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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Aug 20. 2021

아이의 사생활

한 1년 전쯤부터였다. 아이와의 대화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아이와 나눈 대화를 잊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꽤 재치가 있는 편이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웃음이 터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episode 1

<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보고 있었다. 수술 장면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의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저런 걸 어떻게 맨 정신에 하지?"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아이가 말했다.

"술 한 잔 하고 할 순 없잖아?"  


episode 2

시험 날 아침이었다. 아이가 집을 나서면서 말했다. 

"아, 떨려."

"떨려? 너무 긴장하지 마. 공부한 만큼 결과가 나오겠지."

아이가 답했다. 

"그럴까 봐. 공부한 만큼 결과가 나올까 봐."


때론 생각이 필요한 질문을 할 때도 있다. 


"엄마, 이번에 디즈니에서 인어공주 실사판 영화를 만드는데 인어공주 역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했대. 이걸 두고 인종차별이네 아니네 말이 많아. 엄마는 이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이게 인종차별하고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엄마는 마을을 구하고 모든 사람한테 인정받는 거랑 지구를 구하는데 아무도 모르는 거랑 고른다면 어떤 걸 고르겠어?”


이런 질문을 받으면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생각도 내 생각이지만 난 아이 생각이 더 궁금하다. 아이 의견을 묻고 평소보다 더 귀 기울여 듣는다.  


아이의 이런 생각과 말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특히 재치 가득한 말들은 사람들과 공유도 하고 싶었다.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을까. 주고받은 대화를 짧게 카드 뉴스 형식으로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생각이 필요했던 대화는 내 생각을 더해 블로그에 글로 남겼다. 반응이 좋았다. 덕분에 웃었다는 사람부터 아이가 궁금하다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하루는 그날도 아이가 뭔가 빵 터지는 말을 했다. 난 잊을세라 잽싸게 메모를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아이가 물었다. 

"엄마 뭐해?"

"그냥 재밌어서 적어 놓는 거야."

"설마 이거 어디다 올리고 그러는 거 아니지?"

뜨끔했다. 

"왜? 올리면 안 돼?"

"당연하지. 사적인 대화인데. 내가 엄마 앞에서 편하게 하는 말인데 이걸 왜 올려?"

"Y가 하는 말이 너무 재밌어서 올리는 건데? 그냥 재밌는 말만 올리는 거야. 사생활 같은 걸 올리지는 않아."

"내가 하는 말도 사생활이지. 올리지 마."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고 이름이나 얼굴이 공개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구 아들 하면 사람들이 다 알 만큼 내가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특별히 안 될 이유가 있나 싶었다. 


꽤 당황스러웠다. 실은 아이와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기록해 두었다가 기회가 되면 책으로 엮을 생각이었다. 그럼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고 아이에게도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 했다. 아주 나중에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엔 아이에게만큼은 그 책이 곧 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책 얘기까지는 아니지만 엄마는 너와 지낸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취지의 말을 조심스럽게 전하고 아이의 반응을 살폈다. 아이는 그럼 혼자 기록하면 되지 않냐며 공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아들아, 엄마는 책을 낼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공개를 안 하니. 아쉽긴 해도 일단은 그러겠다고 했다.


사실 아이 이야기는 이미 낸 두 권의 책에 많이 실었다. 아이가 안 읽어서 모를 뿐이지. 대부분 어릴 때 이야기이고 어릴 때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아주 사적인 부분을 이야기한 건 아니라서(내가 생각하기에) 굳이 아이에게 허락을 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편 이야기는 허락을 받았어도. 

아이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어떤 면에서는 그럴 줄 알고 아이 의견을 안 물은 것도 있다. 굳이 뭐 하러, 안 좋은 얘기를 쓰는 것도 아닌데 뭐, 라면서.


생각해 보면 아이들의 사생활이나 생각은 자주 무시가 되는 것 같다. 애초에 있기나 하냐는 듯이 완전히 무시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 보인다. 특히 SNS 상에서 부모가 올리는 아이들 사진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아이는 동의했을까. 아니 자기 사진이 공개되고 있다 걸 알고는 있을까. 

아이가 아주 어릴 적에는 나도 자주 아이 사진을 올리긴 했다. 그때는 아마 싸이월드였을 거다. 1촌 공개였던가 뭔가 있었는데, 암튼 나랑 관계를 맺은 사람만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쉽게 사진을 올리곤 했는데 나중에야 1촌 공개로 해도 그 사람이 사진을 퍼가면 그만인 것을 알고는 많이 신중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가 조금 크고부터는 아이 사진은 공개하지 않았다. 아! 아이가 처음 교복을 입었을 때 내 눈엔 너무 귀여워서 교복 입은 사진을 잠깐(하루) 카톡 프로필에 올렸다 지운 적은 있다. 그 이후로는 없다. 아마 앞으로도 아이 허락 없이는 공개할 일은 없을 거다.


사진 공개는 비교적 엄격했으면서 글에 대해서는 꽤 관대했던 것 같다. 글은 다르지 란 생각이 어느 정도는 있지 않았나 싶다. 글이 사진과 다른지 아닌지는 아직도 헷갈리는 부분이긴 하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아이 이야기를 계속 쓰고 있는 이유는, 이후에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책에 대한 이야기까지 전부 다 했다. 더 자라면 이 기록이 소중한 추억이 되지 않겠냐는 말에 아이는 약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럼 쓰긴 쓰는데 너무 개인적인 얘기는 쓰지 마."

"당연하지. 엄마는 Y의 생각을 담고 싶은 거지 생활을 기록하려는 게 아니야. 그리고 써도 Y의 생각이나 말에 대한 엄마의 생각을 더 많이 쓸 거야."

"알았어. 그럼"

완전히 썩 내켜하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허락을 받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와의 이야기를 써 가는 중이다. 책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건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나온다고 해도 언제가 될지 모를 일이며, 언제가 가장 좋을지도 고민해 볼 문제다. 아이에게 가장 영향이 가지 않을 시기로 정할 테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고 3이 되기 전일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가 될지. 아님 더 나중 일지. 


언제가 될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이와의 소중한 추억을 아이의 사생활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기록해 보려 한다. 그런 면에서 늘 쓰고 나서 스스로 검열을 해본다. 이 정도는 괜찮은가 하고. 오늘도 검열을 한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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