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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Jul 04. 2024

153

7.4

작업



귀찮다. 피곤하다. 이 둘을 합친 무엇이 되어 있다. 차라리 죽어버리라면 기꺼이 시도쯤 해볼 수 있을 정도. 가슴과 목 어디쯤에서 담배를 원하고 있다. 누가 들어와 있는 걸까뭔가 묵직한 걸로 계속 나를 짓누른다. “병신,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그 새끼가 말한다. 가슴이 간질거리고 입 속이 축축하게 젖었다. 그만 굴복해, 저항하는 것도 귀찮잖아. 그 새끼가 비수를 꽂는다. 그런데 저 밑에서 누가 또 말한다. “넌 어디도 못 가.” 다리였다. 그러고 보니 양다리가 땅에 폭 박힌 것처럼 미동도 없다. 딱딱하게 굳은 채 실실 웃고 있다. 담배 피울 수 있는 카페가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 어둡고, 저녁에는 맥주를 팔면 좋고. 노래가 나오지 않고, 인간도 없으면 완벽. 

상상을 하다가 그만 지루해졌다. 혀를 씹고 정신을 차린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걸까?

이 지경이 뭐 어때서?

짧은 대화가 오갔다. 심도 깊은 대화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그것도 지겨워져서 그만 생각을 차단시켰다. 나는 생각을 칼로 자르는 기술을 알고 있다. 상당히 실용적이다. 어떻게 하냐고? 영업비밀이다 

엉덩이에 시동을 걸고 손가락을 질주시킨다. 몇 줄 쓰고 다 지운다. 노트북이 괴물의 아가리처럼 보인다. 의자가 처형대처럼 보인다.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전부 내던지고 바다나 보러 갈까.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서 비나 실컷 맞고 싶다. 생각하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통장잔고를 본다. 하찮다. 다행히 맥주 살 돈은 있다. 밤이 오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여름은 쉽게 어둠을 내어주지 않으니까. 여름에 나는 줄곧 기다리기만 한다. 담뱃불을 붙이고,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나도 모른다. 이즈음 귓가에 울리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은 좋다. 유리가 사방으로 깨지는 것 같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그저 창밖을 바라보는 정도다. 거리에 인간들이 너무 많다. 한 절반 정도만 사라지면 딱 바라보고 있기 좋을 듯했다. 무언가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싫어져서 그만 눈을 감았다. 이대로 한 오 년 지나가버렸으면... 생각만 해도 황홀해서 눈을 더 질끈 감는다. 아주 잠깐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나를 쳐 죽여버려야 뭐가 되든 될 것이다. 나를 해체시키고 발라내고, 비우고 버린다. 나는 이 작업을 매일 한다. 무아경에 빠진 인간처럼 춤을 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아는 모든 인간들에게 시원한 엿 한 방을 날린다. 살면서 가장 좋은 건 혼자 있으면서 혼자 있지 않는 이런 순간이다. 삶은 처음부터 철저히 혼자인 난장판. 그건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허공 어디선가 까마귀가 까악까악 운다. 내 창에는 언제쯤 지혜롭고 매혹적인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오게 될까. 내가 기다리는 건 사실 시커먼 까마귀 한 마리가 아니었을까. 가장 지능이 높은 새. 거울 속 자신을 알아보는 새. 불행을 상징하는 타고난 고수. 검고 예리한 작품 하나. 나는 눈을 감고 까마귀를 기다린다. 비둘기를 닮은 인간들 사이에서. 닭장 같은 카페 안에서. 이 무능한 청춘이 끝장이 나면 비로소 내 오래된 야만을 벗으리라. 어금니를 씹으면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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