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사원에서 손대리로의 업-그레이드
"네가 몇 년차지?"
"저 올해 4년 차요."
"헉 너 그럼 이제 대리 연차네"
"그러니까요..."
23살, (2017년) 인턴 나부랭이 시절을 지나
24살, (2018년) 초, 인생 첫 정규직 취직에 성공하고
27살, (2021년) 2월 마지막 워킹데이에 대리로 진급을 했다.
딱 세줄로 정리해보니 그 사이 세월이 많이 흘렀다 싶어 갑자기 어리둥절한 기분이 든다.
나를 4년 넘게 보고 있는 분들인데도, 마냥 막내로만 남아있을 것 같던 내가 대리로 진급을 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고 놀랍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저기... 동료 여러분, 그럼 제가 영원히 막내일 수는 없잖아요...)
이 세 줄 사이에 대학도 졸업하고, 첫 대출도 하고, 한 달이 멀다 하고 출장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항공사 회원 등급이 바뀌는 등... 소소하고 큰 변화들이 나를 스쳐갔다. 그 변화들 속에서 처음 해 본 것도 많아졌고, 생각도 해 본 적 없었는데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들도 생겨났으니 근본적인 나의 무언가가 일어나서 움직였다고나 할까.
돈을 번다는 것은 생각보다 신나는 일이었고, 그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운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아 그 얼마나 기나긴 등골 브레이커의 삶이었던가) 온전히 내가 번 돈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건 너무나 짜릿한 일이었고, 그 무엇보다 돈을 벌어오는 나 자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게 눈물 나게 감동적이었다. 취미 콜렉터이자 학원 부랑자인 나에게 기타 학원 발레학원 필라테스 요가 미술학원 책모임 온라인 드로잉 클래스... 등을 선물했다. (그래서인지 모은 돈은 없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대도 또 할 거다. 시간을 쥐어짜서라도 더 할 거다. 앞으로도 더 할 거다.)
나에 국한된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번다는 건 사실 엄청나게 외로운 일이었다. 아무도 나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해주고 배려할 수는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만 일이 굴러가기 때문이다. 내가 맡았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해내야 하고, 그 모든 맥락과 상황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주위 사람들이 각자의 몫을 잘해주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도 벅차다. 오로지 나의 작고 소중한 월급만이 외로운 고군분투를 향해 위로를 건넬 뿐이다(실로 엄청난 위로다). 그럼에도 좋은 선배와 동료들이 있어 터져 나오는 서러움과 어려움을 늦지 않게 토로할 수 있었고, 첫 진급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하지만 이 진급이라는 간이역에 기차는 서지 않고 그대로 지나간다. 여유를 만끽할 틈 없이 다시 가야 한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시시할지도 모를 첫 진급이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크다. 그냥 이것저것에 의미 부여하는 걸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의 인생은 다 스스로가 부여하는 의미로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의 회사에 얼마나 더 머무를지 당장은 아무 계획도 짐작도 없는 상태이지만, 나에게 자급자족 가능한 어른으로 성장할 기회를 준 첫 회사이자, 그저 지난 만 3년을 잘 지내왔다는 이유로 왕초보 딱지도 떼어내주었으니 일단은 고맙다고 해 볼까 한다.
초-중-고-대학교까지의 여정이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기차를 갈아타는 여정이라 더 아쉽고 속절없이 가버린 듯해 서운했는데, 회사에서의 첫 진급은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의 역할과 신뢰가 더 깊어진 느낌이라 조금 덜 애틋하고 조금 더 우쭐하다. 이번 주말까지만 우쭐하고 다음 출근부터는 조금 더 어른처럼 굴어보려고 한다. 오늘은 아무래도 나한테 좋은걸 먹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