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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고고 Oct 27. 2023

개발자랑 일하다가 기계식 키보드를 알아버렸다

키보드는 회사에서 주는 거 써야지라던 내가 용산가서 키보드 타건을 했다

동기가 10만원이 넘는 키보드를 샀다고 해서 기겁을 하며 놀랐던 내가.. 찬바람 씨게 불던 날 패딩 모자까지 뒤집어 쓰고 반차를 쓰고 용산 타건샵에 가서 키보드를 샀다.


회사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것이라고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번쩍 손을 들고 새로운 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동안은 마케팅/ 기획/ 개발 등등 기능적으로 팀이 나눠진 조직에서 일했지만, 새로운 팀에서는 모든 직무의 사람들이 하나의 팀을 이뤄 일을 하게되었다.(너무 새롭고 신기해..!)


요즘 그로스해킹이다 뭐다 다양한 이야기가 많지만, 나는 서비스의 시작을 함께 하기보다는 외부에 실체가 공개되기 직전에 프로젝트에 합류했다(우선 내가 다니는 회사는 그러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가 어떤식으로 일을 하는지, 어떤 프로세스로 협업을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기에 새로운 팀은 마치 미지의 공간을 탐험하는 우주비행사가 된 기분이었다 ㅇㅅㅇ(눈이 번쩍)


특히, 개발자... 이분들의 존재는 알면 알수록 새로운 존재였다..

IT업계에서 일을 하기는 하지만, 트래킹 코드 삽입 요청하는 정도만 개발자와 이야기를 해봤으니 나에게 개발자란 아직도 검정 화면에 영어로 된 문자를 입력하며 혼.자. 일하는 사람 정도일 뿐이 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협업이 가장 필요한 직무가... 개발자 인것 같다...


마케터가 대행사 - 매체사 등등 외부 사람들과 소통하듯, 개발자는 백엔드-프론트엔드간의 소통이 프론트엔드-디자이너의 소통이 그리고 모든 맥락을 서로 사전에 협의하고 진행해야하는 그런 직무였다... 알면 알수록 혼자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게 미안한 감정으로 생길 정도였다. (지금은 팀이 만들어진지 벌써 2년이 되어가기에 API 등등 대애추웅 알아듣는게 생겨서,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많고 많고 많은 직무인지 더 알게 되었다...혼자서는 절대 못하고, 간단한 작업 하나라도 서로 합을 맞춰야하는..)


무튼 새로운 팀에는 개발자가 거의 반 이상이었다. 팀이 생기고 거의 2-3달은 어떤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지 매일 매일 회의의 연속이었는데, 개발자가 많은 팀이니 그들이 쓰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몰라 따로 노트에 적어서 위키에 답을 달아달라고 할 정도였다.


(오랜만에 옛날 팀 위키를 찾아봤는데 ㅋㅋㅋ 너무 귀엽다)

디버깅/ 컴파일/ 빌드 ㅋㅋㅋㅋㅋㅋㅋㅋ 휴;; 나 새끼 이제 이해하고 있다는게 대견하다 ㅋㅋㅋㅋ

팀 위키에 만들어진 개알못 용어 사전

개발자가 많은 조직에서 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이 다양한 키보드를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면 ㅋㅋㅋㅋㅋㅋ그들은 모두가...몇명만이 아니라 모두가 키보드 덕..아니 키보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가 어느정도 구체화된 이후, 서비스 구현을 위해 거의 날밤을 샌다 싶을 정도로 하루종일 붙어 있다보니 서로 어떤 키보드를 쓰는지, 한번 쳐보러 자리를 가도 되냐고 이야기하는 그들을 발견했다. 그냥 누르면 입력되는 키보드를 왜..> 굳이..? 쳐보러 간다는 걸까 의문의 들면서 대화를 지켜보는데, 외계어까지 사용을 하셨다.


적축/ 청축/ 무접점...?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발 용어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 투성이라 어려운데 가볍게 이야기할 줄알았던 키보드 이야기에 또 외계어가 잔뜩 담겨 나왔다. 우리팀이 또 재미진 사실은 이걸 궁금해 하는 사람도 여럿이었고, 이런 모습을 새롭고 재밌게 보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개발자분들도 많았다는 점이다. 맨 안쪽 자리부터 키보드를 하나씩 쳐보면서 이거는 뭐다, 저거는 뭐다 설명도 해주시고 유튜브에서 키보드 소리도 들려주셨다(신세계,,, 키보드 치는 소리를 올리다니 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이거는 아직도 너무 신비롭다 ASMR도 아니고 키보드를 구매하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소리를 녹음해 올리고 그걸 검색해서 보는 사람이 많다니..) / *참고로 유튜브에 타건 소리 비교를 보면 128만 뷰의 영상도 있다..


이와중에 키보드 수집가 개발자분이 계셔서, 귀엽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비개발자에게 기계식 키보드를 대여해주셨다는 점이다...!! 두둥 팜레스트는.. 선물로 하나씩 사주시기까지..◉ㅅ◉


<기계식 키보드를 영접하기 전에 쓰던 나의 로지텍 키보드>

숫자키판 있고 그냥 입력을 용도로 쓰던 친구 였지.. (지금은 가져다 쓰라해도 절대 못(안)쓰는 오타생성 키보드/ 마이 컸네 ? ㅋㅋㅋㅋ)


처음 영접했던 키보드는 무접점 키보드였다.. 50g 이었나../?

마케터 특성상 문서 작업이나, 숫자를 사용하는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여받은 키보드는 컴팩트한!! 숫자 판 없음! F키는 펑션키 누르고 숫자 눌러야 되는 머리를 많이 써야하는 키보드였다...!

오랜만에 보는 한성무접점키보드

솔직히 엑셀을 많이 사용하는 시기에 키보드를 대여받아 일하기는 힘들었지만,,

무접점... 이런맛이구나... 헤어나올수가 없다......... 묵직하게 눌리는 느낌과 다른 키보드처럼 짤깍거리지도 않고 보글보글 거리는 소리가 키보드를 자꾸 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1년을 대여 키보드를 사용하다가, 이럴거면 숫자 키판이 있는 무접점으로 나의 것을 사야지!라고 마음을 먹고 다른 개발자분과 함께 용산까지 갔다. 그것도 오전 반차까지 사용하고!!


아.. 이쁘다..

장난으로 저도 키보드 살래요! 라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용산에 키보드 타건하러 내가 가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ㅋㅋㅋㅋ 그래도 명확하게 무접점을 사겠다!라는 결심이 있어서 몇가지 추천을 받고, 대여 받은 키보드처럼 무거운 자판을 사려고 했지만, 늙어서 숟가락질도 못할거냐는 타건샵 주인장님의 말을 듣고, 많은 고민 끝에 조금 가벼운 넘으로다가 현.금.을 뙇! 꺼내서 구매를 했다.


그때는 묵직한 맛에 빠져있던 때라 너무 가벼운 것을 산건 아닐까 고민되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하루종일 대행사 메일링, 엑셀 작업 문서 작업을 하는데 너무 잘한 일 같다.. (진짜 숟가락 못들기 할뻔..)



아무튼간 개발자와 함께 일하며 기계식 키보드를 치는 멋진 마케터가 되었다(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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