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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여진 Aug 16. 2020

조언이라는 말의 무게와 그럼에도 글쓰기


조언. 조언이란 단어의 올바른 뜻을 우리는 알고 있을까? 국어사전에서는 조언을 이렇게 정의한다.


조언 1 助言 [조ː언]

명사: 말로 거들거나 깨우쳐 주어서 도움. 또는 그 말.     


말로 거들거나 깨우쳐 주어서 도움. 그렇다면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내가 조언을 듣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에 대해 생각해보자. 조언을 구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다. 누군가는 명쾌한 해결책을 얻고 싶어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스스로 답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기 싫어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답은 알아도 그 답에 대한 확신이 없어 상대의 입에서 나오는 조언이 자신이 확정지은 것과 같길 바라며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어떤 이유로 조언을 구하던,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 맞는 말을 할 것 같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한다. 믿을 수 없는 사람, 존경하지 않는 사람, 이상한 소리만 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언을 하는 사람은 어떨까?     


이런 말이 있다. 질문의 답을 함께 찾아가는 사람은 스승이고, 묻지 않은 이야기를 답이랍시고 조잘대는 사람은 꼰대다. 나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조언하는 사람 중에서는 물론 훌륭한 사람도 많지만, 묻지도 않았는데 제가 먼저 조잘거리는 이른바 ‘오지랖이 넓은’사람들도 많다.     


나는 이번 해인 2020년에 지금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왔다. 이사도 했다. 아직 친밀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친구를 못 사귀어서 걱정이 되던 차에, 방학을 맞아 원래 살던 동네에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그 중 한 친구를 K양이라 부르자. 그 날 만나는 친구가 K양과 나를 포함해 총 5명이었는데, K양의 집에서 모인 후 밥을 먹으러 출발할 예정이었다.     


초인종을 눌렀는데 반응이 없어서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기다렸는데, 몇 초 후 K양이 문을 열었다. 완전히 열지 않아서 K양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는데, 안에서 K양이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K양의 강아지가 현관문 밖으로 나가려 했던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일어서서 우왕좌왕했다. 그러다 문을 조금 열었는데, K양의 강아지가 문 바로 앞까지 온 것이 겁나서 문을 다시 닫아 버렸다. 문을 다시 열어 달라고 K양을 불렀고, K양은 문을 다시 열어주었다.     


겨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 바닥에는 물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양말이 젖어드는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혹시 강아지가 싼 오줌을 밟았나 싶었지만, 알고 보니 샤워 중이었던 K양이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 문을 열기 위해 물기를 닦지 않고 급히 나오면서 떨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조용히 집 입구 쪽 K양의 방에 들어가 기다렸다. 곧 K양이 샤워를 하고 나왔고, 친구들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그리하여 5명이 전부 모였다. K양의 방에 둘러앉아서 그간 못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의 근황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친구는 잘 사귀었냐고 묻자 아직이라고 대답했더니, 여중인지 남녀공학인지 물었다. 남녀공학인데 남자 반과 여자 반이 따로라 대답해 주니, K양이 지나가는 혼잣말인지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지 이렇게 말했다.     


“왕따당하기 딱 좋은 조건이네.”     


그녀 딴에는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이거나,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을 테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던진 말을 듣고 기분이 팍 나빠졌다. 친구 없이 혼자 다니면 다른 애들 눈에는 내가 왕따 내지는 별볼일 없는 애, 좀 무시해도 괜찮은 애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그렇게 보고자 하는 사람은 그렇게 볼 것이다.     


그렇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말을 해야 할까? 그것도 가장 걱정하고 있는 당사자 앞에서. K양이 생각하기엔 나를 위한 조언일 수도 있다. 혼자 다니면 왕따가 될 수도 있으니, 어서 누구든 친구를 사귀라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말하기 전에 그 말이 꼭 필요한 말인지, 듣는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정도의 노력도 들이고 싶지 않다면 그냥 조용히 입을 닫아야 한다.     


조언이란, 상대가 원할 때 하는 것이다.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자신만의 방식으로 던지는 조언은 조언보다는 막말에 더 가까울 것이다. 나는 정말로 K양에게 조언을 듣고 싶지 않다. 조언은 믿을 수 있는 사람,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에게 듣는 것이다. 나는 K양이 그간 내게 보인 언행들 때문에 별로 K양의 말들을 신뢰하고 싶지 않다. 상대가 듣고 싶어하지 않을 때 조언하는 사람은 꼰대이며, 상대가 듣고 싶어하지 않는 조언은 그저 무의미하게 허공을 떠도는 공허한 한 마디에 불과하다.     


K양과 조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나의 경우라고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생각 없는 말로 상처를 주었을 수 있다. 내가 K양의 한 마디에 크게 상처받는 것도 어쩌면 언젠가의 내가 K양처럼 행동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타인도 가지고 있을 때 더더욱 그 타인을 헐뜯고 욕하는 데 시간을 바친다.     


내가 그 말을 오래도록 마음속에 담아두고 때때로 꺼내 보며 K양에 대한 원망 아닌 원망을 쌓아 온 것은, 나도 가지고 있는 허점이기에 더욱더 상처받은 탓이리라. 나는 앞으로 타인의 단점이 보일 때, 무작정 헐뜯기보다 혹시 나도 그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지 않을까? 하고 나를 되돌아보는 거울로 삼아야겠다.     


글이란 참 많은 힘을 가지고 있나 보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K양이 잘못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야의 범위를 나로까지 넓혀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발판으로 만든 것이다. 걸림돌도 디딤돌로 만들어 밟고 도약할 수 있게 해 주는 힘, 이것이 글의 힘이 아닐까? 조언으로 시작해서 자기 성찰로 끝나는 시간이었다. 


* 첨언하자면, 이 글이 완성되기 전의 원래 제목은 '당신의 조언은 거절합니다' 였다. 원래 쓰고자 하는 글은, K양이 나에게 이런 행동을 했고 이래서 기분이 나빴으며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정도 요지의 글이었다. 그랬던 글이 나도 이런 적이 있지 않을까?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로 바뀐 것이다. 글쓰기의 힘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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