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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Aug 13. 2021

오징어볶음과 재능 그리고 노력

요리 학원 일정표를 보니 오늘의 메뉴는 오징어볶음과 들깨 무나물이었다. 오늘은 오징어볶음을 먹는 건가 하는 생각과 작은 캔맥주라도 하나 사둘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치긴 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고 걱정이 앞섰다. 아이는 칼로 야채나 고기 정도는 썰어 봤어도 해산물을 썰어 본 적은 없다. 특히 오징어는 겉에 내는 칼집이 빠질 수 없을 텐데 그건 좀 아이에겐 위험하지 않을까 싶었다. 학원에서 아이라고 패스해도 된다고 할 리도 없을 테고. 아이 성격에 또 꼼꼼히 하느라 애쓸 게 분명한데 그러다 다치지는 않을지.


준비물을 챙겨주면서부터 "오늘 오징어볶음이던데? 오징어 손질이 쉽지 않을 텐데."라며 우려의 눈빛을 보냈다. 아이는 매번 그렇듯 시크하다. "응" 이 대답은 손질이 쉽게 않을 거라는 거에 대한 대답인 걸까, 오늘 메뉴가 오징어볶음이라는 거에 대한 대답인 걸까. 

"오징어 손질 한 번도 안 해봤잖아. 칼집도 낼 텐데."

"안 해봤지. 근데 하는 거는 많이 봤어."

어디서 봤냐고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튜브다. 난 집에서 한 적이 없다.

"보는 거랑 하는 거는 또 다르지."

"그렇긴 하지."

아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나만 불안해서 아이가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손 조심하라는, 너무 꼼꼼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당부를 늘어놓았다. 아이는 여전히 시크하게 "알았어. 알아서 잘할게"하고는 집을 나섰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 오늘 한 거 봐봐."라고 했다. 일단 손은 안 다친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난 가방을 열면서 "왜? 잘했어?"라고 물었다. 아이는 표정은 덤덤했지만 그게 애써 덤덤한 척하는 거라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잘했구나 하는 직감이 왔다. 가방에서 락앤락 통을 꺼내고 뚜껑을 연 순간 난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니 이걸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할 일인가. 이게 오징어 손질이 처음인 그것도 17살 아이가 한 솜씨가 맞는 건가. 게다가 맛도 있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생각날 만큼.


걱정을 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보기에 아이는 요리에 어느 정도 소질과 센스가 있다. 우선 손재주가 있는 편이다. 그림이나 만들기 같은 것도 잘한다. 아이 그림을 본 주변 사람들은 종종 미술 쪽으로 진로를 정하는 건 어떠냐고 묻기도 할 정도였다. 그때마다 아이는 매번 미술은 취미로만 할 거라고 잘라 말하긴 했지만. 그리고 뭔가 생각해서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한다. 좀 오랫동안 레고도 좋아했는데 정해진 모형보다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해서 만드는 걸 더 좋아했다. 요리도 비슷하다. 유튜브를 많이 참고하긴 하지만 "이렇게 하면 더 맛있을 거 같지 않아?" "여기에 이걸 넣으며 어떨까? 잘 어울릴 것 같은데"라며 나름의 응용을 더한다. 대체로 괜찮은 조합이다. 나보다 아니 나와 달리 감이 좋다.


나는 아이에게 매번 잘하는 걸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다. 좋아하지만 소질이 없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좋아하던 일도 싫어지게 될 확률이 크고 그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단 생각에서다. 잘하는 일을 하면 능률이 오르고 능률은 성과로 이어지고 성과가 이어지다 보면 일이 재밌어진다. 노후에야 하고 싶은 일을 여유롭게 해도 상관이 없겠지만 젊어서는 이 편이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가 선택한 요리는 꽤 긍정적이다. 소질도 있고 좋아하니. 물론 바뀔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괜찮은 선택인 것 같다. 



아이가 진로를 결정할 때가 되니 '재능'과 '노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력'을 강조하면서 뭐든 '열심히' 하라고 한다. 심지어는 열심하면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성공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난 그 말에 깊은 의심을 품는다. 안타깝지만 세상은 '열심히'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열심히'에 더해 운도 따라줘야 하고 가끔은 경제적 능력이나 인맥이 간절한 순간도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태어날 때부터 탄탄한 재력과 뛰어난 지능과 천부적 재능 등을 갖춘 사람을 따라가긴 많이 어렵다. 사람들 말처럼 열심히 하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애초부터 갖고 태어난 사람들에 비하면 그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만큼 시간도 많이 걸리고.


가끔 난 정말 노력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도와준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었을까. 소질이라는 것도 없었을까. 적어도 노력을 인정해 준 사람은 있었을 텐데. 그것도 아니면 그 노력이 인정받는 사회 분위기 덕도 분명 있었을 테고. 

사실 노력 안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다들 노력은 하지만 시대에 따라 많이 필요로 하고 크게 인정해주는 분야에서 하는 노력이냐 덜 필요로 하고 덜 인정받는 분야에서 하는 노력이냐에 따라 성공 여부도 갈리고 연봉 차이도 나는 것 아닐까. 근데 마치 혼자만 피나는 노력을 해서 세상 인정을 얻은 양 우쭐대는 사람들은 보면 좀 안타깝다. 물론 시대 흐름까지 정확히 파악하는 노력까지 한 노력이었다면 그건 인정이지만.    



요리 얘기로 다시 돌아가면, 오징어 손질이 처음인 아이도 이만큼 할 정도면 학원에 오래 다닌 사람들은 진짜 수준급이겠구나, 이런 건 눈 감고도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중간에 들어간 아이가 걱정이 되어 물었다. 

"따라가기 힘들지 않았어?"

"아니, 제시간에 끝냈어."

"그래? 다들 잘하는데 혼자 못 따라갈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거기 다 오래 다닌 사람들이잖아."

아이의 대답이 의외였다. 

"오래 다닌다고 잘하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

그러면서 안타깝다는 듯이 "뭐가 잘 안 됐는지 나보다 훨씬 오래 걸린 사람도 있었어."라고 했다. 내가 "예쁘게 하려다 보니 그랬나? 왜 그랬을까?"라고 하자 아이가 내 귀에 대고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모양도 내가 더 나은 것 같아." 

혼자 웃음이 났다. 누가 듣는다고 귓속말을. 혹시라도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 사람이 듣게 되면 기분 상할 걸 생각해서 그런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아이 나름의 배려라면 배려다. 


난 아이의 이런 면이 좋다. 이런 마음 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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