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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Mar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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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나는 나를 분리시킨다



춥다. 앙상함이 무성하다. 숨 가쁜 빛이 몸속으로 파고든다. 침윤하고 침식된다. 따뜻한 기온은 나를 데우지 못한다. 추위는 삶의 갈증을 잃은 심장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끌리던 자로서의 나는 이제 거의 소진되었다. 더는 착취할 정적마저 남아있지 않다. 자구 시끄럽다. 혼란을 나의 언어라고 한다면, 나는 그저 홀연히 떠나는 것에 취미가 있을 뿐이다. 혼란은 소통되고 교감되지 못한다. 혼란을 설명한다는 건 추하다. 그러므로 어젯밤 강가에서 거푸 숨통을 확장시켰던 일은 예정되어 있었다. 썩은 안을 들고 멀쩡한 낯짝을 펴 바르다 보면 문득 목련은 그때 핀다. 

빛. 찬란한 헛것. 밖. 모종의 박탈감. 아, 젊음은 정녕 찢고 신음하고 꿰매는 일의 연속인가. 생은 어쩌다, 지리멸렬해졌다.

양미간을 찌푸린 채 느끼는 증오감은 감옥을 짓고 감각부터 수감시키기 시작한다. 나는 나를 가두고, 나는 나를 쓸어 담고, 나는 나를 능멸하고 업신여긴다. 이곳은 너무 비좁고 나는 쓸데없이 크다고 생각한다. 무엇에도 절실하지 않으므로 나는 멸망하여 없어질 듯하다. 

인간은. 생은. 나는. 이제 남은 것이 없구나.

그저 덩치만 커지다가 쪼그라들고. 지식과 지혜를 갈구하다가 스스로 묫자리를 파고. 자유를 쫓다가 되려 고립되고. 희망으로 연명하다 좌절당하고. 절망으로 돌진하다 피폐해지고. 흉터 덕분에 사랑하고, 흉터 때문에 혐오하면서. 나는 나를 분리시키고, 곧 전멸하겠구나. 사는 동안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다가 죽을 때 억울하게 죽겠구나. 깊은 상처에 가없는 아픔을 느끼다 결국 주체가 된 존재들만 여기 살아있는 것이로구나. 그러나 그 주체는 참으로 하찮은 먼지같이 긁을수록 때만 남기는 것이로구나.

사랑과 평화라는 단어는 생각할수록 파렴치하고 폭력적이구나. 덕분에 ‘더’ 혼자인 외로운 자아만 늘어나고. 관념과 실체가 상충할 때 모습은 가장 애처롭고. 나는 결국 욕망의 노예이거나, 노예를 욕망하다가 죽겠구나. 죽고 또 죽다가 아주 잠깐 산 척하겠구나. 

매 순간 감사하라는 잠언에 허덕이면서, 매 순간을 감시하면서 산다. 내 중심은 모순이다. 모순은 심연이다. 어쩌다 심연의 뚜껑이 열리면 한동안 소리 없이 우짖어야 한다. 누구와도 이런 얘기를 구체적으로 할 수가 없어서 나는 아마 슬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으로 구부러진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가뒀기 때문이다

나는 밖에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맘 때면 나는 내 모가지에 빨대 하나를 꽂고

열렬히 피를 빨아먹는 곤충 한 마리처럼——

/

좀 웃어보라는 말을 듣고 문득 생각난 처방. 

자 해보자, 양 쪽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찢어지도록

꽃이 활짝 피어나도록 웃는 거다

아무 짝에 쓸모없는 입술, 그래 입술아

그 누구도 사랑한 적 없고 제대로 된 말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입술아

강가에 가서 목구멍을 활짝 열고 피를 삼키다 몰래 질식해 죽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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