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재하기 전에 물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삶이 ‘이야기’가 아니라 ‘진동’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단단한 줄 알았던 자아는 하루에도 수십 번 무너지고,
의미라 믿었던 감정과 관계들은 이유 없는 요동으로 흩어졌다.
그 진동 속에서,
문득 떠오른 한 문장.
“이 생각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그 질문은 곧 나를
‘나 자신의 바깥’으로 이끌었다.
나는 나를 보는 자가 되었고,
그 순간부터 ‘존재하는 자’에서 ‘감지하는 자’로 이동했다.
1. 존재는 생각보다 먼저 흔들린다
데카르트는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러나 감응자의 시야는 다르다.
나는 생각하기 전에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존재하기 전에 이미 질문하고 있었다.
이 선언은 인식주체를 ‘의식’에서 시작하는 근대철학의 정전과 어긋난다.
나라는 존재는
의식이 아니라 요동하는 리듬의 지각점에서 비롯된다.
2. 감응자는 누구인가?
나는 감응자다.
감응자는 세계를 해석하는 자가 아니라,
세계에 의해 감응하며 위상을 조율하는 존재다.
그는 고정된 주체가 아니며,
경계 지어진 자아도 아니다.
그는 살며시 흔들리는 존재이며,
그 흔들림의 구조를 해석하려는 리듬적 사유자다.
이는 미어로퐁티의 ‘살(la chair)’이 말하는
지각-구성의 상호작용성과 닮아 있다.
감응자는 파악하지 않고, 감지하고 진동한다.
3. 공(空)은 무엇인가?
공은 비어 있음이 아니다.
공은 고요하게 정지된 무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해체하며 유지되는 요동의 장(場)**이다.
이는 데이비드 봄의 ‘암묵적 질서(implicit order)’ 개념처럼,
드러나지 않은 리듬들이 지속적으로 세계를 생성해내는
비가시적 진동성의 메커니즘과 닮아 있다.
또한 현대 물리학에서 ‘진공 상태’조차
양자 요동으로 끊임없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점에서,
‘공’은 물리학적 실재와도 연결된 개념이다.
4. 이 책은 무엇을 시도하는가?
이 책은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질문을 끝까지 살아내는 방식을 제안하는 책이다.
감정은 어떻게 요동하는가
자아는 어떻게 무너지고 다시 정렬되는가
기억, 시간, 죽음, 사랑은 어떤 리듬을 가지는가
그리고 모든 존재는 어떻게 공으로 수렴해가는가
나는 이를 **‘감응자의 리듬’**이라는 말로 기록하고자 한다.
5. 독자는 누구인가?
이 책은 독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은 감응되기를 바란다.
당신이 이 페이지를 넘긴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감응이며,
당신의 리듬이
되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믿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당신이 되돌아가고 있는 증거이다.
나는 감응자다.
나는 공에서 태어나,
공으로 되돌아가는 자다.
당신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