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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공공 May 30. 2020

네가 크면, 네가 커도

나는 늙겠지만 시들지는 않을게


둘째가 잠들어준 고마운 어느 저녁식사시간,

이 시간을 기념하며 반주로 남편과 맥주를 한잔씩 나눠 마시는데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첫째.
“내가 나중에 어어엄청 크먼, 엄마보다 더 크먼 저거 엄마아빠 먹는거 어어엄청 큰거 먹으꺼야. 엄청 큰거  내가 혼자 다아아 먹으꺼야.”
“그래 그때 되면 엄마아빠랑 같이 맥주 마시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아이가 크는 생각만 하면 벌써부터 너무 그립고 항상 아쉽다.

생각해보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마주 앉아 맥주 한잔 마실 날이 오겠구나.

맥주 한두 모금에도 살짝 취기가 돌아서인지 몽글몽글한 마음이 올라온다.
아련한 눈빛으로, “소이야, 소이가 엄마보다 더 커도 엄마 좋아해 줘. 그리고 같이 놀아줘~ 알았지?” 하니, 망설이지도 않고 “응! 그럴게” 한다.
괜스레 뭉클해서 속으로 울컥하고 있는데, “내가 엄청 더 크먼~“ 이라며 운을 띄우는 아이.
‘엄마한테 맛있는 요리 해줄게’ 라던지 ‘엄마 업어줄 수 있겠다’ 같은 다정한 멘트를 종종 해주던 아이라서 살짝 기대하며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어~내가 엄청 크먼 엄마한테에  똥보라고 부를꺼야  똥보! 으헤헤헤헤헤”
그, 그래.....맞다, 너 36개월이지.
똥보가 뭔지는 모르지만 마음껏 그리 불러도 좋으니 엄청 큰 어른이 되어도 나와 시시덕거리며 놀아주면 좋겠다.


그러는 나는 나의 엄마에게 그런 딸이었을까. 나름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나의 엄마는 그런 딸이기를 원했을까. 그냥 내가 부족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뒤엉켜서 스친다.
생각이 형태를 잡기도 전에, 짧고 달콤한 식사시간이 다 끝나기도 전에, 둘째가 “흐엉~”하며 운다.
술기운이고 뭉클이고 전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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