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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an 28. 2024

우리 사랑만큼은 무게로 느껴지지 않았으면 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 박완서 에세이를 읽고서

우리 집 그(남편)는 소주의 애용가지만 제일 더운 복중에만은 맥주를 즐겨 마신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 목욕하고 마루에 앉아서 맥주잔을 기울이는 걸 보면 뱃속까지 시원해지면서 불현듯 나도 한잔 마시고 싶어 진다.


그래서 컵을 들이대고 한 잔 달라고 하면 여자가 술은 무슨 술이냐고 핀잔을 주면서 맥주병을 뒤로 감춘다. 그럴수록 나는 걷잡을 수 없이 그게 마시고 싶어 져서 한 잔만 달라고 거의 안달을 하다시피 한다. 한참 안달인지 애교인지를 떨어야 겨우 한 킵 주기는 주는데 어떻게 기술적으로 따르는지 맥주는 한 모금도 안 되고 거품만 부걱부걱 넘치게 따라 준다. 그렇게 인색할 수가 없다.


그런데 딸들이 옆에 있으면 달라지 않아도 너희들 맥주 한잔 안 하련? 하면서 자기가 먼저 권한다. 나는 그의 젊은 세대에 대한 아부 근성이 미워서 당신 어쩌자고 딸들에게 벌써 술을 가르치냐고 항의를 한다. 그러면 그는 맥주도 술인가, 청량음료지 하면서 능청을 떤다.


맥주 편리한 것이어서 내가 마시면 술이 됐다가 딸들이 마시면 청량음료가 됐다가 한다. 어쩌면 편리한 건 맥주가 아니라 그의 여자에 대한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아내는 과거의 편견 속에 가두어 두고 싶지만, 딸들 만은 자유롭게 길러 우리 아빠 최고란 소리를 듣고 싶은 모양이다.


※ 『여자와 맥주』 중에서



'아들 잔 받아. 성인 된 걸 축하해!'


벌써 2년도 더 됐지만 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도 나오고, 뿌듯하기도 하고, 아쉬운 생각도 조금 든다.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아들 성인된 날을 딱 기다렸다 12월 31일에 동생내외가 집에 놀러 왔다. 그 이유라는 게 조카가 마시는 첫 성인 기념 술자리를 함께 하고자 하기 위함이란다. 나름 어릴 때부터 봐오던 조카의 기념비적인 날을 놓치기 싫었나 보다. 


특히 동생은 갓난아기 때부터 함께 살던 조카가 대학에 합격하고, 막상 술을 함께 마실 수 있다는 게 그리도 신기한가 보다. 뭐 굳이 표현하면 그런 기분은 나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지만. 그래도 일산과 용인이라는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한달음에 온 동생내외가 너무 반갑고, 고맙다.


뿌듯한 이유는 20년이라는 시간을 돌이켜보니 아내와 내게 온 첫 자식이었고, 첫 육아가 힘은 들었지만 커가면서 힘이 되고 의지되는 날도 많았다. 이젠 나보다 어깨도 더 넓어지고, 키도 더 커져서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을 봐서는 아들과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까 싶을 정도다. 어느새 훌쩍 커버렸는지 마음도, 몸도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근사한 체험은 아니지만 아들을 키우며 기억되는 몇 가지 일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건강하게 커준 것만도 감사할 일인데 잘 커준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내 어깨가 한 뼘은 올라간 기분이다.


아쉬운 생각이 드는 이유는 남자 나이 스물이라는 건 곧 군대도 가야 하고, 군대를 다녀온 남자면 이제 끼고 있는 자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까지 그날이 오려면 시간이 더 지나야 하지만 막상 거기까지 생각이 머무니 함께 있을 시간이 머지않았음을 알고 아쉬운 생각부터 든다.


  아들!

이젠 어른되서 모든 일에 구속 없이 자유롭게 됐네. 그래도 그 주어진 자유만큼이나 큰 책임과 무게가 느껴질 날들이 많겠지.  그 책임과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날들이 많더라도 아빠, 엄마의 사랑만큼은 그 무게로 느껴지지 않길 바래.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에세이는 작가의 삶 속 작은 일상들과 생각들을 일기처럼 담백하게, 때로는 무겁고 해학적으로 써 내려갔다. 내가 태어난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공감이 크지 않을 것 같은 70년대 이야기가 많은 페이지에 담겼다. 하지만 막상 작가가 태어난 해를 더듬으니 70년대 작가의 나이를 고려하면 지금 내 나이와 비슷한 시절의 이야기를 많이 담았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이야기들 속 세대를 넘은 비슷한 생각들이 툭툭 와닿는 이유가 그런 동년배 시절의 이야기여서인가 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손님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공경과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잘해 주는 친척 집보다 불친절한 여관방을 차라리 편하게 여기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필요한 것이 알맞게 갖춰져 있고 홀로의 시간이 넉넉히 허락된 편안한 방이 언제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릿한 향수와 깊은 평화를 느낀다.'


 ※ 『언덕방은 내 방』 중에서


난 서울살이를 하면서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친척집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작가의  글을 보다 보면 친척집보다 낯선 여관방이 편하다는 말을 종종 사용했다. 공감이 갔다. 내 시절도 그랬다. 대학생활 내내 몸은 편했지만 마음만은 작가의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3년을 친척집에 살다가 대학교 4학년 때 취업준비로 잦아질 늦은 귀가를 핑계 삼아 서운해하시는 친척 어른분들을 설득해 작은 월세집을 얻었다. 그나마 친척 어른들 마음 편하자고 알아봐 준 월세방도 친척 어른의 지인분이셨다. 신경이 쓰여서 그러셨는지 가끔 들여다보실 요량이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친척집을 나올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이젠 됐다는 마음이었다. 우리 형편을 알기에 알아봐 준 15만 원 월세방이 초라했지만 2 평남짓 월세방에 때가 오히려 마음만은 더 편했다. 20대의 내 생각은 그 이상은 무리였지 싶다.


이번 에세이에는 작가의 일상의 생각뿐만 아니라 무거운 사회적인 이슈나 문제점들을 가벼운 작가적 시점에서 편하게 생각을 이어갔다. 에너지 문제를 다룬 단편이나 동성동본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등을 당시의 시선과 작가적 생각을 비교하여 그 시절을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했다. 또 책 제목과 똑같은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에서는 70년대의 자녀 교육 문제 등이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다시 상기하게 됐다.


책을 읽는 내내 전혀 일치하지 않는 시대였음에도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과거 내 이야기들과 오버랩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작가의 활동 영역에 다시금 놀라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단순히 소설가로 처음 그를 접했던 기억인데 돌아가신 지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이렇게 과거 작가의 흔적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니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 축하하고, 감사할 일이다.


글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오랜 시간 글을 써왔던 '박완서 작가'가 무척이나 부럽고, 존경스럽다. 사십 대에 등단해 돌아가시고 나서도 꾸준히 그녀의 글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아직까지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이 겨울 따뜻한 또 한 권을 만난 듯해서 책을 닫는 어제 아쉬움이 스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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