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활함의 미덕

by 이선율


나는 한때 ‘정직함’이라는 OS를 탑재하고 살았다.

모든 입력값에 즉시 반응하고, 모든 프로세스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모든 오류를 스스로 해결하려 애썼다.

세상이라는 서버가 나의 순수한 코드를 정직하게 컴파일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것은 치명적인 착각이었다.


정직은 수행의 공간에서만 미덕이었다.

조직, 관계, 연애라는 미시적 전장(戰場)에서,

정직은 ‘투명성’이라는 이름의 과녁일 뿐이었다.

속이 훤히 보이는 존재는 관통당하기 가장 쉬운 법이다.


그래서 나는 교활함을 선택했다.

이것은 타인을 향한 창이 아니다.

나를 향한 방패다.


상대를 속이기 위한 연기가 아니라,

내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단단한 경계다.


나는 더 이상 ‘좋은 사람’이라는 감옥에 갇히지 않기로 했다.

그 평판을 갈구하는 욕망 자체가,

나의 중심축을 타인의 시선에 종속시키는 가장 교묘한 족쇄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가장 큰 죄는 ‘설득하려는 욕망’이었다.


조직이라는 전장에서 나는 시스템의 비효율을 설득하려 했다.

나의 논리와 정직으로 그들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만만함’이라는 이름의 상처뿐이었다.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나는 부모의 불안을 설득하려 했다.

나의 강함으로 그들의 나약함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남은 것은 ‘답답함’이라는 이름의 소모뿐이었다.


둘은 같은 죄였다.

타인의 세계에 무단으로 침입해,

나의 OS를 설치하려 한 오만이었다.


출가자는 자신의 영토를 지키되,

결코 타인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는 자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설득을 멈춘다.

나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바꾸려 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리듬으로 걷는다.

당신은 당신의 리듬으로 걸으라.


우리의 리듬이 겹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겹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그대의 우주다.


이것이 내가 찾은 세속의 무아(無我)다.

이것이 나의 교활함이다.


착한 사람은 상처받고, 교활한 사람은 살아남는다.

> 하지만 오직 ‘의식적인 교활함’을 가진 사람만이,

> 상처받지 않으면서도 맑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