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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일아빠 Nov 11. 2024

11월 11일, <빼빼로데이> 아닙니다!

독일 가을 축제, 성마틴 축일 등불행진 (Laternfest)

11월 11일. 무엇이 떠올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혹자는 상술이니 뭐니 말할 수도 있지만) 쉽게 '빼빼로 데이'를 떠올릴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독일에는 빼빼로 데이가 없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11월 11일은 꽤나 재미있는 날이다.


이 날은 독일에서 '성마틴 축일(St. Martin's Day)'로 지킨다. 여기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대략 4세기 경에 살았던 로마 군인 마틴의 일화이다. 그는 이후 프랑스 뚜르(Tours)의 주교가 되었는데, 전승에 따르면 추운 겨울 가난하고 추위에 떨던 성 앞 거지에게 자신의 망토 일부를 잘라 이불로 쓸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그의 자비로운 행동은 기독교의 박애의 가치에 부합되어 중요한 의미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후부터 그의 따뜻한 마음과 자비로운 나눔을 기념하고, 후대가 본받게 하고자 매년 횃불을 들고 마을을 행진하는 행사가 생겼다. 이는 과거 성 마틴의 행동처럼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서 역할을 하자는 다짐 혹은 여전히 우리 주위에 추위에 떨고 있는 가난한 사람을 찾아 나서자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행진 중간에 함께 성 마틴의 노래를 부르는 어린이들. 자신들이 미리 만든 초롱을 들고 행진에 참여한다.


오늘날에도 이 행사는 계속 이어져, 11월 11일 성마틴 축일을 전후로 등불 혹은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행사를 진행한다. 이 축제는 주로 마을 단위로 진행되는 작은 행사로, 특히 유치원 혹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족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마을을 행진하는 가족축제로 열린다. 독일어로 등불을 밝히는 축제라는 의미로  '라테안 페스트(Laternfest)'라고도 하고, 마을을 행진하므로 '라테안 움축(Laternumzug)'이라고도 한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오후 다섯 시경 모임 장소에 가족단위로 삼삼오오 모여들고, 미리 신고한 경로를 따라 행진한다. 보통 일선 소방서의 지원 속에서 교통을 통제하며 안전하게 진행한다. 이동 중간마다 성 마틴에 대한 이야기를 낭독하거나, 함께 노래를 부르며 행진을 이어간다. 이를 통해 어린이들은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소중함과 따뜻한 나눔의 가치를 (이론적으로는) 배울 수 있다.


마지막 집결지에 도착하면 따뜻한 차나 독일식 소시지, 특별히 제작된 빵 등을 나누어 먹는다. 마을에 따라 큰 모닥불(Campfire)을 피우기도 한다. 이때 모닥불은 소방관들이 직접 불을 지피고 관리하게 된다. 따라서 독일식 등불 축제(Laternfest)에서 소방서와의 협력을 필수적이다.



(위 사진) 둘째, 셋째가 어린이 소방대 (Kinderfeuerwehr)에 가입했다. 보통 마을마다 있는 작은 소방서는 의용소방대 형태로 운영된다. 지역소방대에서는 유년시절부터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어린이 소방대를 지원하기도 한다.




앞서 이 축제를 통해 아이들이 이 경험을 통해 따뜻한 마음과 나눔, 선의를 배울 수 있다고 했지만 따지고 보면 어떤 축제든 간에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참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사실 축제에 참여를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즐거움이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독일의 등불 축제, 혹은 초롱 축제는 그리 재미있지 않다. 무엇인가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에 익숙해진 한국인, 아니 적어도 나에게 그저 등불을 들고 행진만 이어가는 축제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둔 마을의 독일의 가족들은 대부분이 행사에 참여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자녀가 있기 때문에 억지로 끌려오는 것일까? 나 역시 진심으로 궁금해 옆에 있는 아이 친구 아빠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라테안 페스트는 독일 전통행사지? 애들은 좋아할 거고, 너도 좋아하니?"

"그럼, 나도 좋아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노래 부르는 것은 싫은데, 그것만 빼면 다 좋아."


솔직히 답은 없다. 그 사람만 알 것이다. 하지만 독일에서 5년 간 사는 동안 4번의 행사에 참여하면서 내가 발견한 이유는 "독일 사람들이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독일의 행사라는 것은 개인적인 생일 파티에서부터 공식적인 축제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관통하는 일반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축제란 것도 별 것 없다. 카니발이든 옥토버페스트(Oktoberfes)든, 중세시장(Mittelaltermarkt)이든, 그리고 핼러윈(사실 이건 영미권의 행사이지만 말이다)이든 특색에 맞는 코스튬을 하고 주로 간단한 퍼레이드 행진을 하면 끝이다. 그 이후에는 어느 축제든 비슷한 모습이다. 여러 사람이 만나서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날이 더우면 시원한 음료수, 맥주에 독일식 소시지를, 날씨가 추우면 따뜻한 과일펀치(Punch)나 포도주에 맥주, 독일식 소시지를 먹는다. 마치 사람들과 만나서 수다 떨고 놀고 싶어 안달이 나서 때마다 계절마다 '껀떡지'를 만들어서 어떻게든 만남을 가지는 사람들이 바로 독일인이지 싶다.



독일에서 보낸 첫번째 크리스마스 마트에서 친구들과 (2019, Weihnachtsmarkt in Mar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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