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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 Oct 30. 2020

초짜 운전수, 7시간 운전을 했다

 창 밖을 빠르게 스치는 커다란 산과 너른 바다. 알맞게 서늘한 공기와 은근한 가을 햇살에 괜스레 나른해지는 이른 아침. 나는 삼척으로 향하는 쭉 뻗은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다.

 뭐 솔직하게 말하자면, 앞서 말한 모든 감상은 이미 내 시야 밖으로 벗어난 지 오래이다. 1시간 전부터인가, 안전벨트에 짓눌린 어깨에서 전해오는 은근한 통증에 신경이 곤두섰지만 나는 짐짓 즐거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엄마랑 같이 가니까 더더 좋다!
곧 삼척 도착이야






 지난 4월, 아주 오랫동안 장롱에서 푹 묵은 면허증을 꺼내 들었다. 그동안 차일피일 미뤄왔던 운전 연수를 받기에 휴직기에 들어선 지금만큼 적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운 좋게도 그맘때쯤, 언니가 기존에 타고 다니던 소형차(모닝)를 아기에게 좀 더 안전한 차로 바꾸게 되었다. 언니가 폐차를 고민하기에 옳다구나, 적당한 값을 치르고 차를 받아왔다. 첫 차는 역시 중고 차지.

 이제 시간적 여유도 있겠다, 운전 연습을 할 수 있는 차도 생겼겠다. 바로 운전 연수에 돌입했다.




 3일간의 집중 연수를 끝내고 다시는 운전하는 법을 잊지 않으리라, 참 부지런히도 운전을 했다. 분당, 잠실, 마곡, 인천, 양평, 천안 등 2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그 어디로든 핸들을 틀었다. 군대 운전 조교 출신인 친구를 옆 좌석에 태우고는 일부러 잔소리를 청해가며 운전을 연습했다. 운전을 다시 배우기 시작하고부터 내 목표는 하나였다. 바로


'엄마 태우고 여행 가기'


 운전은 금방 배울 수 있었다. 평소 겁이 많은 편도 아니기에 '서울 운전'이라고 하면 일단 손사래 먼저 치고 보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내 대답은 항상 "오케이, 고!"였다. 자동차 뒷 창에 성인 머리통보다 더 큰 초보 운전 딱지를 붙인 주제에 겁도 없이 이곳저곳 잘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친구들'과 함께일 때거나 '나 혼자'일 경우였다. '누가 내 차에 타고 있는가'에 따라 내가 운전에 느끼는 부담감은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가령, 한 번은 천안으로 운전을 하고 가게 될 일이 있었다. 필자의 본가에서 천안까지는 약 1시간 30분이 걸리는데 내가 운전하는 차에 무려 생후 8개월 차 조카님이 탑승하신 것이었다. 그 날 어찌나 씨게 긴장을 했던지, 묻지도 마시라. 언니네 집에 무사히 도착해서는 몸살로 하루 종일 몸져누워버렸다.


 이렇듯 동승자가 누구냐에 따라 긴장도가 달라지는 상황에 무려 '엄마를 옆 좌석에 태우고 운전한다'라. 내가 몸살로 또 한 번 몸져누우리란 것은 너무나 자명해 보였다. 결국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디폴트 값 자체를 올리는 것뿐이었고 운전 실력 향상을 위해 운전 연습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중순, 엄마의 생신 날.

 가족들과 삼척으로 호캉스를 떠나게 되었다. 아빠는 급한 업무들이 한꺼번에 밀려든 탓에 불참을 선언했고 남은 인원 중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엄마. 단 둘 뿐이었다.

 지난날 "우리 딸들은 언제쯤 운전해서 엄마가 쉬면서 갈까"하며 장난스레 진담을 꺼내던 엄마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눈 앞을 스쳤다. 더욱이 그 날은 당신의 생일이었다. 운전이 길어지는 날에는 무릎 통증을 호소하던 당신을 익히 봐왔기에 더더욱 운전을 맡길 수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든 7시간 안전 운전을 해보리라 결심했고 결전의 날을 받은 심정으로 당일 아침을 맞이했다.






 다행히도 삼척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평일 오전인지라 차도 많지 않고 날씨도 좋고. 평창 근저리를 지날 때면 항상 덮쳐오던 흩뿌연 안개도 어쩐지 그날은 잠잠했다. 다만 운전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긴장감에 몸이 피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동승자가 나의 어머니인데 운전 실력과는 별개로 긴장이 될 수밖에. 엄마 아빠는 그동안 우리들을 태우고 그 길고 긴 꼬부랑 길들을 어떻게 운전해 오셨던 건지, 새삼 익숙했던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또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옆 좌석에 앉은 엄마는 모처럼의 외출에 행복하신지 창 밖의 구름이 어떻고 산은 또 어떻고 하시며 지금 당신 눈에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예쁜지 늘어놓으셨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눈 앞으로 끝도 없이 펼쳐진 회색빛 도로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옆 좌석에 앉은 엄마의 목소리로 전해오는 행복을 느끼며 그간 당신들이 어떤 마음으로 운전을 해오셨던 건지 조금은 알겠다고 생각했다.




 삼척까지 3시간 반. 왕복으로는 7시간.

 운전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된 초짜 운전수의 패기 넘치는 도전은 이렇게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글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앞으로는 더 좋은 곳 많이 모시고 다녀야지, 하는 여전한 다짐과 함께.


이걸로 또 하나의 다하자 프로젝트 ‘내가 운전해서 엄마와 함께 여행하기’ 성공적으로 완료.


엄마 생신기념 호캉스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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