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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Jan 12. 2020

어른이 되는 것

 내 성격은 다른 사람에게 간섭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다. 학창시절에도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나에게 공부하라고 이야기하면 오히려 공부하기가 더 싫어 졌다. 나는 그냥 내버려 두면 내 할 일을 내가 알아서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20살이 되면서 이제 나도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데, 부모님은 여전히 나를 어른으로 보지 않았다. 군대를 다녀와도, 20대 후반이 되어도 나를 어른으로 보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는데, 나를 어른 대우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왜 어른대우를 못 받는지 알았다. 용돈 달라고 손 벌리고, 옷 산다고 손 벌리고, 데이트한다고 손 벌리고,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없이 나는 살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군대 제대하고 깨달았고, 하루 빨리 독립하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돈을 벌고 싶었지만, 내 인생을 길게 보았을 때는 그냥 참고 내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게 더 이득이어서 나이는 성인이지만 여전히 성인 대접을 못 받는 것을 받아들였다. 


 직장을 다니면서 나는 어른대접을 받았다. 뭘 하려고 해도 더 이상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여전히 부모님은 나를 절반의 어른으로만 대접했다. 생각해 보니, 난 부모님 집에 얹혀 살고 있었다. 직장과 집이 멀어서 따로 방을 얻고 독립했다. 그 때부터 내가 생각한 진정한 독립이고 어른이 되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2016년과 2017년은 내가 다시 어른아이가 된 시절이었다. 공부하느라 있는 돈을 다 써서, 처가살이를 하였다. 직장 잡기 전에는 내가 쓰는 돈에 대해서도 장인어른의 간섭을 받아야 해서 내 돈을 내가 써도 마음 편히 쓰지 못했다. 직장을 잡고, 얹혀사는 대가로 매달 일정금액을 장인어른에게 드려도, 나는 다시 어른이 되지 못했다. 장인께서 나에게 직접적으로 안 좋은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으나, Suna와 이야기하거나, 감정이 격해져서 싸울 때는 ‘내 집에서 나가’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걸 옆에서 듣고 있으면, 미국 유학간 것이 매우 후회스럽고, 속에서 울분이 나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루는 장인어른과 Suna가 격하게 싸웠고, 나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따로 나와 살자고 Suna와 상의하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2018년부터 나는 다시 예전의 어른이 된 나로 돌아갔다. 배부른 돼지가 좋은지 배고픈 사람이 좋은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난 배부른 돼지가 되기 보다는 배고픈 사람이 되는 것을 택할 것이다. 하루를 살더라도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살고 싶다. 


 재벌2세, 3세들도 자신의 아버지가 자기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전에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희망대로 살아야 한다. 조선시대의 왕들도 왕위를 계승 받기 전까지는 선대왕의 가르침대로, 조용히 납작하게 엎드려 살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목표와 즐거움이 기업의 총수가 되는 것이거나, 왕이 되는 것이라면 나 역시 충분히 그렇게 하겠지만, 그런 것과 내 인생의 목표가 다르다면, 난 과감하게 내 스스로 독립하여 내 인생을 사는 것을 택할 것이다. 지금은 회사를 생계를 위해서 다니지만, 앞으로 3년 후에는 더 이상 생계를 위해서 회사를 다니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상 혹은 바램을 회사가 실현 시켜주면 계속 다닐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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