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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Feb 0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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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진눈깨비 

   

작은 점들이 허공에 알알이 쏟아지고 있었다. 얼굴 곳곳으로 파고들어 오는 그것에 실눈을 떠야 했다. 그것은 언뜻 희어 보였고 자세히 보면 연회색이 섞여 있기도 했다. 아마 속에 먼지가 끼어있는 모양. 감상적으로 적자면 움직이는 것들은 조금씩 검어지는 특성이 있어 그러하리라. 무릇 삶이 그렇기도 하고.  

언제까지 날리려는지 모를 듯이, 마치 온 세상을 싹 쓸어버리겠다는 듯이, 그것은 매섭게 흩날린다.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빠르게 걸었다. 운 좋게 우산을 챙겨 나온 부지런한 사람들은 천천히 걸었다. 준비성이라는 것은 삶을 유리하게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상당히 피곤하게도 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빈손이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이 속에 완전히 파묻혀버리겠다고 생각했다. 찬란한 무아지경. 그것은 속절없이 닥쳐온 내 삶의 어떤 불편함을 동심처럼 받아들이는 일. 그 속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그 상태가 너무나 좋고 신이 나서 온전히 나 혼자만 누리고 싶은, 가히 열정적인 상태다. 진눈깨비와 무아지경은 아주 닮았다. 심연이라는 게 있다면 이것일 것이다. 심연은 언제나 휘몰아치는 것의 안쪽에 심장처럼 뛰고 있다. 

나는 우렁차게 발을 떼었다. 그것이 나를 후드득 때리고 간다. 하얀 탄생, 그리고 망실. 어떤 순수한 열정과 냉정이 내 뺨을 시리게, 그리고 단단하게 한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깨를 펴고 허리를 쭉 뽑았다. 푹푹 박히지 않지만 온갖 냉기는 느낄 수 있는 진눈깨비를, 나는 결국 사랑한다. 어느 날에는 나를 끝없는 불행의 우물로 수장시켜 버리다가도 또다시 이토록 내 삶에 없어선 안 되는 환한 진눈깨비. 더 내려라 진눈깨비. 어서어서 그 두꺼운 우울의 살갗을 쓸어가버려라. 아무런 생각도 기억도 없이 오직 감각과 환희만으로 기능하게 하라. 흩날려라 진눈깨비. 그 속에 있으면 나는 간신히 아름다워진다. 

모든 것이 아스라해지고 뒤섞인다. 나와 세상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나는 새롭게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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