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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 Mar 27. 2021

서울 표류기 - 1

어쩐지 지금도 닻을 내렸다는 기분은 들지 않네

부산의 아파트가 빽빽한 신도시 아파트 단지 안에서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살다가 19살이 되던  , 아버지의 자동차 뒷자리에  이불보를 끌어안고 구부정하게 잠든  나는 서울로 배달됐다.

그렇게 시작된 20대의 술 + 친구 + 대학 + 연애의 삶

어찌나 챙겨 온 것이 많았는지, 2인용 기숙사의 반절에 가득가득 쌓인 옷가지와 짐 사이를 헤매다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일단 집에 있던 내 거다 싶은 것들은 다 챙겼나 보다. 옷 더미를 의자로 옮겼다가 침대 위로 옮겼다가 여의치 않을 때는 바닥에도 내려놓았다가, 이건 뭐 집달팽이도 아니고 늘 양 손 가득한 짐과 싸우느라 매일매일 진이 빠졌다.


물건 틈 새 정신없이 살다 보니 방 틈 사이로 안 좋은 기운이 들어왔다. 진짜 도둑이 든 거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야금야금 뭔갈 집어가거나 쓰고 있었는데 아마 룸메이트와 나만 몰랐던 모양이다. 작은 것들이 사라지다가 도둑은 내가 세수하러 간 사이 결정적으로 내 핸드폰을 훔쳐 갔다. 심지어 룸메이트는 어느 날 나에게 자신의 화장품을 쓰고 있는 게 아니냐며 따졌다. 억울했다. 이 잡동사니 속 내 것에 신경 쓰기도 나는 너무 벅찬데, 어떻게 네 물건까지 눈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기숙사생들은 학교의 명령대로 정해진 날 퇴거도 했다가, 입주도 했다가를 반복했다. 그동안 내 짐은 줄어들 줄 모르고 늘어나기만 했다. 사실 나름대로 버린다고 버린 것 같은데 영 시원찮게 버렸는지, 매 학기 이삿날이면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특히 어느 날엔 무거운 박스를 온 사력을 다해 들고 옮기려는데 좁디좁은 기숙사 방문과 침대 사이를 넘어가지 못하고 옴짝달싹 못 하게 된 순간에는 그 순간이 너무 억울해서 주저앉아 울었다. 왜 이렇게 사는 데 물건이 많이 필요한 거야 (사실이 아님) 왜 나를 아무도 안 도와주는 거야.(이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박스 네 개와 대형 비닐 두 개는 기숙사 측에서 다음 방으로 이사를 해 줬다) 왜 이렇게 내 인생은 고달픈 거야(음, 이건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을 수도?)


그렇게 3년을 기숙사 동네를 빙글빙글 돌며 살았다. 서글픈 척 해도, 거기서 많은 것의 처음을 보았고, 연애도 하고, 고백도 받고, 눈 온 날엔 동기들과 눈싸움을 하고, 썸 타는 남자와 산책도 하고, 술에 취해 층을 잘못 찾았는지 모르는 사람 기숙사 방문 앞에서 잠들었다가, (휴.. 엄마가 이 글 읽으면 안 될 텐데) 술에 취한 남자 친구를 보러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갔다.

 안전하게 수업에 갈 마지노선을 넘겨버려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뛰다가도 봄 꽃에, 여름 산들바람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면 기숙사의 그 길을 한참이고 음미하며 걷기도 했다. 겨울방학이면 기숙사 창문의 블라인드를 손으로 올리고 머리 위에 얹고 반쯤 뜬 눈으로 학교 산자락에 하얗게 쌓인 눈을 구경하기도 했다. 아무리 서러웠어도, 기숙사가 좋았다. 내가 아직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느낌을 다 지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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