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레드벨벳을 몰라
아이와 함께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게스트로 두 명의 아이돌이 나왔는데 한 명은 이름과 얼굴을 각각 따로 알고 있어 방송을 보면서 '아 얘가 걔구나'했고, 다른 한 명은 이름도 얼굴도 몰랐다. 워낙 모르는 아이돌이 많으니 굳이 알려고 하진 않았다. 방송을 한참 보다 이 둘은 한 팀이고 팀 이름이 레드벨벳이라는 걸 알았다. 레드벨벳은 알고 있었다. 노래도 들으니 알 것 같았다. 비록 이 노래가 레드벨벳 거였다는 건 몰랐어도. 난 옆에 있던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얘네 둘이 레드벨벳이었어?"
아이는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와우 어떻게 레드벨벳을 몰라?"
그러곤 이상한 말을 했다.
"엄마 문찐이야?"
"문찐이 뭐야?"
아이가 싱글싱글 웃는다. 뭐지? 별로 안 좋은 뜻일 거란 감이 빡 왔다. "뭔데?"하고 재차 묻자 아이가 대답했다.
"문화 찐따"
"푸하하하"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이가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이 노래 좋지 않아?"
"잘 못 들었는데? 뭔데?"
"하이어 파워라고 요즘 많이 나오는데"
"모르는데?"
아이는 들으면 알 거라며 핸드폰에서 음악을 찾아 들려줬다.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그랬다. 노래는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니었다. 아이는 아 참 답답하네, 하는 얼굴로 이 노래가 요즘 얼마나 핫한지 어필이라도 하려는 듯 뮤직 비디오까지 찾아서 보여줬다. 굳이... 하는 마음으로 아이가 내민 영상을 보는데 뮤직 비디어 속 댄서들이 어디서 많이 본 사람들이다.
"어!"
이들을 알아보고 놀라는 나를 보고 아이는 이제야 답답함이 풀렸는지 신이 나서 말했다.
"이 사람들 알지? 한국 홍보 영상에 나왔던 댄스 팀이잖아"
"그러네"
"대박이지?"
놀라긴 했어도 대박까지는 아니었다. 아이는 다시 실망하는 눈치였다.
"엄마 이 가수 누군지 몰라?"
"누군데?"
"와 진짜 대~박. 와~"
아이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연신 대박을 외쳤다. 이번엔 내가 답답해서 "누군데?"라고 물었다.
"콜드플레이잖아. 알지?"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니 왜 몰라. 엄마 알잖아"
아이는 진짜 답답하다는 듯이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를 다시 찾아 들려주었다. 노래를 들으니 알겠다.
"아~ 얘네가 콜드플레이였어?"
"알지? 콜드플레이 뮤직비디오에 우리나라 댄스팀이라니. 진짜 대박이지 않아?"
"그러네"
시큰둥한 내 반응이 아이는 영 아쉬웠는지 "어떻게 콜드플레이를 몰라"라더니 진심으로 안쓰럽다는 듯이 내게 한 마디 했다.
"엄마 문화인 맞아? 너무 문화랑 담쌓은 거 아냐? 옛날엔 음악도 잘 듣더니... 책만 보지 말고 음악도 좀 듣고 그래."
콜드플레이에 문화인까지 들먹일 건 뭐람. 나중에 콜드플레이 노래가 뭐가 있나 찾아보니 세상이 내가 한 때 자주 들었던 Paradise도 있었다. 음악을 그동안 너무 멀리하긴 했나 싶었다.
콜드플레이는 그렇다 쳐도 레드벨벳 멤버는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레드벨벳을 아는 게 어디야. 내가 멤버까지 알아야 하나?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근데 또 문찐이라는 말이 너무 웃기다. 문화 찐따라니. 아, 것도 내가.
별생각 없이 네이버에 문찐을 입력하니 국어사전에 문찐이란 말이 나온다. 대중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단어 설명 밑에 예문이 하나 있었는데 출처가 2016년 10월 한국일보다. 뭐? 2016년? 2021년 8월에 문찐이란 말을 처음 들은 나는 정말 문찐이 맞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