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하고 씻고 저녁을 먹는다. 머리를 감고 나오면 그즈음 울리는 전화 벨소리. 매일 약속된 남자 친구와의 통화 시간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울리는 핸드폰. 당연히 남자 친구겠거니 하고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다.
'아빠'
정말 오랜만에 핸드폰으로 확인하는 그 이름.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지, 왜지, 뭐지, 그냥 받지 말까? 하는 생각들을 배신하고 손가락이 통화 버튼을 눌러버렸다. "어..."
어색하고 불편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잘 지내냐? 아니, 00(동생)하고 연락이 안 돼서.
넌 잘 있지? 엄마도 잘 있지?"
동생은 우리하고도 연락이 잘 안 되는 편이다. 확인을 못 할 정도로 바쁜 건지, 확인을 하기 싫을 정도로 마음이 멀어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빠 전화만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닐 거라고 안심시켰다.
"아, 걔 우리하고도 연락 잘 안돼. 바쁜가 보지 뭐."
"그래? 아니 이제 00이 취업 시즌이잖아. 어떻게 결정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있어야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빠가 도와줄 거 있으면 별 도움은 못 되겠지만 그래도 도와주고 싶은데 가타부타 말이 없네."
동생은 이제 대학교 4학년 2학기. 슬슬 취업 준비를 시작할 시기다. 아빠는 동생이 공무원을 했으면 해서 이전에 슬쩍 말해보았다는데, 이놈이 진로를 공무원으로 정한 건지, 회사에 취직하기로 결심한 건지 어떻게 된 건지가 내심 답답했나 보다.
"아빠가 왕년에 공기업을 다녔잖냐. 아빠가 좋은 대학은 못 나왔어도 고등학교 때 공부 못한 거 만회하려고 회사 시험을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다고. 너는 알지? 00 이한테도 얘기해주고 싶은데 말이야. 아빠가 고등학생 때 ~" 하면서 아빠의 끝나지 않는 수다가 시작됐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말이 많았다. 같은 단어를 유사 단어로 바꾸어 또 말했고, 결국은 같은 내용을 순서나 어감을 바꾸어 계속 말했다. 예전에는 끝없이 메아리치는 그 말들을 듣기가 싫었는데, 오늘은 왠지 다 들어주고 싶어 졌다. 안 그래도 말하기 좋아하는 우리 아빠는 그동안 얼마나 더 말하고 싶었을까. 이제 친구들이나 형제자매들은 들어주지 않을 그 긴 이야기들을 얼마나 털어놓고 싶었을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내 목소리는 점점 밝아졌고 깔깔 웃기도 하며 열심히 호응했다.
몇 가지 새로운 이야기들도 섞여 있었지만, 결국은 예전에 들었던 그 이야기이다. 사고뭉치였던 아빠가 어떻게 공기업에 들어가게 됐는지, 어떻게 엄마를 만나게 됐는지, 결혼하고 나서 엄마가 공무원이 되도록 어떻게 도왔는지, 그리고 아빠가 힘들게 들어간 공기업을 제 발로 나와야 했던 그 이야기들. 그 뒤로는 내가 뼈아프게 기억하는 그 나날들.
"그 뒤로는 너도 다 아는 얘기지 뭐. 그래 무튼 00 이가 마음을 잘 잡아야 할 텐데.
나는 너 걱정은 한 번도 안 했어. 항상 00 이가 걱정이지. 00한테는 해준 것도 없고."
아빠도 엄마도 항상 나보다는 동생한테 미안해했다. 내 걱정보다는 동생 걱정에 근심이 깊었다. 나는 나라도 걱정 끼치지 않을 수 있어 다행스러운 마음과, 나도 좀 생각해주지 하는 투정 사이에서 자랐다. 장녀이니까 참아야지 하는 마음과, 장녀가 고아는 아니잖아? 하는 마음을 번갈아 갉아먹으며 컸다. 한때는 반발심이 커져서 동생까지도 미워보이는 날들이 있었다. 마음껏 엇나가면서도 받을 것은 다 받는 그 재주가 참 대~단하다고 비꼰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동생이야말로 하늘 아래 나와 똑같은 상황을 겪은 유일한 한 명이라는 깨달음 후에는 동생까지 미워하지는 말자고 결심했다. 알고 보니 동생도 나름 힘들었더라. 지금까지도 힘들어하더라. 그리고 미안해하더라. 그걸 알고 나니 동생을 미워할 수 없었다. 예쁘고 착한 내 동생.
