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영양제는 없다
“우리 애가 밥을 너무 안 먹는데, 좋은 영양제는 없나요? 선생님이 추천 좀 해주세요!”
진료실에서 보호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밥을 대신할 만큼 좋은 영양제가 있다면, 그건 노벨상 감이죠!”
솔직히 고백하자면, 필자도 어렸을 땐 삼시세끼 꼬박꼬박 밥 먹기를 귀찮아 하는 지독한 편식쟁이였더랬다. 번거롭게 밥과 반찬을 꾸역꾸역 먹는 대신 영양제 몇 알로 간편하게 식사를 끝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나였다. 그리고 지금은 어렸을 때의 나만큼이나 밥을 잘 안 먹는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처지다. 우리 딸은 그나마 과일과 생선은 잘 먹는 편이라 심각하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항상 밥 먹는 것보다 노는 게 더 좋아서 밥 먹기를 귀찮아한다는 게 문제다. 우리 딸도 어렸을 때의 나처럼 영양제 몇 알로 간편하게 식사를 얼른 끝내고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직 그런 영양제는 없다. 영양제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일 뿐, 식사를 대신하는 영양 공급원이 될 수는 없다. 영양제에 아무리 좋은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해도, 음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섭취하는 것만큼 우리 몸에 잘 흡수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밥과 반찬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만큼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적절하게 공급해줄 수 있는 영양제는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사실이 꼭 불행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모르는 체로 알약만 먹고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이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얼마나 많으며, 우리의 삶에서 먹는 기쁨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데….
밥을 잘 안 먹거나 편식이 심해서 부모된 자들의 애를 태우는 우리 아이들에게 먹는 기쁨을 알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글을 통해, 바로 그 문제를 풀어볼까 한다.
[밥을 잘 안 먹거나 편식이 심한 아이를 둔 부모님을 위한 행동 지침]
1) 식재료 구입이나 요리에 아이를 참여시킨다.
2) 간식을 줄여서 아이가 식사 시간에 배고픔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3) 식사 시간에는 스마트 매체 또는 TV를 보지 못하도록 하고, 책 읽기나 장난감 놀이도 금한다.
4) 아이가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먹거나, 엄마가 아이를 따라다니며 먹이지 않도록 한다.
5) 가능하면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식사 도중에는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한다.
6) 억지로 먹이지 않도록 하며, 잘 안 먹는다고 잔소리하거나 야단치지 않도록 한다.
7) 아이가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일 때는 긍정적인 보상을 해준다.
8) 새로운 음식을 줄 때는 익숙한 음식과 비슷한 음식부터 적은 양으로 시작한다. 이때 아이가 강하게 거부하면, 억지로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9)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지 말고, 싫어하는 음식도 함께 준비하여 반복적으로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
10) 아이에게 억지로 떠 먹이거나 먹으라고 강요하기보다는, 부모님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11) 식사 개시 후 30분이 지나면 상을 치운다.
밥 안 먹는 아이와 매 끼니마다 사투를 벌이는 보호자들의 노고에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엄마의 노력이 외려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지금 당장의 한 숟가락에 집착하기보다는, 좀 더 길게 보고 접근하는 것이 좋다. 매 식사 시간마다 아이와 팽팽한 갈등 구도로 대립하기보다는, 과감하게 치고 빠지는 전략이 아이에게 더 잘 먹힐 수도 있다.
충분히 먹지 않은 상태라도 식사 개시 후 30분이 지나면 아이의 뇌는 이미 포만감을 느껴서 식사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따라서 식사 시간이 30분을 넘기면, 차라리 상을 치워버리는 것이 장기적 예후는 더 좋을 수 있다. 한 시간이 훌쩍 넘도록 엄마가 아이를 따라다니면서 밥을 떠 먹이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는 먹는 행위 자체에 싫증을 느껴서 밥을 점점 더 안 먹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게 먹었다는 생각이 들어도 30분이 지나면 바로 치워버리고, 애써 만든 음식을 아이가 거부하면 ‘그럼, 먹지마!’라고 말하면서 엄마가 맛있게 먹어버리는 등의 결단력 있는 태도가 장기적으로는 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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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