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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Oct 14. 2021

우리 집에는 작은 숲 속 서재가 있어요

아내의 독립적인 공간에 새로운 힐링 포인트가 생겼다

 "거기서 뭐 하는 거죠. 거긴 내 공간인데"

 "에이, 영희 씨 안 쓸 때 좀 쓸게요. 여기 앉아 있으면 숲에서 글 쓰는 기분이라 좀 느낌 있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독립적인 공간을 원한다. 그래서 나도 어릴 때부터 만의 공간을 원했고, 중학생이 되기 전부터 혼자 쓸 내 방을 원했었다. 형제나 자매간에는 종종 꽤 오랜 시간을 함께 공간을 공유하며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며 형이나, 언니가 빨리 독립하기를 원하는 동생들을 봐왔다. 여러 명으로 구성된 가족이 사는 주거 환경을 보면 일반적으로 방 세 개가 보통이고, 방이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면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독립적인 공간을 차지한다.


우리 집은 방이 세 개였던 시간을 따지면 십 년도 더 이전의 오래전부터였지만 처남과 함께 지낸 시간이 꽤 오래전부터여서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하고 나서야 두 아이는 오롯이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딸아이 나이로 따지면 초등학교 3학년 때여서 그리 늦진 않았지만 아들 기준으로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자신만의 독립적인 공간이 생긴 것이었으니 아들 입장에선 꽤 억울했을 듯싶다. 


그렇게 따지면 아이들은 몇 년 전부터 자신들의 공간들이 모두 존재한다. 하지만 아내나 난 방이 더 많은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방 하나를 공유하며 당분간은 지금처럼 살아가야 한다. 그래도 아이들에 비해 조금 나은 점을 생각하며 정당화해보면 우리 집 방 세 개 중에 가장 큰 방을 우리가 쓰고 있다.


아내와 방을 함께 쓰는 게 불만이 있거나 나만의 공간이 꼭 필요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아니 콕 집어서 얘기하면 난 아내와 함께 방을 써서 행복하게 생각하는 남자다. 주변에 다른 결혼한 분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각방 아닌 각방 생활을 한지 오래된 분도 있다고 하고, 나이가 들며 코 고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아이방으로 내몰린 남편들도 있다. 난 너그러운 아내 덕에 밤에 코는 꽤 골지만 아직까지는 아내와 나란히 한 침대를 쓴다.


사실 가끔 아내가 처가에 가거나 친구들과 여행이라도 가서 집을 비우는 일이 생겨도 난 넓은 방을 혼자 쓰는 게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아내가 처가에 가서 오랜 기간 집을 비우 기라도 하면 오히려 하루, 이틀이 지난 후에는 혼자 쓰는 방이 쓸쓸해서 행복하지 않은 감정을 넘어 오히려 외롭고, 두렵기까지 하다.


책이나, 드라마에서 보면 사십 대 가장은 외롭다는 말을 많이 한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공간인 자신들 방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부모의 간섭을 받지 않고, 함께 사는 집에서 독립을 주장하고, 아내는 주방이나 방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안방 TV와 씨름하기를 반복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그런 시간 속에 남편들은 늦은 시간 귀가해 가족들이 잠드는 더 늦은 시간까지 자신만의 독립적 공간도 없이 모든 가족 구성원의 공용 공간인 거실 소파에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TV를 보며 위로를 받고, 외로움을 잊는 모습을 보곤 한다.


하지만 우리 집 모습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각자의 공간에서 독립적인 삶도 중요하지만 가족들 간의 시간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와 아내는 아이들과 혹은 부부간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식사는 당연하고, 차 마시고, 함께 드라마와 예능을 보고, 아이들과 하루를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더 각자의 독립적인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각자의 방이 그런 독립적인 공간이고, 내게는 안방 서재로 꾸민 공간이 그렇고, 아내에게는 베란다 정원이 그런 공간이다. 베란다 정원, 아내를 위한 공간이지만 나의 힐링 공간이기도 하다. 아내와 결혼해서 지내면서 아내의 취미가 좋았고, 아내가 가꾸는 식물과 꽃들이 좋아졌다. 계절마다 계절에 어울리는 꽃들이 폈고, 찬 바람이 씽씽부는 한 겨울에도 아내의 베란다 정원에는 초록 초록한 녀석들이 언제나 내 눈을 즐겁게 해 줬다.


며칠 전 퇴근해 집에 왔더니 베란다에 떡하니 많이 보던 책상과 의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원래는 주방에 자릴 차지하고 있던 책상과 베란다 수납공간에 들어가 있던 캠핑용 의자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베란다에 벤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내가 고민을 거듭하다 행복한 사고(?)를 친 것이었다. 책상과 캠핑 의자는 처음부터 자신들의 자리였다는 듯이 그럴싸해 보였고, 딸아이가 스탠드까지 가져다 놓았더니 갬성 가득한 숲 속의 작은 휴식터가 된 것 같았다. 차 마시며 앉아 책을 봐도 그럴듯할 것 같았고, 노트북을 놓고 자판을 '툭탁툭탁'치며 글을 쓰는 내 모습도 제법 어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휴식터는 아내가 자신을 위해 꾸민 공간이었고, 난 아내의 그런 공간을 마치 내가 누릴 공간으로 그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내 아내의 양해를 구하며 아내가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 내가 좀 써도 되는지 허락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런 공간을 그냥 나나 아내만 누리는 꼴을 보고 있을 딸아이가 아니었다. 오늘은 마치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스마트폰 충전기까지 가지고 나가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아내와 나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꽤 긴 시간을 스마트폰을 하며 베란다 휴식 공간을 제대로 즐기는 듯 보였다.


 "영기 엄마, 여기 딱 마음에 드네요"

딸아이가 아내에게 장난을 거는 익숙한 수법 중 하나다. 영기 엄마와 수 엄마 놀이다. 코미디 빅리그라는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다.

 "따님~, 무슨 말씀하시는 거죠?"

조금은 당황해하는 아내를 보며 딸아이는 한 마디를 더 거들며 상황극을 이어갔다.

 "영기 엄마, 나 수 엄마잖아. 여기 카페 괜찮네. 영기 엄마 여기 딱 내 자리 같아"

긴 시간을 써서 미안했는지, 아니면 대놓고 조금 더 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인지 모르는 딸아이의 장난에 아내는 아랑곳없이 한 마디를 던졌다.

 "알 뽕샵 사장님 아니세요? 도대체 알 뽕샵은 언제 영업하는 거죠? 요즘 통 예약이 안되네요"

 "하하, 요즘 수행이랑, 센터 숙제가 많아서요. 전 이만 방으로..."


학교 생활이 바빴다는 핑계차일피일 핑계를 아내의 케어를 미뤄왔던 딸아이가 당황해하며 냉큼 베란다 책상 자리를 비웠다. 덕분에 책상은 차지가 됐다. 아내가 새로 꾸민 베란다 정원 책상 자리는 오늘도 예약 없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아내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느덧 베란다 정원 책상 자리는 우리 가족들의 새로운 힐링 포인트로 핫하게 뜨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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