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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 Apr 12. 2021

서울 표류기 - 2

서울에 대한 권태가 짙어지던 시기

서울표류기 1탄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잘 살던 기숙사를 나오게 된 계기는 별 거 없다. 이 넓은 세상, 좀 멀리 가 보고 싶어서 교환학생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화란국(튤립국, 네덜란드를 뜻하는 명칭인데 장난처럼 자주 썼다)으로 떠나게 된 나는 서울을 잠깐 벗어나 한 달에 690유로를 생으로 내다바쳐야 하는(그래도 제일 싼 기숙사 옵션이었으니 할 말이 없다.) 1인 기숙사로 입주했다. (정리가 되면 이 세상 가장 불쌍하고 가장 걱정없이 행복했던 진한 명암이 대비되는 교환 시절의 이야기를 쓸 예정이지만, 이번 글은 서울 표류기니까 얼른 서울로 돌아온 시절로 훌쩍 뛰어넘어 보겠다.)


때는 본격적인 졸업 학년을 시작하기 전에, 휴학을 하고 인턴을 하겠다며 인턴 자리를 구해 서울로 다시 올라왔던 여름이었다. 급하게 집을 알아보기도 했고 유럽에서 탈탈 털어 쓴 자금상태가 문제였기 때문에, 처음 구해보는 서울 자취방에 당장 보증금과 월세를 쏟아부을 수 없어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학교 앞의 쉐어하우스였다. 산 중턱에 위치한 쉐어하우스는 방 3개를 4명이서 나누어 쓰는 구성이었고, 나는 가장 저렴한 1인실에 입주하기로 했다. (쉐어하우스 사업 대표라는 사람이 약간 말을 횡설수설 하는 느낌이라 믿음이 안 가긴 했지만) 같은 학교 학생들이 함께 살고 있고, 알고 보니 학교 친구가 옆 방에 입주해 있었고, 나름 널찍한 부엌과 거실(공용공간)이 있는 집이라 만족했다. 약 6개월 가량의 인턴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다. 보증금 500에 월세가 30만원, 관리비가 10만원 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나마 벽에 액자며 좋아하는 달력을 붙이며 나름대로 정을 붙이긴 했었다.


그러나 이 집의 문제는… 나를 제외하고는 집의 주인도, 집에 들어와 있는 홈메이트들도, 아무도 공용공간에 애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보다못한 내가 나서서 들어오는 날부터 화장실이며 거실, 부엌을 쓸고 닦고 청소하고 정리했지만, 활발하게 활용하지도, 같은 마음으로 관리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그 공간들은 항상 청소가 끝나자 마자 순식간에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결국 빨래 너는 공간 이상의 가치가 없는 거실과, 오래된 흔적이 눅눅하게 남은 부엌 바닥, 각각의 목욕 바구니가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욕실은 귀가하자 마자 쳐다보기만 해도 마음에 돌을 얹은 듯 마음이 무거워졌다. 관리가 되지 않은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는 걸 그 때 실감했다.


게다가 혼자 살지 않는 집은 3년간의 기숙사 생활로 문제없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창 유럽에서 혼자만의 방에 익숙해진 나는 공간의 책임을 함께 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피로를 느꼈다. 분명 그들도 나름대로의 노력을 들였겠지만, 잠시 세 들어 사는 쉐어하우스의 구조상 이 공간에 애착을 갖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고, 모두 이 집에 애착을 가지도록 강제할수도 없는 데다가, 이 주제로 본격적으로 논의를 하기에 우리는 각자 너무 바빴다.


인턴이 끝나고 복학을 준비하던 시기, 나는 그 쉐어하우스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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