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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 Apr 18. 2021

서울 표류기 4

서울표류기 3탄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나 스스로를 살림꾼이라고 칭하기엔 아직 부끄럽지만, 이 집에 와서 나는 살림의 재미를 깨우쳤다. 오늘의 나는 살림이 정신수양의 방법이자, 자기 관리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부끄럽다고 해놓고, 너무나도 살림의 고수 같은 말이다.) 

너무 지치고 우울한 날,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내 방을 보고도 너무 귀찮고 지겨워서 벽 쪽으로 몸을 돌려 낮잠만 자고 싶었던 하루가 있었다. 또 어떤 하루는 세상이 너무 지치고 우울한데도, 몸을 일으켜 옷장 정리며 청소기며 실컷 하고, 나온 쓰레기를 싹 버리고 환기를 시켜 두니 도저히 침대에 눕기엔 아까워서 혼자 멍하게 커피를 내려 마시며 울지 않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던 날이 있었다. 꽃을 사 와서 꽂은 날엔 온전히 내가 나를 위해 한 일인데도, 그 마음이 나에게서부터 나와 세상을 잠시 헤엄쳐 내 방에 내려앉은 것이라는 걸 뻔히 아는데도 눈 앞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녹았다. 


마음이 공간에 투영되기도 하고, 공간이 내 마음을 뒤흔들기도 한다. 나를 품은 공간은 동시에 나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나는 공간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 영향을 고스란히 돌려받는다.


나는 마음에 공백이 있는 사람이고 싶다. 언제든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또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하루키는 달리기가 인생에, 마음에 공백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달리기도 좋아하지만 나는 청소와 정리에도 그 말을 응용하고 싶다. 


나는 반쪽짜리 미니멀리스트다. (완전한 미니멀리스트가 될 생각도 없다.) 애착이 있는 물건이나 비싼 물건을 쉽게 정리할 수 있는 편은 아니고, 마음을 주게 되는 물건이 생기면 (특히 뭘 배우기 시작한다거나) 또 집에 선뜻 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에 물건을 들이던 기준과는 조금 다르다. 옛날엔 내 공간이 얼마만큼인지 인식하지 않고 싸구려 옷을 사들이기도 하고, 앞으로의 생활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쟁이거나 쌓아두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머리맡에, 발치에, 마구 쌓여가던 물건들이 어느새 나를, 나의 연장선인 공간마저 옥죄인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나 많은 것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했다. 그래서 하나 둘 버리기 시작했다.  쓰지 않는 아까운 화장품을 맘먹고 버리면 단 한 번도 그 화장품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고, 사놓고 얼마 못 입어 아쉬운 옷을 버려도 마찬가지라는 걸 배웠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땐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괜히 물건을 쟁여두지 않고, 쓸모없는 물건을 모셔두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게 됐다. 비워 두었더니, 새로운 것들이 머물렀다 간다. 내가 늘 원했던 삶의 방식이다. 


혼자 살면 혼자만의 기준으로 삶을 꾸릴 수 있다. 나는 답례품 수건이 쓰기 싫고, 치약을 쟁여두기 싫다.(쓰고 싶은 치약이 바뀌면 어떡해요. 세상은 넓고 써 볼 치약은 많은데!) 내가 아침 러닝에 간 시간에 세탁기가 돌아갔으면 좋겠고, 욕실 바닥엔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욕실 물건은 공중부양이 최고다! 물때 없는 욕실 만만세!). 어지간하면 물건은 다 가구 속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 속의 정리 상태가 엉망이더라도 말이다.)


사람은 영원히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평가가 더 객관적이라, 외모 평가에는 누구나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의 연장선인 내 공간은 내가 제일 열심히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타인의 평가에 조금이나마 둔감해 질 수 있다. 내 공간을 둘러보면서 쓸모없는 걱정으로 쌓아 둔 짐은 없는지, 제 때 들여다보지 못해서 먼지가 쌓인 곳은 없는지, 내 마음을 나를 위해 쓰는 연습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관심은 진짜 나를 향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서울을 표류하며 찾아낸 건 결국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살펴본 나였고, 그 모습은 공간이 주는 영향에 취약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조금 더 연약한 나였다. 다행히도, 그런 나를 돌보는 법도 자연스레 배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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