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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공공 Feb 15. 2020

내 아기의 첫 생일

따뜻하고 작은 로컬 파티

우리 가족에게 5월의 첫 주는 가족 주간.

남편 생일, 시부모님 결혼기념일, 어린이날, 어버이날, 시어머니 음력생신까지 아주 다양한 날의 연속인 이 주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첫돌 파티 :)

5월 5일 어린이날에 태어나길 바랐지만, 5월 8일에 태어난 아기 덕분에 어버이날의 주인공인 어버이들은 주인공 자리를 내줄 수 밖에 없어진 우리 가족.

아기가 커가면 좀 달라지려나!



아기의 100일 때는 아기가 태어난지 한달도 안되었을 무렵부터 준비를 했었다.

사실 그 때는 그런 준비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기에 일부러라도 더 가열차게 집중했다.

그래서 100일 파티의 컨셉은 (어쩔수없이?) 깨알깨알.

100일 홈파티 상차림


반면 더 크게 축하해야 할 날인 첫 생일 파티는 이런저런 다른 이슈들이 많아서 미처 충분히 신경쓰지 못했다.

겸사겸사 동네 소상공인과 함께 만드는 파티로 컨셉을 잡았고, 최대한 내가 직접 하는 부분이 적게 하려고 기획했다.

그렇게 슬렁슬렁 되는대로 준비를 했는데, 혼자서 긴 시간을 들여 준비했던 100일 파티보다도 더 만족스럽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파티가 되었다.




공간

파티 준비의 시작이자 반 이상을 차지한 장소 선정.

평소 눈여겨보던 연남동의 작은 식당 '아까H'가 떠올랐고, 답사 겸 문의차 어느 주말 식사를 하러 가서 사장님과 이야기를 좀 나누었다.

딱 적당하다는 생각에 별 고민 없이 마음을 정했고, 파티 한달 전 쯤 예약 완료.

사장님 혼자 꾸리시는 작은 식당이기에 미리미리 예약은 필수였고, 식당 특성상 식사 예약을 하면 그 전후 시간을 어느 정도는 우리끼리 활용할 수 있다는 크나큰 장점이 있었다.

식당 전경과 내부, 그리고 파티날 식사 중 생일자님 한마디 시간 :)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장점은, 필로티 안으로 살짝 들어가있는 식당이라서 가게 앞 쪽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당일에 가보니 그 공간은 같은 건물 윗층의 쉐어하우스 분들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이라 너무 마구 사용하기는 좀 민폐인 상황이긴 했지만, 테이블의 위치 등을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포토테이블을 꾸며서 활용했다.

친언니와 함께 포토테이블 꾸미는 중




채우기 Part.1 :: 어쩌다 엄마손맛

공간과 시간이 정해졌으니, 이제 도화지는 마련된 셈.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지 상상하며 이미지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치만 곧 돌파티보다 더 무게감있는 미션이 주어졌으니, 그것은 집 인테리어 공사! 당장 공사에 들어갈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전혀 접해보지 않은 분야라서 준비해야할 것이 많아 돌파티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돌파티의 자료조사는 초반 며칠로 그쳤고, 그때 직구로 주문해놨던 마크라메 가렌드를 기준으로 구상하게 되었다. 머릿속으로 틈틈히 생각은 했어도 구체적인 구상은 끝끝내 그려놓지 못한 채로 디데이를 맞이했으나, 그래도 '첫돌'이라는 글자의 작업은 미리 준비했다.

나무판에 레이저로 글씨를 딸까,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릴까 등등. 여러 생각 끝에 마크라메 가렌드와 쉽게 어울리는 마크라메 월행잉 형태로 결정. 그것의 구체적인 형태도 가지고있던 재료들의 조합으로 얼결에 만들게 되었다. 십수년전 동남아 어딘가에서 사온 독특한 나무액자, 주워온 나뭇가지, 언제 사놓았는지 모를 면끈으로 '첫돌' 마크라메 월행잉을 완성시켰다. 마크라메는 해본 적이 없어, 며칠동안 밤마다 유투브를 보며 한땀한땀 땋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ㅋ)해본 마크라메 작업이라 자세히 보면 양쪽이 좀 다르고 어설프긴 하지만 다시 풀러서 할만큼의 여유와 열정은 없기에 그냥 고고!

어떤 친구는 '첫돌'에 내 글씨체가 보인다고 한다. 신기방기!

