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종종 앞자리에 앉은 사람을 관찰한다.
저 사람은 어디에 살며,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삶에 좋은 일이나 슬픈 일도 있겠지. 어떻게 그것들을 모두 소화하며 살아낼까.
이런저런 공상을 하지만 그는 내 삶의 엑스트라일 뿐이다. 우연히 한 번 스칠 뿐, 다시 만나는 일은 없다.
정세랑의 책 '피프티 피플'은 우리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얼굴에 이름과, 이야기를 주면서 무심코 흘려보냈을 사건들이 돌고 돌아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50명의 각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서술하는 듯 하지만 서로의 삶에 어떻게든 관련되어 있는 이들은 마지막 장, 심야의 영화관에 한 데 모여 재난 상황을 공유하게 된다.
Tragedy is a foreign country we don't know how to talk to the natives
각자의 비극이란, 언어를 알지 못하는 낯선 나라와 같아서 섣불리 '안타깝다'는 감정을 느낄지언정 완벽히 공감하고 연대하긴 어렵다. 우리는 사회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피상적으로 느끼고 분노하지만 거기까지 일뿐, 어느 하나도 내 상황이 되지 않으면 어차피 남의 일일뿐이다.
깊고, 얕게 내 삶을 스쳐 지나갔을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잘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지만 자주 스쳐서 얼굴만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 중에서는 배우자가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유족도 있을 것이며, 부모가 병에 걸려 죽거나, 너무 가난해 자식과 죽을 결심을 하고 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한들 우리는 알 수 없다. 알아도, 위로하거나 도와줄 수 없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살인이나 강도 사건보다 내가 겪은 작은 사고가 더 크게 다가오는 삶을 살고 있다. 정세랑의 책은 뉴스에도 나오지 못하는 작은 사건들로 삶이 무너지거나, 그럼에도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다. 결국엔 잊히기 마련인 사건 속에서 피해자나 유족 정도로만 언급되는 이들에게 고유한 장을 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하게 한다.
이야기의 형태를 가진 모든 플롯이 주인공에 집중할 때, 주인공이 없거나 모두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참 갸륵하게 다가왔다. '연대'라는 단어를 이토록 와닿게 그려낸 소설이 있었는지. 매일 스쳐 지나가면서도 대단치 않은 화재 현장에 함께 갇히고서야 동질감을 느끼게 된 소설 속 50명의 사람들처럼, 우린 그 상황에 있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함부로 공감하거나 동조할 수 없다. 기껏해야 이미 지난 일이니까 그만 잊어...라고 쉽게 말하는 게 최선일지 모른다.
꽤 많은 챕터에서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소현재'가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자기 이름과 장을 갖게 된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본다.
현재는 산업 현장에서 지속적인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산업의학과를 선택하지만, 이미 산업 재해의 위험이 만연한 시스템에서 개인이 바로잡을 수 있는 것들이 미미하다는 것에 좌절한다.
"그것보다는 늘 지고 있다는 느낌이 어렵습니다."
모든 곳이 어찌나 엉망인지, 엉망진창인지, 그 진창 속에서 변화를 만들려는 시도는 또 얼마나 잦게 좌절되는지, 노력은 닿지 않는지, 한계를 마주치는지, 실망하는지, 느리고 느리게 나아지다가 다시 퇴보하는 걸 참아내면서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을 수 있을지 현재는 토로하며 물었다.
- 피프티 피플, 379p
그때 돌아오는 이호 선생의 대답이 인상 깊다. 작가가 결국에는 이 책을 통해, 50명의 재난을 한 데 묶는 연대의 이야기를 통해 던지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그냥......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
"물론 자꾸 잊을 겁니다. 가끔 미친 자가 나타나 그 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기도 하겠죠. 그럼 화가 날 거야.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 가지고 볼 기회가 운 좋게 소 선생에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40년쯤 후에 내 나이가 되어 돌아본다면 돌은 멀리 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숲을 소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져 다시 던질 겁니다. 소 선생이 던질 수 없던 거리까지."
- 피프티 피플, 380p
현재의 이름이 '소현재'인 것이 묘하게 느껴졌다. 현재를 사는 소시민을 뜻하는 것 같아서... 어쨌든 우리는 변할 것 같지 않은 세상에서 매일매일의 재난을 안고 살아간다. 매일 응급실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이 죽고, 비가 오는 찻길에서도 죽고, 지구촌 어딘가 전쟁통에서도 죽고, 괴로움에 못 이겨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세상의 한복판에서 잊지 않고 들여다보며 꾸준히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작은 사건들로 우리의 일상은 무너지지만, 대단한 의미를 가져야 주인공이 되는 세상에서 내 이름을 지닌 챕터 따위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미색을 띠는 한 조각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퍼즐은 영영 완성되지 않으니까.
어느 날 내 곁을 스쳤던 어떤 이와 한곳에서 같은 재난을 공유하게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좀 더 멀리 돌을 던지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 본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가치를 몰라주는 재난과 재난 사이에 있습니다. 짧은 소강상태에 불안해하며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난을 만나기 전에 우리가 만난 건 얼마나 다행인지.
- 섬의 애슐리 / 정세랑
여기가 아니었나. 여기인 줄 알았는데.
어딘가 정확한 자리, 적합한 자리, 제자리를 찾고 싶었다. 공장에 있는 아주 효율적인 로봇 팔이 지금 거기 서 있는 채원을 들어 그곳으로 옮겨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계는 효율적이지 않지."
빵에는 땅콩 잼이 조금 들어 있었다. 너무 조금 들어 있어서 놀라울 정도였다.
- 65p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 26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