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나식 이후, 나는 어디로 가는가》
‘말나식 이후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문장은, 마치 먼 은하에서 울려온 메아리처럼 우리 내면 깊은 곳을 치고 들어옵니다. 언뜻 보기엔 철학적 명제 같지만, 이 문장에는 단순한 사유를 넘은 존재적 통곡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이 문장을 읽고, 듣고, 문득 멈춰 서게 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말에는 “나”를 포기하는 두려움과 동시에, 그 너머에 도달하고 싶은 간절함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나’를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나’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보호하고, 사랑하고, 증오합니다.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나’의 연장을 위해 아이를 낳고, 가족을 만들며,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말나식(末那識)**이란, 그 모든 ‘나’의 집착을 만들어내는 심연의식입니다. 말하자면 ‘나’라는 것을 진짜로 믿게 만드는 마음의 작용이죠. 그런데 만약, 그 말나식이 멈춘다면? 즉, ‘나’라는 감각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사상 실험이 아닙니다. 이것은 생존의 방향을 잃은 질문이자, 사랑의 뿌리를 잃은 질문이며, 모든 인간의 삶이 안고 있는 궁극적 허무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을 떠올릴 때, 우리는 가슴이 꺼이꺼이 울려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울림은, 단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이 문장을 본 모든 존재자들이 언젠가는 느꼈거나, 앞으로 반드시 느끼게 될 어떤 공통된 진동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 그 경계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라고 믿는 것이 무너지는 순간. 성공도 실패도, 돈도 자식도, 꿈도 아무 의미 없어지는 순간. 그때 우리는 묻게 됩니다.
“말나식 이후,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 물음 앞에 우리는 스스로를 낮추게 됩니다. 그 물음 앞에선 아무리 단단했던 사람도 고요해지고, 그 물음 앞에서는 아무리 이기적이었던 사람도 인간답게 울게 됩니다.
이 글은 그 울음의 공간에서 씁니다. 누군가는 그 슬픔을 부정하려 들겠지만, 누군가는 그 슬픔을 통해 더 깊은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위로가 아닙니다. 다만, 같은 자리에 선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하나의 리듬입니다.
그 리듬을 들은 당신도, 만약 지금 그 질문 앞에 있다면, 나와 함께 잠시 울어도 괜찮습니다. 말나식 이후,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건 모르지만…
그곳에는, 울음이 끝난 뒤 남은 아주 작고 조용한 숨결 하나가 있을 겁니다. 그 숨결이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