이제는 내가 겪은 상황들이 누구 한 명을 탓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엄마도 아빠도 탓해봤지만 내 마음은 더 병들었고 따지고 보면 엄마 탓도, 아빠 탓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편하다. 우연히 당한 교통사고처럼. 복합적으로 얽혀있어 과실을 따질 수 없는 좀 머리 아픈 교통사고처럼. 삶은 우연히 나를 들이받았던 것이다. 과실이 어떻든 간에 일단 살아남은 게 중요하다. 왜 하필 나냐며 이러쿵저러쿵 투덜대는 날이 많았어도 살아남았으니 그 또한 감사한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자기 위로해도 가시지 않는 서운함. 동생만 걱정하는 엄마 아빠.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서운하다. 나도 걱정 좀 해주세요. 내가 다 잘 헤쳐나가는 듯 보이시나요? 나도 때때로 아픈데. 나도 걱정거리가 한 바가지인데. 나에게도 걱정을! 아니 마음을! 관심을!
"그래, 그건 그렇고. 남자 친구랑 잘 지내냐? 네가 나이가 몇이지? 이제 식 올릴 때도 됐네?"
드디어 내 얘기다. 나는 신이 나서 남자 친구의 취업 얘기, 얼마나 괜찮은 회사에 취직했는지, (공무원을 좋아하는 아빠니까) 얼마나 공무원과 비슷한지, 얼마나 이 친구가 고생을 했는지, 얼마나 기특한지 등등을 의기양양하게 전했다.
"이야. 진짜 축하한다고 전해줘. 아빠가 다 기쁘다.
네 남자 친구, 혹시나 취업했다고 한 눈 팔면 아빠가 혼쭐 내줄 테니까 걱정 말고!"
아빠도 참 ㅎㅎ. 내 남자 친구가 어떤 사람인데 한 눈을 팔 걱정을 해? 그러고 보면 정말 아빠는 하나도 모른다. 하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헷갈린다. 혼쭐 내준다고? 나 대신에? 아빠가? 이 대목에서 나는 좋아해야 하나, 싫어해야 하나... '아빠가 뭔데? 나는 아빠보다 남자 친구랑 더 가까운데? 아빠가 뭔데 나한테 제일 소중한 사람을 혼쭐 내?'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나 대신에 발끈해줄 사람이 있어서 좋네. 나도 이렇게 신경 써줄 사람이 있었구나.' 해야 하는지. 헷가릴 때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감정이 느끼는 대로.
사실은 마음이 조금 벅차올랐다. 남자 친구를 혼쭐낼 사람이 생겨서가 아니라 (난 그렇게 쓰레기는 아니다.) 아빠가 나 대신에 감정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 같아서. 내 일로 화도 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내 일로 속상해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물리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더라도 마음으로는 우리는 아빠와 딸이 맞는구나. 없는 줄 알았는데, 내 뒤에서도 버텨줄 사람이 있었구나... 그 한 마디가 나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래, 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
건강하고, 또 보자."
그렇게 우리는 1시간 가량의 아주 오랜만의 통화를 마쳤다. 갑자기 어렴풋이 잊었던 기억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철봉에 올라가 삼계탕처럼 대롱대롱 매달리기가 유행을 한 적이 있었다. 겁도 없이 나는 가장 높은 철봉을 골랐고 매달리기도 잠시, 모래판으로 곤두박질쳐 얼굴을 정면으로 박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코가 낮아 코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양 볼이 쓸려 까지고 피가 났다. 집으로 들어가며 엄마에게 얼마나 혼이 날까 벌벌 떨었는데, 엄마보다 더 크게 화를 내는 아빠를 보았다. 아빠가 황소처럼 화를 내는데 이상하게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화가 아니었구나. 사랑이었겠구나. 화가 아니었구나. 걱정이었겠구나.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빠를 잠시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