : <다크호스>, 토드 로즈, 21세기 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