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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Jun 16. 2019

시위에 대하여

시위는 민주적이지 않다.

2019 홍콩 시위는 시위대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범죄자 송환법은 무기한 연기되었고 홍콩시위는 전세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렇게 시위는 끝났다. 


사실 나는 시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위가 많은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내가 시위를 문제라고 보는 이유는 크게 3가지이다.


하나, 시위에는 한 가지 의견만 존재할 뿐 논쟁이나 대화가 끼어들 수 없다. 

민주주의의 아름다움은 폭력으로 유지되던 권력의 분배과정에서 폭력을 빼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권력의 분배를 이루어 낸다는 것이다. 전쟁, 내전, 암살 등 다양한 정치과정의 폭력적 행위를 논쟁과 투표로 바꾸어 희생없이도 의견을 관철하고 호응을 받는다면 권력을 분배받을 수 있게 한 것이 민주주의의 미덕이고 꽃이다. 하지만 시위는 이제 정면으로 반대한다. 그들의 의견을 알린다라는 측면에 시위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 어떠한 의견이 시위를 통해서만 사회에 알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시위가 타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한 자리라면 왜 시위는 같은 생각 혹은 배경, 단체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시위대를 구축하고 그 외의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기회를 두지 않는가? 시위대가 스스로 우리의 의견과 다른 사람들은 이쪽에 모여서 이야기해주세요 라고 외치는 것을 본 적 있는가? 

민주적인 시위라면 차라리 커다란 원탁을 가져다 놓고 시위대 측 의견을 대변할 사람들을 앉히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시위에 관해 묻거나 반대 의견을 표할 수 있도록 하여 토론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행위를 하는 곳이 이미 있다. 국회이다.  국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시위를 한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고 토론의 정신을 잃고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기 때문인데 시위에서 똑같은 짓을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둘, 시위에는 승리가 없으나 승리가 있다고 믿는다.

시위에는 승리가 없다. 위에서 홍콩 시위에 대해 승리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는 그냥 언론의 미사어구를 따라 사용한 것일 뿐 내 생각과는 다르다. 시위는 사회를 바꾸고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고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순간 끝난다고 보통 생각하지만 시위가 끝난 후 다가오는 정치과정이 있기에 결코 시위에 승리는 없다. 시위에 어떠한 의견에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100% 일치하는 생각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다. 같은 법안이나 사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정도의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큰 카테고리 하에 묶일 수 있기에 시위를 같이 하는 것일 뿐 똑같은 생각을 지녔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혁명 후 혁명세력 내 갈등이 반드시 뒤따라 왔던 것이다. 현대에도 똑같다. 

시위가 끝났다면 시위의 승리를 자축할 것이 아니라 시위대 내부의 의견을 듣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한다. 혹시 이번 시위가 지도부의 의견만으로 흘러간 건 아니었는지 피드백하고, 앞으로 우리가 주장했던 의견이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논하고, 궁극적으로 이번 시위를 통해 우리가 바랬던 사회가 어떤 것인지 이야기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후에도 관련 사안에 관심을 계속해서 두어야 한다. 즉, 시위의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며 새로운 사회로 변화하는 가장 첫 단계일 뿐인 것이다. 

위와 같은 과정이 홍콩 시위에서 진행되면 좋겠다. 궁극적으로 중국의 1국 2체제를 넘어 자유 평등 민주의 이념을 가진 자유 홍콩이 진정으로 실현되길 바란다. 하지만 실제로 시위는 내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진행되지 않는다. 한국의 가장 큰 민주화 시위였던 6월 항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이 주도한 시위에 직장인을 비롯해 각계각층 사람들이 참여했으나 시위의 정신이나 사람들의 의견이 정리되지 않아 결국 6월 민주화 이후에도 군부 출신 대통령이 등극하고 불완전한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촛불 시위도 현재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누가 탄핵되었고 대통령이 되었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촛불 시위 이후, 우리가 승리라고 자아도취 되버린 사이에 우리가 참여한 시위에 우리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었는가? 촛불 시위의 정신을 누군가가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여 우리의 생각도 그러하리라 재단하는 것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 하다못해 촛불 시위의 정신이 무엇인지 합의하여 이를 헌법이나 법률로 남기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 있는가? 내가 보았을 때는 아직까지 그러한 과정은 없는 것 같다. 아니면 나만 모르게 철저하게 폐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일 것이다. 

위와 같이 사람들은 시위에 승리가 있다고 착각하고 승리로 끝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미완의 혁명이 많은 것이다. 고귀한 뜻을 세우며 시작했어도 잠깐의 작은 승리에 도취되어 진정한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시민 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나폴레옹 황제가 그러했고 수많은 흑인 인권 운동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이 그러하다. 


셋, 비폭력적 시위는 당연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전제는 사람은 모두 평등하고 똑같은 정도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다. 평등한 사람들은 서로서로를 해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폭력은 오직 공권력에 의해 적절하게 사용될 때만 정당성을 가지며 그 이외의 폭력은 모두 처벌의 대상이고 배제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시위대는 당연히 비폭력적이여야 한다. 정당한 공권력의 집행을 때려부수며 행진할 권리는 시위대에게 없다. 타인의 일상을 방해하면서 시위를 이어나가야할 정당성도 없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자신이 존중받고 싶다면 타인도 존중해야한다. 하지만 시위는 너무나 쉽게 폭력적이 된다. 물론 과거와 같이 과격한 진압이나 부패한 권력의 개로 충성하는 공권력에 대항하는 것이라면 폭력적인 수단이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가지겠지만 현대에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러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만해도 너무도 당연하게 시위대는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고 공권력을 공격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사후 통제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다수다.(시위 후 파손된 경찰버스나 장비에 대한 구상청구가 이뤄진 사례가 있는가에 대해 찾아보면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위는 당연히 비폭력적이다. 물론 전제가 중요하다. 민주주의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의견이 다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감히 몇 가지 판단조건을 내고자 한다. 

1) 선거를 통한 합법적 정권교체 가능 2) 공권력의 행사를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관 존재 3) 국민의 의견을 취합할 수 있는 제도의 존재 및 기능 4) 권력의 분산과 견제가 이루어지는 권력구조 존재 5)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언론기관 혹은 매체의 존재

위 5가지가 만족한다면 나라면 민주주의의 기본은 이루어졌으며 폭력적 시위의 정당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므로 무조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시위가 참 많은 요즘이다. 저녁 광화문광장은 의견의 홍수이다. 태극기 부대, 세월호, 민주노총, 기독교, 각종 시민단체 등등 모두가 나와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난 그들이 마련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테이블을 본 기억이 없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폴리스라인이 서지 않은 것을 본적이 없으며, 시위대로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않은 적이 없다. 시위대가 내세우는 가치나 주장이 얼마나 올바르고 고귀한지는 모르겠으나 민주주의 사회의 본질을 무시한 채 민주적이지 않은 시위대가 하는 가치와 주장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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