그리고 계획도 없이 토핑 없는 흰 케익으로 주문해놓아서 케익 토퍼도 생각해야했다. 숫자초를 꽂을까 했으나 마음에 드는 초 찾기도 어렵고 귀찮기도해서, 주워온 나뭇가지 남은걸로 또 얼결에 만들어보게 되었다. 스케치도 없이 그냥 식탁에 앉아서 일단 숫자 1을 만들었고, 다음날 아침에 단단하게 풀이 잘 굳은 1을 바라보며 ‘이제 어쩔까...’ 이리저리 시도해보다가, 혹시나 해서 사놓은 작은 꽃 와이어로 마무리! 진짜 얻어걸린건데 너무 마음에 드는 토퍼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어쩌다보니 추가된 엄마의 손맛 :)

얻어걸린 녀석인데 이렇게 이쁘고!




채우기 Part.2 :: 소상공인 섭외(!)

소상공인과 함께 만드는 파티의 기획 의도상,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해결하려 했다. 다행히도 연남동, 서교동과 가까운 곳에 살아서 비교적 쉽게 마음에 드는 소상공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선 케익! 우유,계란,버터를 사용하지 않아 알러지 있는 아가들도 먹을 수 있는 '비건베이커리 해밀'에서 토핑 없는 생크림케익을 주문했다. 평소에도 해밀의 식빵을 아주 좋아하는 생일자님의 취향을 받들어 선택한 케익이랄까ㅋ 첫 생일인데 생일자님도 함께 마음 편하게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해밀에서 주문했다. 입이 짧은 우리 아가는 많이 먹진 않았지만 그래도 맛나게 함께 케익을 즐겨주었고, 어른들 입맛에도 많이 달지 않고 쫀득한 식감이 있어 부담없이 맛있었다.

그리고 아기 생일이 어버이날인지라 카네이션을 살짝 섞은 꽃바구니로 주문한 데코 겸 선물용 꽃. 들꽃을 꺾어 바구니에 꽂아놓은 느낌을 원했는데, 급하게 인터넷으로 주문한 바구니가 생각보다 꽤 커서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다행히 '보니에플라워랩' 사장님의 센스로 풍성하고 아름답게 완성되었다. 파티 후 양가에 선물로 드리니 예쁘고 알뜰하다며(?) 좋아하셨다(ㅋㅋ). 친정엄마는 유칼립투스와 꽃 몇가지를 잘 모아 예쁘게 말리고 계신다는 후기 :)

돌잡이에 대한 이야기는 살짝 자세히 해야하겠지만, 어쨌든 돌잡이와 선물용 떡은 연남동 골목에서 떡매치며 신메뉴 개발중인 퓨전떡집 '조복남'에서 주문했다.

꽃과 케이크, 돌잡이용 찰떡브라우니




돌잡이

보통의 돌잡이는 나에게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재미로 하기에는 무리가 없겠지만, 이왕이면 좀더 의미있게 해보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돌상 대여를 안하는 입장에서 돌잡이 용품을 준비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나보다.

보통의 돌잡이에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그 물건의 의미가 특정한 ‘직업’이라는 거였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될 즈음에는 어떤 세상일지, 어떤 직업들이 생기고 사라질지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그래서 어떤 세상 어느 곳에 있더라도 마음에 간직했으면 하는 아홉가지를 작은 깃발에 적어, 찰떡브라우니에 꽂아 돌잡이를 했다.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중요해지고,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니까.

깃발이다보니 아기가 잡기 쉽지는 않았지만, 야무지게 두가지를 잡았다(잡아서 던졌지만;;).
첫번째는 사랑, 두번째는 지혜.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모든 관계와 상황에서 지혜롭길!
그리고 나머지 일곱가지도 아이에게 주고 싶은 엄마빠의 마음 :)
나머지 일곱은 행복 / 공감 / 감사 / 건강 / 믿음 / 기쁨 / 행운

고심 끝에 첫번째 픽, 사랑 :)





이렇게 내 아기의 첫번째 생일파티를 무사히 마쳤고, 시댁인 울산에 가서 친지들과의 식사까지 하고서야 첫돌주간이 끝났다.

그랬던 아기가 어느덧 동생도 생기고 세돌을 앞두었네 :)



**글에 나와있는 몇몇 가게들은 영업을 종료했습니다. 이제 동네에서 만날 수는 없지만 늘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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