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개 Jan 12. 2020

장례식

 어릴 적에 가장 두려운 것이 죽는 것이었다.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뉴스로만 접해 보았고, 직접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친척분들의 장례식이 있어도 나는 죽은 사람을 보거나, 가까이 한다는 생각에 두려워서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에 오니, 각종 경조사들이 많이 있었다. 결혼식, 돌잔치 같은 좋은 일에는 참석하지 않더라도 장례식같이 궂은 일에는 꼭 참석했다. 처음 장례식장에 가서는 그곳에서 나오는 음식은 물론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다양한 분들이 돌아 가셨고, 기분 때문인지, 마음도 산란하고, 정신도 없어서 무언가를 먹을 수가 없었다. 


 장례식장에 가면 늘 느끼는 기분이 인생무상이었다. 결국은 언젠가는 저렇게 관속에 들어 갈 텐데, 뭐 이리 열심히 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이제 장례식장에 가는 일도 많아졌고, 점점 그 분위기에도 익숙해졌다. 지금은 오히려 장례식장에 가면 그곳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느라고 집에서 밥도 안 먹고 간다. 매번 갈 때 마다 느끼는 인생무상도 이제 덜 하다. 


 오히려 장례식장에 가면, ‘그래, 더 잘 먹고, 더 잘 살아 야지. 어차피 한번 죽는 거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아야 겠다’라는 생각이 더 든다. 몇 년 전에 할머니 장례식이 있었고, 내가 장성해서 실질적인 상주역할을 했다. 3일 내내 장례식장에서 살고, 염하는 것도 보고, 입관식도 하고, 화장터에도 따라갔다. 화장터의 불 속으로 관이 들어갈 때는,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슬픈 것도 아니고, 안타까운 것도 아니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화장터에서 가슴 아픈 것은 젊은 사람이, 특히 아이들이 있는 젊은 남자나 여자의 장례식이다. 가족들이 오열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가끔 어린 자녀들도 동행하는데, 그 자녀들을 보면, 나의 일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더 가슴 아픈 것은 더 어린 아이들의 장례식이다. 부모의 마음에서는 정말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차마 그런 장례식은 눈뜨고 볼 수가 없다.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는지 장례식에 다녀오면 그냥 무덤덤하다. 죽음이라는 것이 늘 우리 곁에 있고, 내가 준비가 되었던, 준비가 되지 않았던 언제나 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다만 그 죽음의 앞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 스스로 결정하면 되고, 그 결정대로 살아가면 된다. 

작가의 이전글 뉴욕에서의 면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