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옥 Aug 05. 2021

나도 못하면서 아이에게 바라긴

요즘 '벌거벗은 세계사'란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세계사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기도 하고 나오는 강사에 따라 세계사를 보는 시각도 다양해서 즐겁게 보고 있다. 출연진들도 좋다. 엉뚱하고 그다지 역사에 대한 지식이 많아 보이지 않는 가수 은지원과 똘망똘망하고 두루두루 아는 것이 많아 보이는 아나운서 이혜성의 대조적인 면을 보는 것도 재밌다. 특히 난 이혜성에게 눈길이 많이 갔다. 기본적으로 역사적 지식도 많이 있는 것 같고 거기에 더해 프로그램 준비도 많이 한다고 느꼈다. 


사실은 이혜성이 아나운서라는 건 어제 처음 알았다. 봉준호 감독 통역을 완벽히 해내서 화제가 됐던 샤론 최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다고 해서 유튜브로 검색해서 보고 있었다. 멋지다며 감탄을 하고 있는데 영상이 끝나자 유튜브는 샤론 최가 '온앤오프'란 프로그램에 잠깐 나왔던 영상을 연달아 보여줬고 그 영상에 이어 다시 '온앤오프'에 다른 출연자가 나왔던 방송분을 보여줬다. 화면은 "소화도 시킬 겸 영어 공부나 해볼까"란 출연자의 말로 시작되었다. 뭐야? 누군데? 하면서 화면을 보는데 아는 얼굴이다. 바로 요즘 눈여겨보고 있던 '벌거벗은 세계사'의 이혜성이었다. 이혜성이란 이름도 KBS 아나운서였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진 내가 잘 모르는 여러 아이돌 중 한 명이겠거니 했었다. 

화면에서는 이혜성이 영어 공부하는 장면이나 운동하는 장면 등이 나왔는데 뭔가 범상치 않다 싶었다. 뭐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호기심이 일어 다른 영상을 찾아보니 '공부 어디까지 해봤니'란 제목의 영상이 두 편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혜성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는데 중학생 때부터 서울대를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목표를 세운 뒤부터 어떻게 공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그렇게까지 공부를 해보지 않은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린 나이였임에도 정확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스스로 생각해도 두 번은 못 할 만큼의 노력을 했다는 것이 존경스럽기까지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나는 살면서 그만큼의 노력을 해 본 적이 있던가. '두 번은 못한다'는 고사하고 매번 '그때 좀 더 할 걸'이라며 후회하고 있는 일 투성이다. 지금도 그렇다. 이것저것 목표는 세우고 있는데 목표만 세웠지 느슨해도 너무 느슨하다.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무안할 정도이거나 아예 저만치 미뤄두고 매일 해야 하는데 하면서 마음만 무겁거나.


오늘부터 나도 좀 타이트하게 살아보자, 하는 결심이 나도 모르게 섰다. 계속 이러다간 더 나중에 크게 후회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하루 계획부터 다시 세워보자.


이런 결심을 하는 순간 옆에 있는 늘 여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방학이 시작될 때 아이는 계획했던 것이 있었다. 학기 중에는 바빠서 못 하는 운동과 독서 그리고 일본어 공부를 한다고 했다. 거기다 평소 관심 있던 요리 학원도 다니기로 했고. 지금 지키고 있는 것은 요리 학원 하나뿐인 것 같다. 일본어는 초반에는 좀 열심히 하더니 지금은 좀 흐지부지 되어 가고 있다. 운동이나 독서보다는 게임 하는 시간이 더 많다. 방학도 벌써 절반 이상이 지나고 남은 방학은 이제 겨우 열흘 정도다. 


난 정말 잔소리를 안 하는 편이었는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아직도 중학생 때처럼 여유를 부리거나 대책 없이 초긍정적일 때면 잔소리가 절로 나온다. 잔소리한다고 아이가 뭔가를 깨닫거나 다짐을 새로 하진 않을 거란 걸 잘 알면서도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에 하게 된다. 

해맑은 아이를 보며 남은 방학 동안이라도 좀 알차게 보내는 건 어떠냐 물었다. 아이는 지금도 알차게 보내고 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아이가 그런 나를 보고 물었다.

"왜? 내가 한심해?"

"아니 그럴 리가."

"근데 왜 한숨을 쉬어?"

"엄마가 그랬어?"

아이가 특유의 실눈을 뜨고 나를 노려봤다. 아니라고 더 이상 우기기가 그랬다. "아니 엄마는 Y가 좀만 더 하루를 계획적으로 보냈으면 해서. 개학하면 다시 시간이 없을 거 아냐. 그땐 또 시간 없다면서 운동도 그렇고 독서도 그렇고 못한다고 할 거잖아. 잘 안되면 플래너라도 작성을 해보던가. 너도 너 나름의 노력은 해봐야지." 아이가 "그런 그렇지"라며 수긍을 했다. 그러곤 내일부터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플래너 작성도 해보겠다고. 그러면서 플래너 하나를 사달라고 한다. 이번엔 진짜 뱃속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일단 아무 데나 써! 지금까지 플래너가 없어서 못한 거야?" 아이는 실실 웃으며 "응"이라고 한다. 하...


내 말을 내심 신경 쓰고 있었던 건지 늦은 저녁때 아이가 내게 와서 조용히 말했다. 

"엄마 나도 나 나름대로 하고 있어. 학원 숙제도 열심히 하고. 그리고 학기 중에는 시간 없어서 놀지도 못하는데 방학 때라도 놀아야지. 난 지금 학기 중에 못하는 거 방학이니까 하고 있는 거야."

"그래. Y 말도 맞긴 하다. 열심히 놀아."

아이가 씩 웃는다. 행복해서인지 머쓱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 등을 토박이며 생각했다. 나도 못하는 걸 무슨...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난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