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서평
유아동을 대할 일이 많은 곳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그때 의식한 점이 한 가지 있는데요. '성인을 대할 때와 같이 정중하게 대하기'입니다. 물론 성인과 어린이를 똑같이 대하는 일에는 무리가 있지요. 어린이는 신체적 조건이나 익숙하지 않은 사회적 관습과 같이 배려를 받아야 할 부분이 있고, 어린이가 보는 세계는 분명 어른의 것과 다를 테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어른과 어린이는 같은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이야말로 이 세계 모든 어른이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어린이는 어른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아요. 당장 어른이 돌아보아도 어린시절 보호자와 선생님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지요. 그때는 어른이 뭐든 다 잘 하고 잘 알고 공부도 끝나는 줄 알았어요. 어른의 칭찬은 달콤하고 중독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어른의 실체를 압니다. 치사하고 무지하고 바보 같아요. 그래서 소영 님은 어린이에게 '어른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공부하고, 계속해서 책을 읽는다'고 알려준대요. 그리고 '착하다'는 칭찬이 어떻게 폭력이나 억압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도 짚어주셨어요.
책 후반부에 <어린이가 '있다'>라는 글을 읽으며 많은 반성을 했어요. 20~30대를 중심으로 자포자기와 자학, 해학의 문화가 만연한데요. 당사자로서 진심으로 화내는 것보다 '쿨'하고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아주 단적인 예를 들자면, 인구절벽-저출생 이슈가 거론될 때, 또 인류애가 소진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인간 다 죽어라', '지구 멸망해라', '헬반도 망해라' 같은 표현을 별 생각 없이(이 부분이 중요) 쓰는 것이에요. 주로 SNS에서 그런 경향이 있지요.
안타깝게도(?) 인류는 극적으로 멸망하지 않지요. 모든 인간이 한날 한시에 죽는 건 SF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에요. 하늘에서 운석이 마구 떨어지는 대재앙이 발생한다고 가정한다 해도요! 언제나 약자부터 희생됩니다. 거동이 어려워 대피가 어렵고, 안전한 피난처로부터 멀고, 재앙이 지나간 후 식량과 거주지를 확보할 가능성이 낮은. 기후 위기는 그런 경향이 더 크고, 더 현실과 가깝습니다. "아이를 낳지 말자"는 말도 당사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폭력입니다. 어른의 역할은 놀이터의 모래처럼, 떨어져도 안전한 그물망을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주장 끝이 향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개인이 아니라 사회니까요.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희망은)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독자가 누구든 일생에 한번쯤 어린이였던 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없는 사람?) 그래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볼 수 있지요.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들을 제법 많이 의식해요. 생판 모르는 어른이라도 그 어른이 자신을 칭찬하거나 꾸중했을 때 느끼는 감정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고요. 어른 눈치를 많이 보는 어린이·청소년이었던 사람으로서 작가님의 학창시절 경험에 공감이 많이 됐고, 동시에 위로도 받았어요. 단순히 친절하게 대하자는 말이 아니에요(물론 그것도 포함됨!). 노키즈존 같은 혐오의 간판을 내걸지 않는 것, 어린이를 '한 명'으로 존중하는 것, 주이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성이 건넨 말들 같은 것들... 이런 친절이 모이고 모여서 어린이의 환경을, 어린이에게 상냥한 세계를 형성합니다.
그럴 때 조심해야 한다. 절대로 귀여워하는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다. 매번 대단한 자제력을 요구하는 일이지만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른이니까.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꼭 어린이를 존중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응? 무슨 말이야? 싶은 분들. 혼자만 의아했던 것이 아니니 안심하시고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어 보세요.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한때 SNS에서 '노노카쨩'이 유명세를 탔지요. 일본 동요대회 영상이 화제가 되어, 무라카타 노노카의 보호자가 올린 여러 영상도 SNS에 확산되었고요. 그 영상을 처음 보는 순간 귀엽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 어린이에 대한 화제가 몰고 올 일련의 사태에 대한 걱정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 올라오는 영상을 시청도 확산도 하지 않아서 어떤 사태가 되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저와 같은 우려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러한 논의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어린이의 지나친 매체 노출에 대한 경각심이 그만큼 생겼다는 뜻이니까요.
그럼 저는 어린이는 매체에 출연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걸까요? 그럴리가요. 어린이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단, 어린이가 대상화되지 않을 때!
- 귀엽다고 생각하는 게 왜 문제가 되지?
- 어린이가 귀여워서 귀엽다고 하는데, 어린이도 그게 좋다는데 왜 '감상'이라고 매도하지?
이런 의문이 드신다면 꼭 이 책을 읽어봐 주세요. '슈돌' 같은 프로그램에 왜 비판적인 견해를 취하게 되는지 이해하실 거예요. 어린이는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존재가 아닙니다. 어린이는 어른과 뚝 떨어진 어떤 존재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이니까요. 주변에(그리고 저도) 귀여운 어린이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이나 영상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당신은 어린이를 대상화하고 있어!"라고 공격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그러나 불편해도 꼭 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담론은 많은 '귀엽고 작고 사랑스럽고 무해한 생물'을 감상하고 그것들에 '힐링' 받는 문화와 직결되어 있어요. 동물과 아이돌에 대한 덕질 문화와도 직결되는 논의인데요. 여기서는 어린이에 대해서만 쓰기로 할게요.)
여기까지는 저도 은연 중에 생각해 본 지점이에요. 그러나 '슈돌'에서 논의해볼 지점은 몇가지 더 있는데요. 현실에서 육아는 대체로 어머니가 전담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버지가 아이를 양육한다는 사실에 대중은 더욱 열광했어요. 게다가 유명인인 그분들의 집은 너무나도 넓고 멋집니다. 자신과 같은 연령대의 어린이들이 속한 '부'를 미디어에서 적극적으로 전시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아요.
어떤 어린이는 여전히 TV로 세상을 배운다. 주로 외로운 어린이들이 그럴 것이다.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열을 내고 말았는데 비장하게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닙니다. 주변에 참 많이 선물한 책이에요. 가볍게 손에 들어주시면 기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