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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Jan 12. 2020

뉴욕에서의 면접

 MBA 과정에 있으면 1학년이 끝나갈 때 즈음, 한국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학교에 방문하거나, 한인 학생회를 통해서 채용공고를 한다. 주로 MBA학생들을 채용하는 기업들은 삼성, LG, SK가 대부분이다. 특히 경기의 불황 호황과 관계없이 삼성은 매년 MBA졸업생을 채용한다. 삼성에서 채용공고가 떠서 지원을 했고, 인터뷰까지 보았다. 1차 인터뷰는 전화로 3명 정도의 실무진과 하는 인터뷰였다. 짧으면 30분에서 길면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물론 한국말로 인터뷰를 보았기 때문에 너무 잘 보았고, 당연히 2차 최종라운드까지 초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2차 인터뷰는 미국, 유럽에 재학중인 삼성 지원자들이 뉴욕에 모여서 인터뷰를 보는 것이다. 임원 면접이고 사전에 자신이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에 대한 프리젠테이션과 인성면접이 있다. 삼성은 뉴욕까지 오는 항공편과 현지 체류하는 호텔, 체류비까지 지원해줬다. 인터뷰 덕분에 친구들과 함께 뉴욕도 구경 오고 재미있었다. 뉴욕의 어느 유명한 호텔을 빌려서 그곳에서 인터뷰가 있었고, 내 인터뷰 시간은 오후라서, 오전에 호텔 근처의 카페에서 인터뷰 연습과 프리젠테이션 연습을 하였다. 점심 시간쯤 되면 호텔 옆의 공터에 정장차림의 한국 사람 10여명이 모여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나 역시 흡연자였기 때문에 식사후에 피우는 담배 맛이 일품 인건 알았지만, 그 광경을 제 3자가 되어서 보고 있으니, 한국 기업의 온갖 나쁜 것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군대식 문화, 회식자리에서 술 강요, 할 일이 없어도 팀장 혹은 본부장이 퇴근하지 않으면 대기하고, 점심식사도 상사와 같이 하기 위해서 대기하고, 업무에 있어서도 글자 하나까지 체크하는 과거의 기억들이 살아나니, 갑자기 한국기업에 가고 싶은 생각이 뚝 떨어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인터뷰를 잘 보고, 합격한 후에 갈지 말지를 결정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뷰 자리도 전형적인 한국식 인터뷰였다. 호텔 회의실을 여러 개 빌렸고, 면접위원 3명에 지원자 1명이 보는 인터뷰였다. 면접위원과 나와의 거리도 거의 3미터 이상이 되었다. 쉽게 말하면 압박 면접이었다. 프리젠테이션은 대충 듣고, 자신들이 궁금한 이야기를 질문했다. 우리나라 인터뷰는 대부분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 보다, 잘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을 뽑는 인터뷰이다. 면접관들은 나의 장점에 대해서 궁금하기 보다, 나의 단점을 찾는 데에 더 큰 주의를 기울인다. 이 부분은 미국 기업의 인터뷰와는 다른 관점이다. 미국 기업들은 나의 단점 보다는 내가 장점을 어떻게 극대화할지에 대해서 더 궁금하고, 지원한 포지션에 대해서 내가 얼만큼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더 궁금해한다. 


 인터뷰 보기전에 내 경력에서 논리적으로 설명이 깔끔하게 안되는 부분이 MBA를 하게 된 동기이다. 텍사스에서 3년간 유학하고, 다시 한국에 1년 정도 들어왔다가 다시 MBA를 간 것이 제 3자가 보면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분명히 물어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하는지 준비했는데, 어떤 답변이든 만족스럽지 못했다. 


 가장 솔직한 답변은 미국에 취직하기 위해서 MBA온 것인데,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면, 면접관들은 왜 한국회사에 지원했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때 내가 솔직하게 미국 취업이 어려울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면, 아직 졸업이 1년이나 남은 상태에서 너무 일찍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봤을 것이고, 그 대답에 대해서 마땅히 할 말이 없다. 그러면 면접은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글로벌 경영을 배우고, 외국 경험을 하고, 무슨 이유를 대도 이성적으로 이해되는 답변을 찾기 어려웠다. 결국 차선책인, 외국 회사의 경험, 글로벌 경험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말을 하면서도 딱히 와 닿았지 않았다. 결국 떨어졌다. 


 나는 이상하게 삼성하고 인연이 약한 것 같다. 대학원을 졸업할 때 삼성증권에서 인터뷰를 볼 기회가 있었다. 모든 것들을 잘 보았다. 시간이 좀 남아서, 면접위원 중에 한 명이 내 자기소개서를 읽었고, 마침 내가 아주 짧게 자기소개서를 썼다. 분위기 화기애애 했는데, 내 자기소개서에 오타를 발견하고, 분위기 급 반전했다. 결국 떨어졌다. 직장 다니는 와중에 또 삼성증권에서 면접을 볼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는 경력직 애널리스트였다. 다 잘 보았는데, 영어 면접에서 또 떨어졌다. 당시에 내 영어가 그리 유창하지 않았다. MBA졸업하고 한국에 바로 왔을 때 삼성전자와 면접을 또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뉴욕에서 본 면접관과 동일한 질문을 했고, 그 때와 상황이 바뀐게 없어서, 또 떨어졌다. 


 MBA졸업 후에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와중에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왔다. 삼성전자에서 글로벌 M&A담당할 경력자를 뽑는다고 했고, 내 이력이면 충분히 지원하고 합격할 거라고 했다. 새로 회사에 들어 온지 몇 년 안되서 이직하기가 꺼려졌다. 더구나 나는 서울로 이사 왔는데, 근무지가 수원이라고 했다. 우리집에서 수원까지 어떻게 출퇴근을 하나? 아이 교육 때문에 서울로 이사 왔는데, 내 직장 때문에 수원으로 가야하나? 고민이 들다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이직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만두었다. 


 이런 걸 보면, 인생 타이밍이라는 말이 실감이 간다. 뉴욕에서 삼성이 아니라 그 어떤 회사와 인터뷰를 보아도 내가 MBA를 한 이유에 대해서 납득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만약 한국회사의 인터뷰가 졸업이 가까워진 상태에서 했더라면 내가 왜 한국 회사에 지원했는지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정도의 설명이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정말로 좋은 기회를 내 스스로 박차고 나온 것도 있다. 2016년 말 귀국하고 모 증권사의 경영지원 팀장 자리를 인터뷰 보았고 합격하였다. 이직 조건도 매우 좋았다. 6개월 팀장으로 일하고 지원본부장으로 승진하는 조건이었다. 최종 결정을 하기 위해서 그 회사 재무제표를 보고, 최근 뉴스를 읽어보았다. 주주가 바뀐지 얼마 안되었고, 최근 3년동안 재무구조가 너무 안 좋아졌다. 최근에 새로운 주주가 회사를 인수해서 자본금을 충실하게 했지만, 증권업의 전망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의 재정상태는 거의 0과 마찬가지라서 내 수입에 있어서 작은 위험도 감수할 수 없었다. 내가 어느 정도 재정적으로 안정되었더라면 당연히 그 자리를 수락하고, 새로운 업종에서 새로운 일을 하며 모험을 즐겼을 것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이것도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인생 운칠기삼이라는데, 살아보니 타이밍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어느 타이밍에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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