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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dcream Dec 22. 2020

때로는 건망증이 도움이 된다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면 사고 싶은 것이 생각난다. 티브이 장이 망가졌네. 새로 사고 싶다. 청소기 호스가 자꾸 꼬이네. 무선 청소기 사고 싶다. 물건 하나하나를 보면 사고 싶은 물건도 늘어난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 집 안의 모든 물건을 다시 살 수는 없으니 순서를 정해 보기로 했다. 당장 사야 할 물건과 몇 달 후에 사도 될 물건들을 정리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종이를 앞에 놓고 있으면 무엇을 사려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다가 다시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 생각이 난다. 아, 이거 새로 사고 싶은데. 이게 생각이 안 났구나. 몇 번을 반복하다가 결국 당장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순간에 사게 된다.

돈을 아끼게 되었으니 이럴 때는 건망증이 살림에 도움이 된다. 

물건을 사지 않을수록 집이 넓어진다. 지금도 집에 물건이 많다고 생각하니 물건을 안 사게 되는 건 잘된 일이다. 있던 물건을 버리더라도 쓰레기를 만들지 않게 된 셈이니 지구에게도 좋은 일이다. 건망증을 이렇게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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