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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여진 Mar 21. 2020

침묵보다 못할 말을 하지 말라

때아닌 캐럴과 불편의 가치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 혹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이라면 이 노래를 알고 있을 것이다.


루돌프 사슴코는 (개코) 매우 반짝이는 코(딱지)

만일 네가 봤다면 (변태) 불붙는다 했겠지(렁이)   


‘루돌프 사슴코’라는 캐럴에 몇 글자씩을 붙어 가사를 바꾼 말장난 버전이다. 아이들은 이런 창의적인 말장난을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4 빼기 빼기 1은 똥이라던가, 1 + 1은 2도 귀요미도 아닌 창문이라던가. 지금 생각하면 그다지 웃기지도 않은데 배꼽 잡고 깔깔 웃던 시간이 스쳐 지나간다. 신기하다며 꺅꺅대던 그날이 지나간다.     

며칠 전 엄마와 외식을 하기 위해 나갔다 돌아올 때의 일이다. 차 안에서의 이동이 지루해진 나는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부른 노래는 때아닌 크리스마스 캐롤인 ‘루돌프 사슴 코’ 였다. 노래를 부르다 보니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가사를 잊은 것이다!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네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딱 이 부분까지만 기억이 났다. 아는 부분만 부르려고도 해 봤지만, 그러기에는 멋이 없었다.


예전에 친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하이라이트 부분만 기억나는 팝송을 부르고 있었는데, 제발 그렇게 아는 부분만 흥얼거리지 말라고 한 것이다. 쪽팔린다나.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었는데, 듣고 보니 맞는 거 같다. 그 날부터 아는 부분만 부르려고 하면 친구의 한 마디가 생각난다.


우리의 친구 네이버를 활용하기로 했다. 네이버에 ‘루돌프 사슴코 가사’를 검색했다. 이것이 네이버를 활용해 얻을 수 있던 검색결과다.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네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루돌프 외톨이가 되었네 


안개 낀 성탄절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주렴

그 후론 사슴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네

루돌프 사슴코는 길이길이 기억되리 

    

결과에 만족하고 다시 노래를 부르는데,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코가 반짝인다는 이유로 놀리고, 배척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일까? 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이것이다. 루돌프가 산타의 썰매를 끈 후에는 다른 사슴들이 루돌프를 매우 사랑했다는 가사다. 마치 놀리고 따돌리다가도 무언가 윗사람이 썰매를 끄는 직책을 내려 주고 나니 옆에 붙어서 친한 척 하며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고 하는 모습 같았다.     


어릴 때부터 ‘루돌프 사슴코’ 노래에 관해 이런 식으로 생각해 왔다. 가장 이상한 점은, 코가 다르다는 이유로 놀리던 루돌프가 산타의 썰매를 끌게 되자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야기를 ‘길이길이 기억되리’ 같은 한 마디 문장으로 마치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와 같은 톤으로 일축해버린다는 점이다. 코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는 어디에도 없이 마치 해피 엔딩인 것처럼 노래가 끝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자행되고 있는 ‘다름’을 ‘틀림’ 이라 말하는 모든 메시지에 대해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는 노래 한 곡으로도 그런 일들에 익숙해지게 하고, 당연히 문제 있는 행위를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변모시킨다. 어릴 때부터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즐거운 얼굴로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던 날들이 떠오른다. 약자를 배척하고 강자에게 복종하라는, 이른바 강약약강의 사고방식을 사회는 우리의 머릿속에 교묘하게 집어넣고 있다.     


비약이 심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혹시 피해망상이 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프로불편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 생각해보자는 거다. 우리가 쉽게 생각해 온 일들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지. 세상을 바꾸는 건, 사실 불편함이다. 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낀 사람은 그 불편함을 해결할 도구를 발명하고, 사회의 관념에서 불편함을 느낀 사람은 새로운 사상을 만들고 사회를 바꿔 나간다.     


물론 모든 불편함이 세상을 바꾸는 결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거다. 방 안에 앉아서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실천도 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을,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려는 사람을 물어뜯고 헐뜯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입만 나불대는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경계하고 더 나아가 내 안의 그런 모습을 경계하라.     


침묵보다 가치 없는 말을 할 거라면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좋다. 걔가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카카오톡 프로필을 이렇게 바꿨다더라, 상태 메시지를 이렇게 올렸다더라, 뭘 했다더라, 더라, 더라, 말, 말, 말... 더 이상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침묵보다 싼 말을 많이 했다. 그런 말을 함으로써 소중한 나의 가치를 많이 까먹었다.     


침묵이 나을 말에 일일이 대꾸하거나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제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비판 아닌 비난을 삼가고 해결책 없는 비판을 삼가라. 예의 없고 무례한 발언은 그 말이 향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이자 수준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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