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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Jun 03. 2024

152

6.3

오래된 광기 



덧없음의 세계로 충돌해야지 허무는 부드러운 양식이 될 테니

본디 끔찍하게 광막한 시야를 가진 자들의 삶은 역설적으로 성실하지

끝을 훤히 알고 있어 우리는 작은 것을 찬양하니

권태와 경멸로 무장한 채 피핍한 무의식을 뒤에 달고서

빛을 피해 서성이던 순간이 모여 한 시절이 되었어도

다행히 아직 지겹지는 않다 매번 잊어버리므로 

열망했던 바람은 대부분 비정했지만

미망은 어쩌다 찬란한 고백이 되기도 했다

그냥 오늘 죽어버리자고 누가 말해주면 좋겠다!

하늘이 환히 터져버리는 궁극을 보고 싶어라 


구름이 구름처럼 지나간다

무엇을 보겠다는 날을 지나

아니 어떤 일부를 본다던 날을 지나

아니 아니 그저 어떤 ‘사이’를 스쳐간다고 깝죽대던 날을 지나

오래전부터 아무것도 보지 못함을 깨달은 날들을 지나왔다

파멸을 구걸하다 보면 아파졌다

사치적으로 아팠다

몸과 몸속의 내가 한꺼번에 주춤한다

모든 것에 감흥이 사라지고

나의 모든 것도 그저 그렇게

잔류하고 있었다

양 무릎을 주무르며 분명해지는 시간을 느끼면서  


시시한 빛이 자주 건물 외벽을 오려냈다

전투적인 낮에는 사람들 어깨가 반씩 잘리고

거리는 무덤처럼 솟아오르고

왜 그러느냐고 물으려 다가가면 모든 게 사라졌다

인기척은 묘한 비애감

영원에 가까운 연연함으로

비밀 같은 당혹과 이상한 작열감이 있었고

신시가지에서는 오늘따라 똥 냄새가 난다 


환희가 환멸로. 의지가 우울로. 고독이 망각으로.

자비가 오만으로. 음미가 발작으로. 지각이 허영으로.

통제가 속박으로. 주체가 자해로. 혼신이 골목으로.

얼굴이 어둠으로. 어둠이 진실로. 진실이 환영으로.

슬픔이 사치로. 용기가 악취로. 단념이 파멸로.

인식이 착각으로. 희망이 치욕으로. 자유가 죽음으로.  


문득 잘 못 살고 있다는 느낌과 어떤 다짐으로

해방을 궁리하다가 덫에 걸려 잘린 단면처럼

우리는 단순성의 아름다움을 숭배하였다 


과거는 토막 쳐진 살덩이처럼

무심한 침묵을 허락하지

조용히 뜨거워지라고 


한때 내 심장과 가슴은 서로를 적대하여서

아픈 날에는 살을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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