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짱구 친구의 뼈 때리는 말 한마디
우리 집은 20평대 자그마한 아파트이다. 크진 않지만 우리 식구 불편하지 않게 아웅다웅 부대끼면서 잘 살아가고 있는 보금자리이다. 물론 언젠가 우리도 큰 집으로 이사를 가면 이렇게 꾸미고 살아야지 마음먹으며 리스트도 적어놓고 계획도 세워보고 하지만 그날이 언제쯤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우리 집 공간 중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곳은 거실에서 베란다로 이어지는 풍경이다. 우리가 2층이고 이 집에 이사 오고 처음 맞은 겨울 어느 날 방에 앉아 우연히 베란다를 내다보는데 겨울눈이 내렸고, 아파트 정원에 핀 눈꽃이 오롯이 내 것이 되는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워낙에 오래된 아파트이긴 하지만 그래도 바로 옆에 넓은 공원이 있어 자전거도 타며 운동도 할 수 있고, 대형 대학병원도 있으니 어렵지 않게 진료를 받을 수 있어 감사하며, 지하철역이며 백화점, 대형마트까지 걸어서 10분 이내라 더할 나위 없이 살기 좋으며, 무엇보다 우린 붕세권이라 쉽게 언제든지 맛있고 따뜻한 붕어빵을 먹을 수 있어 짱구와 나의 소확행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동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바로 짱구의 등굣길이다. 짱구의 등굣길엔 아파트를 가로질러 가는 지름길 대신 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고 중간중간 예쁜 화단도 있는 오솔길을 픽한다. 가을엔 단풍이 예쁘고, 계절마다 예쁜 꽃들도 피지만 무엇보다 차가 없는 안전한 곳이라 대만족이다. 유일한 문제는 우리 집이 좁다는 것이다.
맨 처음 이사 와서 방을 정할 때도 짱구의 방이 문제였다. 옛날 구조라 안방은 너무 넓고, 작은 방들은 상대적으로 너무 좁았다. 어느 방을 짱구방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제일 작은 방으로 정했고, 중간 크기의 방은 공부방으로 하기로 했다. 짱구방이 좁아서 침대와 책상을 같이 놓을 수 없기도 했지만 잠자는 공간과 공부하는 공간을 분리하고 싶었고, 제일 작은 방이 안락했기 때문에 짱구방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가끔은 왜 우리 집은 친구네 집보다 작냐고 투정을 부릴 때도 있고, 그때마다 나는 친구네는 식구가 더 많으니 1인당 면적은 우리가 더 넓을 수 있다는 나름 과학적 접근법으로 이해를 시키지만 그것도 안 통하는 날이면 ‘우리보다 훨씬 좁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tv에서 봤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전기도 안 들어오고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부터 시작하여 며칠 전 나 몰래 아빠를 꼬셔서 산 장난감까지 혼날 보따리가 한가득하지만 풀이 죽은 짱구를 보면 나의 못남 때문에서 괜히 아이만 혼난 거 같아서 맘이 안 좋다.
처음에는 자기 방이 생겨서 좋아라 했지만 짱구도 이제는 커서 침대와 옷장이 겨우 들어가는 방을 답답해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으니 아직은 괜찮다고 한다. 처음에는 우리끼리만 사니 좁다는 것을 못 느꼈는데 짱구가 크고 초등학교를 들어가서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기를 좋아하는 짱구는 사전 통보 없이 당황스럽게 친구들을 데리고 하교를 한다. 학년초 학교가 끝나고 친구랑 놀고 싶을 때 친구네 집에 엄마나 할머니 등 보호자가 있는 집에는 놀러 가도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에 친구를 데리고 와서 놀아라 했다. 그래서인지 이젠 우리 집이 짱구 친구들의 아지트처럼 되어버렸다.
맨 처음 친구들이 우리 집에 들어왔을 때의 반응은 역시 ‘너희 집 작다’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중 우리 집이 가장 작은 평수이고 우리 집과 같은 평수는 4동뿐이 없으니 친구들 집은 결과적으로 우리 집 보다 넓다. 너무나도 해맑고 솔직한 아이들은 거리낌 없이 보이는 데로 악의 없이 이야기했겠지만 듣는 엄마의 마음은 메어진다. 하지만 나에게 마음의 상처를 남긴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재미있게 놀고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커다란 식탁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그나마 넓은 거실을 점령해버린다.
지난겨울에도 짱구 친구 중 한 명의 생일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어 갈 곳도 없어서 이상하게 가장 좁은 우리 집에 모이게 되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가지고 놀거리를 찾고, 엄마들은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친구 중 한 아이가
“엄마 짱구네 집이 우리 집보다 훨씬 더 좋아. 집도 깨끗하고 장난감도 많아”
그동안 집안을 갈고닦은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지만 좀 찜찜하긴 하다. 그렇지! 우리 집이 깨끗하긴 하지. 그리고 한번 사면 먼지가 앉을 정도로 안 가지고 놀고 쌓아두는 한이 있어도 버리지 않는 짱구 덕분에 우리 집엔 장난감이 꽤 많다.
짱구도 많이 자랐고… 이젠 조금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긴 할 것 같다.
어린 짱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오는 이사 차량을 보며 이사는 사다리차로 짐만 옮기면 그냥 하는 것인 줄 알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언제쯤 알게 될까?
어릴 적 나 또한 아파트에 살고 싶다, 내 방을 갖고 싶다 얼마나 철없이 떼를 썼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짱구야! 이사 가자! … 짱구방도 좀 더 넓은 곳으로 언젠간 말이야!
그런데 언제쯤 갈 수 있을까?
오늘도 통장을 보며 계산기를 두드려보지만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복권이라도 사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