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삶에 임시라는 딱지를 붙일 수 없는데도
서울표류기 2탄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그리고 맞이하게 되는 자취의 시대.
대학교 4학년, 본격적인 취준 학년을 맞아 시작된 첫 서울 자취생활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가장 문제는 돈이었지만 일단 나의 집 보는 눈이 변변찮았던 게 핵심적인 문제였지 싶다.
(내 머릿속엔 그저 쉐어하우스만 아니면 돼 라는 생각이었다.)
4평이 될까 싶은 작은 자취방은 뒤돌아보니 정말 아쉬운 게 많은 집이었다.
신축이라 깨끗하긴 했지만 신발장에는 신발 3켤레 놓기도 벅찼고,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부엌은 좁디좁아서 밥을 해 먹을 기분도 내기 힘들었다.(부엌이라기에는.. 그저 싱크대가 있었을 뿐이다)
거기다 손바닥 세 개 폭 정도 될까 싶은 작은 옷장에 4계절 옷을 구겨 넣기가 너무 버거웠다. 결국 부직포와 철제로 만든 허술한 정리함을 하나 샀는데, 그 부직포 서랍은 밀고 넣을 때마다 옷 무게에 서랍이 툭툭 빠졌고, 나는 그때마다 계속 맥이 풀려버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화장실은 너무 작아서… 문을 열면 변기에 부딪히는 바람에 문을 활짝 열을 수가 없는 구조였다.(졸업식 날 졸업식을 참석하려고 온 부모님에게 이 사실이 최대의 충격을 선사했다.)
나에게는 이 집 이후로 지금까지도 집을 보다가 깔끔하게 그 집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세면대에 붙어있는 샤워기이다. 밸브를 돌려 세면대 물이 나오게 했다가 샤워기로 물을 가게도 만드는 그 구조의 세면대. 한 번이라도 세면대 밸브로 돌려놓지 않았다는 걸 까먹는 순간에는 외출 준비 후 손 잠깐 닦으려다 물을 와르르 맞고 허탈한 기분으로 머리를 다시 말리고 옷을 다시 입거나 별 수 없이 젖은 채로 나 몰라라 기분 나쁜 외출을 하게 되는, 정말이지 나비효과가 큰 구조다. 나는 다시는, 다시는 그런 세면대를 만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뒤돌아보면 여러모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사실상 환경보다도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내가 이 집에 붙인 ‘잠깐 살’ 집이라는 수식어 그 자체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지켜주는 이 집을 스스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소심하고 불쌍한 말.
졸업에서 취직까지, 일 년 겨우 살 집이라고 생각하니 나중에 옮기는 비용이 더 들겠다 싶어 침대도 사지 않았고, 4만 원이 겨우 넘는 매트리스만 두고 살았다.
아무리 소득이 없는 대학생이라지만 부직포 정리함 대신 싸구려 합판 서랍이라도 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이 집을 위해 산 ‘가구’라는 칭호를 주기 싫었던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앉아서 자기소개서도 쓰고 과제도 해야 할 의자마저 인터넷을 뒤져 흠이 있어서 싸게 파는 의자를 샀다. 마땅히 가구라고 부를 게 없었던 이 방을 빨리 탈출하고 싶었던 바람 때문이었는지 뭔지 몰라도, 나는 1년 후 무사히 취업을 해 그 방을 나왔다.
두 번째 자취방은 조금 웃기고 슬픈 계기로 결정을 하게 됐다.
2월 대학교 졸업식 날, 부모님이 서울에 왔다. 참고로 우리 부모님은 절대 나를 보러 서울에 온 적이 없다. 만 4년 동안. 기숙사에 나와 짐을 내려주고 간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절대!
어련히 잘 살고 있으려니 믿고 있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전반적으로 별 일 없이 잘 살고 있었기에 부모님의 이런 대책 없는 믿음은 괜한 부담을 덜어주는 고마운 일이다.)
부모님에게는 그 날 아침 마주한 나의 방이 꽤나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졸업식을 대충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5년 만에 왔으면서 학교의 촬영스팟에서 사진도 안 찍고) 이사 갈 집을 찾아보겠다며 휙 학교를 떠나버렸다. 친구들이랑 사진을 좀 찍고 나서 저녁 즈음 부모님을 찾았더니, 부모님은 벌써 집을 3개나 보고 후보군의 집을 정해둔 것이었다. 나도 그 시기 동안 이사 갈 방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하던 버짓으로는 본인들도 터무니없겠다 싶었는지 대출을 받아도 그냥 이 정도의 집에서는 시작해야겠다며 훌쩍 버짓을 올려 찾아보기까지 했다. 뭐, 고민도 되고 찾아보던 집들이 마음에 들지도 않던 차에 부모님의 맹렬한 지지로 집을 결정하게 됐다. 물론 이 집도 아쉬운 점도 있지만 여러모로 감사한 집이다.
두 번째 자취방에 대한 이야기는 4탄에서 이어가야겠다. 글이 꽤나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