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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Nov 30. 2023

지능 [지능, tsinɯŋ]

도구가 인간만의 전유물로 인식됐던 과거에, 생물학자이자 환경 운동가 제인 구달 박사의 연구는 세상을 충격에 빠뜨렸다.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침팬지의 문화까지 연구되고 있다. 예컨대 서부 침팬지는 평평한 돌 위에 단단한 열매나 씨앗을 올려놓고, 다른 돌로 내리쳐 먹이를 까먹는다. 반면, 동부 침팬지는 기다란 나뭇가지를 흰개미굴에 집어넣어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는 먹이를 잡아먹는다. 나뭇가지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리저리 구부리기도 한다.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도 지역에 따라 다른 행동을 보이는 이 현상을 ‘문화’가 아니면 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제는 많은 동물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안다. 늪악어는 종종 나뭇가지들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물속에 몸을 반쯤 띄운 채 가만히 있는다. 이 행동은 낚시꾼과 같다. 습지에 둥지를 트는 조류들은 나뭇가지가 모자라 서로 싸울 정도로 경쟁이 심하다. 이를 잘 아는 늪악어가 새들이 둥지를 트는 시기에 탐스러운 나뭇가지로 먹잇감을 유혹하여 사냥하는 것이다. 미끼를 활용한 사냥 작전은 벌매에게서도 볼 수 있다. 벌매는 작은 동물의 사체를 자신의 둥지 근처에 던져 놓는다. 말벌이 고기를 물어뜯어 조금씩 나르기 시작하면, 벌매는 그 뒤를 밟아 말벌의 둥지를 알아낸다. 그 뒤로 벌집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해달은 자기 마음에 꼭 맞는 돌을 하나 챙겨 겨드랑이 주머니에 넣어 놓고 다닌다. 주식인 어패류의 단단한 껍데기를 깨 먹기 위한 용도다. 먹이를 먹을 때면 배영으로 누운 다음, 배 위에 돌을 올려놓고 먹이를 내리쳐 깨뜨려 먹는다. 배영 솜씨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수생 생활을 하는 해달은 잘 때에도 숨을 쉬기 위해서 배영을 한다. 그런데 새끼 해달의 털은 생후 3개월간 방수가 되지 않아 혼자 떠 있을 수가 없다. 방수모가 나기 전까지, 암컷 해달은 새끼를 배 위에 품고 배영으로 생활한다. 고슴도치뿐 아니라 해달도 제 새끼가 귀여운지 아나 보다. 


놀랍게도 육아가 포유류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늑대거미는 알주머니를 자신의 배에 짊어지고 다닌다. 알이 부화하고 나서도 수십 마리의 새끼 거미를 등에 업은 채 보호한다. 염낭거미는 갈대를 접어 거미줄로 고정하고 그 좁은 틈 안에 알주머니를 낳는다. 어미는 알주머니에 딱 붙어서 알이 부화할 때까지 지키고, 새끼가 태어나면 자기 몸을 먹이로 내어준다. 거미에게 감정이 있을까? 거미가 모성애를 느낄까? 거미는 어미가 새끼를 지키는 행동을 숭고하다고 여길까? 거미는 인간만큼의 인식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앞선 질문의 답은 모두 ‘아니오’일 것이다. 거미의 행동은 유전자 단위에서 설계된 본능이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는 거미의 행동은 그 어떤 지적 생명체 못지않다.  


문어는 인간을 제외하고 강하게 거론되고 있는 비인간 인격체다. 문어의 신경세포는 약 5억 개로 다른 척추동물과 비슷한 개수인데, 그 구조는 상당히 다르다. 대부분의 신경세포가 뇌에 위치한 포유동물과 달리, 문어의 신경세포는 3분의 2 이상이 다리에 위치한다. 뉴런의 구조가 다르다는 것은 사고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색깔과 질감까지 흉내 내 산호로 위장한다든가, 바다에 버려진 코코넛 껍데기나 어패류 껍데기를 몸에 둘러 숨는다든가,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는 며칠 만에 다시 만난 사람을 알아보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문어가 인간처럼 말하거나 수학적 계산을 할 수는 없지만,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식은 어떤 면에서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인간과 사고체계가 다른 동물 중 하나는 코끼리다. 코끼리의 신경세포는 인간보다 적지만, 뉴런 하나하나의 길이가 훨씬 길어서 인간과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감정적인 부분이 발달했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한 동물원에서 새끼 코끼리가 물웅덩이에 빠졌는데, 어미뿐 아니라 근처에서 지켜보던 다른 코끼리도 쏜살같이 달려와 도움을 주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아프리카코끼리가 감정을 못 이기고 다른 생물들을 공격하거나, 동료가 죽었을 때 시체 주변에 모여 추모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아시아코끼리와 인간이 마치 같은 종의 다른 부족을 대하는 것처럼 공생 관계로 지낸다. 서로의 존재와 영역을 존중한다. 같은 호모 사피엔스끼리의 대화도 어려운 인간에게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흰돌고래 무리가 집단에서 도태된 일각고래를 일원으로 받아준다든가, 뒤집어져서 버둥거리는 거북을 다른 거북들이 도와준다든가, 새끼 가면올빼미가 배고프다 소리치는 형제자매에게 먹이를 양보한다든가, 자연에서 배려와 이해의 사례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이 비록 ‘배려’, ‘이해’라는 개념을 알 수 없을지언정, 그들의 행동 중 일부는 유전자에서 비롯된 본능일지언정, 다른 존재와 상호작용하는 야생동물의 방식은 어쩐지 생각이 많아지게 만든다. 지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인격이란 것은 무엇일까? 반드시 지적이어야 인격적인 것일까? 


사실 나는 ‘지적 생명체’, ‘비인간 인격체’ 같은 용어에 관해서 회의적인 입장이다. 지능은 사전적으로 어떤 현상을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능력이다. 인간은 다른 생물보다 지능이 높아, 복잡한 말을 가지고 농업을 시작하고 문명을 이룩했다. 이는 명확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실은 몇 가지 오해를 낳는다. 대표적으로 ‘지능이 높으면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지능이 낮으면 미개하게 행동한다’는 지적 우월의식이 있다. 실제 사회에서의 사건사고는 학벌과 지능에 상관없이 누구나 일으키고, 누구에게나 일어나는데도 말이다.  


침팬지도, 늪악어도, 벌매도, 해달도, 늑대거미와 염낭거미도, 문어와 코끼리도, 흰돌고래와 거북과 가면올빼미도, 이 글에 담지 못한 대부분의 동물들도, 인간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지능 검사에서는 네다섯 살 수준을 넘지 못한다. 동물들의 ‘인격적’인 행동을 안다면, 지능과 선악이 딱히 관련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의학적인 지능 검사로 인간의 발달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에서 도움을 주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지능을 포함한 특정 기준이 누군가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지능이나 학벌을 비하하는 각종 신조어들이 그 예시다. 존재가 살아가는 방식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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