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도 미니멀하게
블랙 스크린.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눌렀으나 화면은 계속 검은색이다. 사실 한 달 전부터 노트북이 정상이 아니었다. 정상적으로 부팅이 될 때도 있고 되지 않으면 부팅이 되지 않으면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포털 사이트의 지식인 말대로 따라 하면 부팅이 되었다. 노트북을 쓰면서도 정상이 아닌 것을 알았기에 불안했다. 하지만 서비스센터에 가는 것이 귀찮아서 모른척했다. 그런데 결국은 어떤 방법을 써도 부팅이 되지 않는 날이 온 것이다.
마침 남편이 낮에 차를 쓸 일이 있어 함께 서비스센터에 가기로 했다. 노트북을 살펴본 서비스센터 직원은 SSD카드가 고장 났다며 교체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카드를 교체하면 저장된 파일들이 지워지니 백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백업하셨나요?”
이런. 부팅이 안 되는데 당연히 백업은 하지 못했다. 백업을 대비해서 외장하드를 챙길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결국 수리를 맡기지 못하고 노트북을 다시 집으로 가져왔다. 집에서 부팅이 되지 않으면 외장하드를 챙겨 혼자 서비스센터에 가기로 했다.
집에 오자마자 켠 노트북은 신기하게 며칠 동안 안 되던 부팅이 되었다. 병원에 가기만 하면 안 아픈 내 몸이랑 어찌 그리 같은지.
다행히 남편에게 여분의 외장하드가 있었다. 내가 가진 파일은 대부분 문서와 사진, 노래 파일이다. 용량이 그릴 크지는 않았다. 외장하드에 먼저 중요한 자료부터 옮겼다. 필요 없는 파일은 지워버렸다. 저장해 놓고 다시 찾지 않은 파일들이 보였지만 일단 옮기고 노트북으로 옮길 때 다시 한번 정리하기로 했다.
폴더를 하나씩 옮기다 보니 마치 이사 전에 리모델링을 하려고 임시 창고에 짐을 옮기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을 쓴 글과 일상을 담은 사진이 있으니 내 집과 마찬가지겠지. 내가 드나들던 사이트들은 나의 사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노트북을 찾아왔다. 전원을 켜자 며칠 안 되어 다시 쌓이겠지만 아이콘이 몇 개 없는 바탕화면이 떴다. 새 집에 가구를 배치하듯이 초기화시킨 노트북에 업데이트를 하고 필요한 앱을 다시 깔고 백업한 자료를 복사했다. 즐겨 가는 사이트를 방문할 때마다 즐겨찾기 버튼을 눌렀다.
노트북이 고장 나서 며칠 동안 쓰지 못하고 서비스센터에 가느라, 또 앱을 까느라 시간을 썼지만 덕분에 노트북도 한결 미니멀해졌다. 발을 딛고 사는 집처럼 노트북도 때때로 정리가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