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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영 Feb 14. 2022

서른 살 생일선물

2014년 12월, 이름만큼이나 춥고 추웠던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에 다녀온 뒤, 나는 주변 사람에게 줄곧 “서른 살 생일에 남자친구랑 아이슬란드 다시 갈 거야!”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지 않아 이렇게 소원을 빈다면 미래에 없을지도 모르는 남자친구에게 운명을 거는 것 같아서 ‘그냥 아이슬란드 또 가기’로 소원을 슬쩍 바꿨다. 그렇게 오랜 꿈을 방해할 요소는 미리미리 없애두었다. 나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죽음 뿐이었다. 아니 죽음 뿐일 줄 알았다.     


2020년 9월, 10년 복수 여권이 만료된 날부터 아이슬란드는커녕 당분간 비행기를 다시 탈 수 없는 비통한 현실을 이제야 인정한 나는 망할 코비드 새끼가 다 말아먹은 덕분에 한국에서 서른을 맞이 했다. 6년간 바라 온 일이 산산조각나니 억울한 마음에 이 날을 아이슬란드 재방문보다 더 역사적인 날로 만들고자 다른 꿈을 억지로 키워 맞추기 시작했다.     



2021년 1월 13일, 그렇게 서른 살 생일선물로 출판사 ‘짇따’를 얻었다.   

  

‘짓다’라는 단어에 발음기호인 [짇:따]에서 따온 이름으로 20대 때는 집을 짓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30대는 글을 짓는 삶을 지향한다는 그럴싸한 의미를 가득 담아 조혜영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스스로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출판사 대표가 되었다.     


1년이 지난 이 시점, 내가 그날 무슨 일을 한 건가 아차 싶은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책 없이 비행기표 끊던 습관이 대책 없이 사업자 등록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MBTI 끝이 P인 나는 계획이라는 삶과 담을 짓고 살아왔다. ‘무계획도 계획이다’는 철학으로 살아온 나인데, ‘대표’가 되는 순간 이 철학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발목을 잡은 것은 ‘사업자 등록’을 했다는 것, 그 자체였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사업자 등록하는 건 어렵지 않다. 초록창에 검색 한 번만 해도 친절하게 신청하는 단계의 모든 화면을 캡쳐한 장면이 쏟아진다. 그러나 사‘업’을 해결해주는 방법은 나오지 않는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는 뜻을 가진 업(業)을 해결할 능력은 내게 없었다. 그래서 사업자 등록을 했지만 나는 다른 고용주 밑에서 월급을 받는 삶을 쉽게 저버리지 못 했다. (출판사로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도 아니었고, 다음 해가 돌아오기 전에 그만둘 생각이었기에 회사에는 당연히 비밀로 했다.)    

      

그래도 나는 ‘조 대리’가 아닌 ‘조 대표’가 되고 싶은 마음 한켠에 남겨 두었다. 이번 퇴사가 내 인생 마지막 퇴사가 되길 바라며 결국 또 퇴사를 했다. 어렸을 적부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라’고 말하던 엄마는 내가 20대 후반이 되어서도 돈이 모이는 족족 여행을 떠나는 딸을 보며 이제는 그 소리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 그런 엄마에게 “또 퇴사했어.”라는 말을 할 수 없었기에 퇴사한 사실을 걸리지 않기 위해 출근한 척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사업자 등록을 낸 지 6개월이 지나서야 그 공간을 얻기 위해 ‘사업계획서’라는 걸 써봤다. 사업계획서 쓰는 법을 몰라 지역 내 창업지원센터 같은 곳에서 멘토링을 신청해 전문가님과 일대일로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혼났다. 언성이 높아지거나 격한 말투로 대화한 것은 아니다. 말투와 표정은 상냥하셨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나는 분명 혼나고 있었다. 혼나는 이유는 단 하나. 앞서 말했듯이 수익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사업자를 낸 것, 그 자체가 문제였다.

“대표님, 예비 창업자로서 받을 지원 혜택을 다 못 받게 되셨잖아요.”

“수익구조가 형성이 되고 사업자를 내셨어야 하는데...”

“사업계획서도 한 번도 안 써보셨다니...지금부터 할 게 많으시겠네요. 대표님.”    

 

사무실 모습

지금부터 할 게 많은,

이제부터 계획적이어야만 하는,

나는

이렇게 대표가 되어가고 있다.        




                 



제목 : 미정

작가 : 해영


목차

1. 신고합니다

2. 서른 살 생일 선물

3. 모든 게 처음이라

4. 안녕하세요. 작가님!

5. 모르는 게 넘친다

6. 벌써 1년

7. 숭문당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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