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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빌더 Sep 26. 2023

배우생활, 힘들면 그만해도 돼

그래도 좋으면 계속하자

연극배우인 남편의 공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남편은 바쁘면 끼니를 거르고(먹을 게 생각이 안 난다는데 그게 무슨 느낌인지 나는 잘 모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미간에 주름이 깊어진다. 여기저기 염증성 질환음 덤이다. 요즘 남편은 잘 못 먹고 인상 쓰고 다니는, 염증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10월 공연 막바지 준비 중에, 11월, 12월 다른 공연들까지 예정되어 있어 종종 새 공연 대본 리딩을 갔다가 10월 공연 런이 이어지는 하루를 보내고 녹초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 사이에 가족행사나 지인들 경조사가 겹치면 그야말로 주 7일, 쉴 새 없이 온몸을 움직여야 한다.


오늘 아침 남편은 끙끙거리며 잘 일어나질 못한다. 열은 없는데, 어제 늦게 자지는 않았는데, 많이 피곤한가 보다 싶어 서둘러 아이 등원을 시키고 출근 준비를 한다. 일어나려 애쓰느라 끙하는 소리가 나오는데 힘이 없어서인지 끙 소리에 기합이 덜 들어가 몸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이렇게 힘들어서야 이 일이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공연 준비를 하는 남편은 즐거워 보이지 않고 고단하고, 고뇌하고, 안팎의 갈등을 다루느라 소진되는 것처럼 보인다. 잔뜩 긴장이 들어가서는 쉬지 못하고, 왜 밤마다 라면은 끓여 먹는지. 돈이 되는 일도 아니요, 돈을 버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다. 마냥 재미있는 일도 아니다. 남편이 공연 준비에 들어가면 나는 일정을 쪼개 육아를 하고 일을 하고 살림(은 거의 안 하지만 남편이 한가할 때보다는 내 일이 조금 늘어난다)을 하며 몸이 두 개인 듯 살아야 한다. 카드값, 다른 카드값, 대출이자, 보험료가 며칠 간격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면 빈 통장 같은 마음이 되어 삶이 버겁기도 하다. 반쯤 잠든 남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자기야, 괜찮아? 힘들면 이거 그만하자. 그만둬. 뭘 위해서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남편의 힘 빠진 웃음을 뒤로하고 출근을 하겠노라 나왔다. 내가 뱉은 말인데 내 머릿속에 반복되는 말. 힘들면 그만해. 뭘 위해서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만해도 된다는 말을 해놓고,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한 것은 아닌가 잠시 반성하기도 하고(물론 남은 아니지만), '돈 안 되는 일'에 대한 경시처럼 느껴졌을까 싶어 조심스러운 마음이 뒤늦게 찾아온다. 


출근해서 상담 한 케이스를 마치고 잠시 카톡을 하면서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도 좋아? 힘들어도 좋아?


충분한 대답을 들은 것 같다. 근데 연극은 좋아. 그래, 그게 좋은 마음이면 해야지. 끝난 게 아니면 더 가봐야 한다. 현실적인 문제들은 감당이 되는 수준이니 끊임없이 가야 끝까지 갈 수 있는 일이라면 더 가봐야지. 결혼할 때 했던 말 그대로다. 연기를 그만두고 돈 되는 일을 할까 망설이던 남편에게 내가 물었었다. 끝까지 해본 게 맞냐고. 끝까지 했으면 언제든 그만둬도 되는데, 하고 싶은 일을 지금 중단하려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다고. 내가 진짜 힘들면 그때 말할게. 지금으로선 내가 충분히 할 수 있어라고 말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배우만 힘들어 보이는 게 아니다. 심리학자인 나의 일도 그렇게 보일 것만 같다. 상담이 즐거운 법은 잘 없다. 대신 감격과 감동이, 괴로움 속에서 찾는 의미감이 있다. 배우의 일도 그럴 테지. 우린 미련하게도 실리적으로 살지 못하고, 의미와 꿈을 찾아서 삶을 채워야 하는 부부가 되어놔서, 힘들 때면 서로의 어깨에 의지하며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려 한다. 상황이 정확하게 반대라면 남편은 나에게 더 잘해주었을 것이 분명하기에. 그리고 언젠가 남편이 돈을 많이 벌면 나는 조기퇴직을 하겠노라 미리 말해두었다. 그게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암튼, 햄릿, 걷는 인간.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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