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
시시한 기분이 든다면
어둠과 별. 그토록 무한한 우주를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안도감이 든다. 내가 다만 하나의 피조물로서, 어떤 물질로서, 우연히 진화한 지적 생명체로서, 이 지구라는 행성이 탄생해 먼지처럼 소멸해 간다는 진실이 나를 경이롭게 한다. 그러면 그저 경건히 가벼워지는 것이다. 그 외 다른 생각이나 결심을 할 필요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나에게 너무 과한 무게와 쓸모와 의미를 부여하려 들 때마다 우주는 나를 그저 무릎 꿇게 만든다.
무릎 꿇은 내가 쓸쓸하지 않아 나는 내가 좋다. 굴복한 자가 아닌 받아들인 자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내 영혼이 소중하지만,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특별한 무엇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인간은 결국 40억 년에 걸친 진화의 일부일 뿐. 기적도 혁명도 아닌 다만 우연과 적응의 산물이며, 유한하게 소멸해 가는 존재일 뿐임을 나는 흐뭇하게 인정한다. 나를 위해서다.
나는 용기를 버리고 내 앞에 선다.
언제나 나는 의미와 쓸모라는 강박에 시달려왔다. 부끄럽지 않게 존재하려는 근원적 소망으로부터, 나는 완전히 몰살당하고 말았다. 눈을 뜨면 늘 부끄럽지 않게 존재하려 버둥거렸고, 그 일은 늘 실패로 귀결되었다.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족의 기준이 없다. 오히려 패배의 기준만이 명확하다. 한 번 맛본 의미는 그 이후부터 의미가 없다. 그 이후로는 공허와 허무만이 왕성하다. 이때의 공허와 허무는 일종의 질병이다. 쓸데없는 의미가 범람하면서 찾아오는 자학이다. 나는 이토록 자주 나로부터 배척된다. 나는 이 질병에 한평생을 시달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질병의 완치는 불가능하다. 단지 스스로 치유하는 나름의 방법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다시, 오만해지지 말자고, 나는 나란 인간으로부터 스스로 역행해버리거나 시야의 한계가 없도록 한다. 별것 없는 미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즉시 내 여러 정신적 문제들은 하찮아진다. 이 하찮음은 얼마나 순결한가.
우주는 오만과 욕망의 유일한 치유책이다.
모든 것은 유한해야 한다. 정직하게 소멸해야 한다. 소멸함으로써 영혼은 입증된다. 그러니 자주 하늘을 볼 수밖에. 자주 땅 속을 가늠할 수밖에. 자주 몸의 역사를 더듬을 수밖에.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압도적인 공간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다. 목적이 없어진다는 건 얼마나 순결한 실천인가. 무의미와 소멸을 직시한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죽음을 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인간만의 축복이 아닐까.
물론 여기서 혼동해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주가 무한하고 인간이 그저 작디작은 그 어떤 존재일 뿐이라 하더라도, 내 삶이 형편없다는 건 아니다. 인간은 무의미하지만, 자신의 이름은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