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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Mar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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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물방울 



일교차가 심한 3월 중순. 저녁에 이슬비가 왔다 갔다. 이슬비는 내리는 비가 아니다. 날리는 비다. 미약한 실바람에도 본래 나아가려던 방향을 비틀어버리는 이슬비를 보고 있으면, 저것은 유연하다 못해 우유부단하다고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저 우유부단한 이슬비도 결국 어딘가로 떨어져 박히고 어떤 생명의 자원이자 양분이 되고, 생존이 되고 삶이 된다. 나는 새삼스러운 거룩함을 느낀다. 물의 거룩함. 또 하늘의 거룩함. 모든 생명은 물이 없어 죽지만, 또 너무 많은 물도 생명을 죽인다. 그러니 이슬비야말로 ‘중용’과 가장 어울리는 지혜롭고 신령한 현상 아니겠는가. 하늘에서도 꼭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무정한 것들만을 떨어트리지는 않는다. 그 사실에는 얼마나 안심이 되는가. 자연은 그토록 무정하지만 이토록 다정하기도 하다. 


나는 문득 창문에 떨어지듯 맺힌 물방울을 한참 들여다봤다. 나는 물방울 들여다보는 걸 참 좋아한다. 물방울이라는 건 보면 볼수록 신기롭다. 일단 투명하다. 투명한데 존재하고 있다. 투명한 것인데 없는 것은 아닌 거다. 그러면서도 곧장 사라져 버린다. 이런 것은 생각해 보면 희귀하다. 투명한데 안정화가 되어 사물로 존재하는 것은 물론 많지만, 곧장 사라져 버리는 것은 물방울 말고는 없는 듯하다. 

물방울을 보면 한 방울 한 방울이 꼭 생명을 가진 듯하다. 어떤 물방울은 오뚝 솟아 있고, 어떤 물방울은 찌그러져서 넓게 퍼져 있다. 싱그럽고 생기롭기도 하고, 피폐해 보이기도 한다. 마치 구슬 같기도 하고, 거울 같기도 하다. 빛을 머금기도 하고, 어둠을 등에 진 것도 같다. 맺히기도 하고 흐르기도 하고. 홀로 흐르다가도 다른 물방울과 만나서 크기가 더 커지기도 하고. 한순간에 형태를 잃어버려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물방울을 보면 사람과 삶, 또 순리라는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사람도, 삶도, 그저 물방울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결국 순리를 거스를 수 없고,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하는 존재. 작고 하찮은 것들을 모아서 소중한 것을 만들고. 둥근 하나의 독립채가 되고. 자신을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고 믿지만 결국 다 투명하게 비치기 마련이고. 홀로 흐르다가 이끌리는 비슷한 사람과 만나 하나의 삶이 두 개의 삶만큼 넓어지고. 그러다가 결국 거대한 어떤 세계에 닿아 형태가 부서져 사라지고. 필경 우연의 영역에 있는 존재. 

그러나 아름다운 사실은 비록 형태는 사라지지만, 물방울도 사라지면서 어떤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물방울 자국. 나는 물방울만큼이나 물방울 자국이 아름답다. 울긋불긋하게 거울을 더럽힌 물방울 자국을 보고 나는 물방울이 결코 하찮지 않았음을 안다.  


그리하여 사람도 삶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육체는 언젠가 멈추고 썩어 사라지지만, 영혼의 흔적은 오래도록 남는 것 아니겠는가. 살아있기 때문에 죽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인간은 사라지지만 마침내 사라지지 않는 존재 아니겠는가. 


나는 어디서 무엇으로 존재하다가 사라질 것인가. 사라진 다음 어떤 흔적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어떤 이야기를 남길 것인가. 이 질문들은 아마 나를 오랫동안 들들 볶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이 비록 삶을 피곤하게 하더라도, 끝끝내 삶을 포기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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