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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Aug 18. 2021

소파에 정자세로 앉아 쉬는 느낌이랄까?

방학이 끝났다. 길어 보였던 방학이 벌써. 


아이에게 이번 방학은 '별로 한 게 없는' 방학이었을 거다. 휴가도 안 갔지, 그렇다고 친구들하고 어울려 논 것도 아니지, 내내 집에 있다 겨우 학원만 왔다 갔다 했으니 딱히 방학 같지도 않았을 거다. 이 놈의 코로나. 겨울 방학은 좀 달라지려나. 아니 내년 여름 방학은 진짜 다르겠지? 

내가 봐도 '별로 한 게 없는' 방학이었다. 별로 한 거라는 게 아이가 생각하는 것과 좀 다르지만. 


방학이 시작되면서 아이와 이야기했다. 학기 중에는 책 읽을 시간도 운동할 시간도 따로 내기 힘드니 방학 동안에는 이 두 가지에 힘써보자고. 쓰고 나니 좀 가증스럽긴 하다. 내가 언제 힘써보자며 권유를 했던가. 일방적으로 설교를 했지. 

"공부를 꾸준히 하려면 체력이 중요한데 운동을 너무 안 해. 다른 때는 못하더라도 방학 때만이라도 하루 1시간 아님 못해도 30분은 하자. 그리고 책을 많이 읽어야 독해력도 좋아지고 어휘력도 좋아지는데 Y는 책을 너무 안 읽어. 학기 중에는 시간 없다는 거 엄마도 아니까 방학 때는 좀 읽자. 알았지? 엄마가 어렵고 지겨운 책을 억지로 읽으라는 게 아냐. Y가 좋아하는 책 아무거나 괜찮아.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주문해 줄 테니까." 

이건 뭐 말만 '~하자'지 '해라' 보다 더 한 말 같기도 하다. 이제 와서 보니.


아이는 그다지 달갑게 듣지는 않았지만 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를 했다. 자기도 알고 있다며 그러겠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운동은 꼭 하겠다고. 다른 것도 중요한데... 어쨌든. 결과를 미리 말하자면 한 달의 방학 동안 아이는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 운동은 딱 3일 했다. 아무리 마음을 넉넉하게 가져보려 해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다. 한 번은 방학 중간쯤 이걸로 꾸중을 한 적이 있었다. 방학이 절반이 지나가는데 계획대로 하고 있는 거냐, 시간을 너무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있는 것 아니냐고. 아이는 이번에도 내 말에 동의를 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다고. 깊게 반성하는 눈치였다. 그래 놓곤 그게 하루를 가지 못했다. 


보다 못해 하루는 주말 아침에 하루 계획을 적어보라고 했다. 아이는 순순히 하루 계획을 꼼꼼히 짰다. 일정 중엔 게임이나 휴식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런 아이가 귀엽긴 한데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고, 아이에겐 애써 미소를 지어 보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고 한 마디로 심란했다. 

난 신경을 안 쓰는 듯하면서도 이젠 뭐 할 거야? 라며 틈틈이 할 일을 체크를 했다. 저녁때쯤 되니 제법 한 일이 꽤 되었다. 책도 읽었고 운동도 했고 일본어 공부도 했고 거기다 학원 숙제까지. 물론 게임도 빠지지 않았다. 하루가 마무리될 무렵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되게 알차게 보냈지?"

"응, 그런 거 같애."

"그렇다고 게임을 못 한 것도 아니고."

"응"

"앞으로 이러면 좋을 것 같지 않아? 할 일은 할 일대로 하고 놀 것도 다 놀고."

"응"

'응'이라고는 하는데 뭔가 상쾌한 '응'이 아니다. 역시나.

"엄마 근데 행복하지는 않아. 놀아도 노는 것 같지 않고.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아."

아이는 갑자기 소파에 거의 눕다시피 하더니 "쉬면 이런 느낌으로 쉬어야 하는 데 그래야 '아 행복하다'하는데 그런 느낌이 아니야. 뭔가 정자세 하고 쉬는 거 같아. "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느낌인지 확 와닿았다. 기막힌 설명인데? 하면서 잠시 감탄도 했다.  

"시간 같은 거 안 따지고 퍼져서 놀고 싶다는 거지?" 

아이는 내 말이 그 말이라는 듯 고개까지 끄덕이며 "응응"이라고 한다. 

"그것도 좋은데 그럼 끝도 없이 게을러지잖아."

"그렇긴 하지."

여전히 미련이 남는 듯한 아이에게 난 다음부터는 오늘처럼 하루 계획을 아침에 미리 세워'보자' 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나름 노력은 하겠지. 생각은 하고 있겠지 하면서 지켜보는 중이지만 아이는 내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아이가 내 기대를 채울 하등의 의무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암. 알고 말고. 근데 맘을 완전히 비우기가 어쩜 이리 어려운지. 이쯤에서 그만 놀고 책 좀 봤으면 좋겠는데 안 움직인다. 아예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그럼 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말을 할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 진짜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말을 꺼내려는 순간 아이가 "공부해요"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럼 말을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정도로 참고 기다려 줘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더 답답해진다. 


아이는 무조건 믿어주라지만 무조건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 아니 여기서 말하는 아이는 몇 살까지를 말하는 걸까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그렇게 생각이 없는 아이는 아니니 알아서 하게 두자 했다가도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아이 혼자 알아서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이제 클 만큼 컸는데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보고 혼자 계획도 세울 줄 알아야지 했다가 열일곱이면 아직 애지 싶었다가 왔다 갔다 한다 아주. 


믿는다는 건 애초에 뭘 말하는 걸까. 난 아이의 뭘 믿고 싶은 거지? 뭐가 못 미더운 거지? 공부일까 자기 갈 길 찾아가는 걸까. 설마 자기 갈 길 못 찾아갈까 봐 지금 이렇게 애가 타는 건가. 자기 갈 길 안에 공부가 포함돼서 그러는 건가. 자기 갈 길 좀 못 찾아가면 어때서? 아닌가? 그럼 내 노후가 피곤해지나? 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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